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은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근현대사가 주목하지 않았던 제주도의 과거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현기영 작가의 고향은 제주이다. 『순이 삼촌』에서는 어릴 적 작가가 경험한 제주도의 면면을 낱낱이 드러내어 그들이 겪었던,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은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의 제목처럼 소설의 주요 인물은 ‘순이 삼촌’이다. 소설은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제사를 지내러 내려간 제주도에서 ‘나’는 ‘순이 삼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후 ‘나’는 천천히 현재서부터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떠올린다. 제주도의 땅 위에 새겨진 핏자국을 훑으며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기억하는 ‘순이 삼촌’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은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더 정확히는 제주 4·3 사건에 희생된 피해자들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순이 삼촌』은 제주도민들이 겪은 삶과 죽음의 경계, 그들이 받은 고통, 잘못 없는 이들에게 가해진 박해, 잊으면 안 되는 제주 섬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 속 인물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하는 ‘순이 삼촌’이 그들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보았다. ‘순이 삼촌’은 제주 4·3 사건을 겪은 제주도민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4·3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 4·3 사건에서 죽임당한 사람, 그 땅에 태어난 수많은 제주도민과 그곳에 살게 된 한국인 모두 ‘순이 삼촌’이 될 수 있고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녀는 삼십 년 전 제주 땅에서 일어났던 제주 4·3 사건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이며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순이 삼촌’이 삼십 년 전 그날, 밭에서 죽었다고 말한다. 신체적 죽음은 심장이 박동하기를 멈춘 죽음이고 정신적 죽음은 정신이 죽음에 묶여있는 죽음이다. ‘나’가 제주도에 돌아와 들었던 ‘순이 삼촌’의 죽음은 그녀의 신체적 죽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4·3 사건 당일, 시체 사이에서 눈을 떴을 때 이미 정신적으로 죽임당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모든 죽음은 자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녀의 죽음은 지극히 타의적이고 끔찍한 살인의 행태였다. 이러한 ‘순이 삼촌’의 삶을 통해 제주도민의 삶 면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땅에서 살고 죽은 모든 이들이 그녀와 같은 정신적 죽음과 고통을 동반한 채 살아가고 있으리란 짐작이 들었다.
‘순이 삼촌’의 삶은 삼십 년 전 과거에 묶여있다. 그녀는 그날 오누이를 잃었다. 집을 잃었고 그녀가 살아온 터전을 잃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행해진 사건이었기 때문에, 제주도에 살았던 이들은 죽음을 대비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만 했다. 시체가 나뒹구는 밭에서 눈을 뜬 날, ‘순이 삼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작품에서 ‘순이 삼촌’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그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지만, 독자는 ‘나’의 시선과 독백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죽음의 경계에서 뱃속 아기와 함께 살아 돌아온 사람이다. 사건의 고통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살아야 한다는, 새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라 보았다. 이 삶에서 살아남으려는 ‘순이 삼촌’의 행동이 오히려 그녀가 겪었을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극대화해 보여주었다. 물질하지 못하는 몸으로 손질되지 않은 굴, 성게를 먹으며 삶을 연명하는 그녀의 억척스러운 모습은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하는 장면이었다.
작품의 후반부에 그녀가 아기를 가졌을 때 행했던 행동이 서술된다. 이는 제주 4·3 사건을 겪고 난 후 어떻게든 살아가려 발버둥 쳤던 수많은 제주도민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육지와 역사에 외면당한 그들에게 남은 건 자신의 몸밖에 없었을 것이다. 살고 싶다가 아닌 살아가야만 했기에 그들은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고 한편으론 그들이 이어온 제주도의 역사와 내가 기억하는 제주도가 상당 부분과 다르다는 걸 깨닫는 지점이 되었다.
작품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공간적 배경을 통해 보여준다. ‘순이 삼촌’의 밭은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돌아온 그녀는 그 밭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삼십 년 전 시체 아래서 눈을 뜬 그곳에서 다시 눈을 감은 것이다. 그녀의 밭은 이름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사람이 시체가 되어 썩어갔던 곳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그 시체를 위해 묘를 세우지도 못하고 시체를 분간하여 가족을 찾아주지도 못했다. 그녀의 밭 위에서 썩어간 시체들은 그렇게 제주도의 땅 아래 파묻혔다. 넋을 가리지 못하고 썩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묻힌 ‘순이 삼촌’의 밭은 제주도를 상징한다. 그 밭 위에 누워 죽은 ‘순이 삼촌’은 삼십 년 전 죽임당한 이들과 그 땅 아래 묻혀 제주도를 이루게 될 것이다.
흥미로웠던 점은 ‘순이 삼촌’의 밭 안에서 생명과 죽음을 모두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밭에서는 시체를 양분 삼아 고구마나 감자가 큼지막하게 자랐다. 작게는 그녀의 밭이 이러했고 넓게는 제주도의 모든 땅에서 죽음을 먹고 자란 생명이 탄생했을 것이다. ‘순이 삼촌’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제주도 땅 아래 묻힌 죽은 이들의 설움과 고통은 그 땅에서 자란 생명으로 피어나고 기억될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듯했다.
‘순이 삼촌’이 시체 틈 사이에서 눈을 뜬 그날, ‘나’가 머물고 있던 학교에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찾아볼 수 있었다. ‘순이 삼촌’은 그 밭에서 일어나 학교로 걸어왔다. 그리고 ‘나’가 있는 학교의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녀가 두드린 유리창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주는 사물이다. ‘나’가 머무는 유리창 안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간이고 이는 죽음에서 한 발짝 멀어진 삶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리창 밖, ‘순이 삼촌’이 학교로 걸어온 길과 논밭은 죽은 사람들의 공간, 즉 죽음을 의미한다. ‘순이 삼촌’은 죽은 사람들이 마을에 나뒹구는 공간, 죽음과 가까운 공간을 묵묵히 견딘 채 학교로 걸어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 ‘순이 삼촌’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삶의 영역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두드린 유리창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나 여기 있다고 알리는 메시지와 동시에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의 시작이었다. 유리창 안으로 들어온 ‘순이 삼촌’은 죽음의 공간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지만 정신적 죽음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접근하려 들지 않고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홀로 앉았다는 대목에서 그녀를 짓누르고 있을 죽음의 무게가 느껴졌다.
유리창 밖 죽음의 공간을 더 넓게 보면 제주도의 모든 곳이 죽음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유리창 같은 얄팍한 선에 불과하기에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그 경계를 몇 번이고 넘나들며 제주도 땅 위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작품의 주요 인물은 ‘순이 삼촌’이지만 작품의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가 그들을 잊었을지라도 그들은 제주도의 역사를 잊지 않았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도 ‘잊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잊지 않는 것. 잊어버리지 않으려 말하는 것. 끊임없이 기억하고 되새기면서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것. 2024년 12월 이후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우려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의 역사는 불에 태워도 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이 죽음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순이 삼촌’의 죽음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죽음이 되어버린 삶, ‘순이 삼촌’이 걸어온 길을 지금이라도 마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