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보는 일이다. 특히 SF나 판타지 장르는 그 세계의 규칙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 자체가 이야기를 읽는 큰 재미다. 그런 의미에서 배명훈 작가의 판타지 신작 『기병과 마법사』는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낯선 단어들 사이에서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경작인과 마목인이 드넓은 초원을 내달리는 새로운 세계가 선명하게 펼쳐진다. 인물들의 생활 구석구석에서 익숙한 우리 문화가 발견되지만, 역사 속 그 어디와도 같지 않다. 작가의 말처럼 “여기가 원본인 판타지”이고, “작동하는 세계와 인간의 이야기”이다.
자신을 구하고 세계의 파멸을 막으려는 영윤해, 한 곳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초원을 질주할 뿐인 다르나킨. 두 사람은 이들을 위협하는 왕의 폭정과 세상의 종말 앞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인물들을 촘촘히 연결한 배명훈 작가는 그 모든 것이 맞물리는 아름다운 결말로 독자를 이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번 작품 역시 장르는 달라도 작가가 지금껏 구축해 온 세계와 어떤 지점에서는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작가가 앞으로 20년간 새롭게 써 갈 세계도 궁금해지는 이유다.
"기병의 존재만으로 그 기병이 속한 세계와 문화가 어떤 모습인지까지 어느 정도 그려졌죠.
“기병은 병종이 아니라 풍속이다.”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많은 책을 쓰셨지만, 장편 판타지 작품은 조금 낯설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판타지를 좋아해서 많이 읽었고 단편은 몇 편 썼지만, 장편은 처음이에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문득 이제 판타지를 쓸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판타지는 장편으로 가야 재미있는 장르라 자연스레 장편이 되었고요. 발표했던 작품을 다시 쓸 때가 많은데, SF에 비해 판타지는 상대적으로 고칠 게 적어서 판타지와 잘 맞나 싶기도 했습니다. 판타지를 쓸 때 문장도 더 자신 있게 나오고, 인물도 더 생생하게 써질 때가 많더라고요.
『기병과 마법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 판타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형 판타지’라고 홍보되기도 하고요. 작가님만의 이 독특한 세계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한국 문화권에서 자란 제가 서양 판타지의 문법으로 이야기를 쓴다면 분명 어느 지점에서 막혀요. 인물을 생생하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면 ‘말의 해상도’를 높여야 하는데, 서양 판타지라는 틀 안에서는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문화권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계가 필요했어요.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한반도 북쪽이 배경이라는 느낌은 오는데, 그렇다고 특정 왕조나 국가를 배경 삼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막연히 조선을 생각했는데,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요.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기에 상상할 여지가 많지 않아요. 이미 많은 독자가 조선을 너무 잘 알고 있고요. 그때부터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고증의 영역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이전인 고려나 삼국시대쯤을 생각했을 때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었어요.
생활사가 굉장히 생생했고 관직명도 지명도 실제로 있었던 것인지 여러 차례 찾아볼 만큼 구체적이었어요. 어떻게 이 모든 걸 만드셨는지 궁금해요.
새로운 세계지만 우리 문화권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잘 드러낼 수 있는 요소를 고민했습니다. ‘온돌’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지만, 이야기 속 경작인들이 온돌집에 산다고 묘사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온돌이야말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인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또 한자문화권이지만 중국과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조선의 관직 체계는 중국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더 거슬러 올라가 신라, 고려의 관직 체계를 참고했어요. 지명도 대부분 우리말인데, 우리나라 지명을 전문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의 칼럼 같은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우리 문화권이 배경이 되며 서양 판타지에서 흔히 등장하는 ‘기사’는 ‘기병’으로 형상화되었어요. 기병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기사’는 지극히 서양적인 개념이기에, 새로운 세계의 맥락에 맞추려면 ‘기병’이 되어야 했습니다. 한반도 지역의 기병과 관련한 논문을 찾아보니 꽤 많더라고요. 기병의 존재만으로 그 기병이 속한 세계와 문화가 어떤 모습인지까지 어느 정도 그려졌죠. “기병은 병종이 아니라 풍속이다.”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제서야 이 책을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전투 장면은 서로 다른 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세계관이나 규칙이 서로 다르게 적용된다는 걸 이해함으로써
적을 이긴다는 점에서는 SF적이기도 해요."
해당 문장은 소설에도 실려 있는데, 좀 더 설명을 들어보고 싶어요.
기병은 단순히 전장에서의 군사 형태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 역사, 문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개념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기사는 귀족이고 고위층이었기에 기사가 존재하는 사회는 왕의 권력이 분산된 사회였어요. 반면 우리 문화권에 존재했던 기병은 여진족이나 말갈족처럼 말 잘 타는 북방의 소수민족을 일종의 용병으로 쓰는 형태였지요. 한반도의 왕조는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하고 싶어 했고, 국민 대부분이 농사꾼인 환경에서 기병을 따로 훈련시키기 위한 금전적 지출도 원치 않았거든요.
여기까지 오고 나니, 중요한 위치였지만 여전히 소수민족이었을 기병들,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이중국적을 가진 이들을 떠올렸어요. 중간에 끼어서 이중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죠. 그렇게 ‘다르나킨’이 탄생했습니다. 마목인이면서 경작인의 배경도 가진 인물이죠.
그래서 이 소설은 윤해라는 인물이 예언자가 되어 자신과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다르나킨과 윤해가 만나며 서로 다른 세계가 부딪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변방 지역, 그러니까 두 세계가 만나는 지역에서 마목인의 정석을 아는 다르나킨과 경작인의 정석을 아는 윤해가 만나 양쪽 시스템을 다시 보게 되는 이야기죠. 두 사람이 함께하는 전투 장면은 서로 다른 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세계관이나 규칙이 서로 다르게 적용된다는 걸 이해함으로써 적을 이긴다는 점에서는 SF적이기도 해요.
소설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남성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여성인 경우가 있었어요. 의도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인물을 쓸 때 성별 부여를 잘 안 하는 편이고, 드러내야 할 경우 여성으로 설정할 때가 많아요. 성별 대명사를 쓸 필요 없다는 게 한국어의 장점이죠. 이번 작품의 경우 판타지다 보니 여성이 들어갈 부분이 너무 적어서 주요 인물 몇 명을 대놓고 여성으로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의도한 대로 읽으신 셈이에요. (웃음)
다르나킨과 윤해가 중심이 되면서도 하살루타, 은난조 등 소설 속 세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인물이 많이 나오는데 시퀄이나 프리퀄을 쓴다면 새롭게 조명하고 싶은 인물이 있나요?
시퀄을 염두에 두고 남겨둔 인물들이 있긴 해요. 도망간 한채주. 악당이 될 소지가 다분하죠. 본격적으로 초원이 배경인 이야기를 쓴다면 그 지역을 잘 아는 하살루타가 주인공이 될지도 몰라요. 소설 중간에 지나가듯이 아이들이 “날이가 솔기를 연모한대!” 같은 소문을 퍼뜨리는 장면도 잠깐 나오는데 어쩌면 이 두 친구가 미래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판타지는 SF에 비해 속편을 쓰기 좋은 장르예요. SF가 무언가 또는 누군가로 인해 세계 전체가 바뀌면서 마무리되는 구조라면, 판타지는 평화로운 상태에서 시작해 전쟁을 겪고 원상회복을 하는 구조거든요. 속편을 만들려면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내면 되죠. 물론 『기병과 마법사』는 마지막에 큰 변화가 있으니 완전히 원상회복되는 구조라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한 편 정도는 더 쓸 수 있다고 봐요.
예언자인 윤해의 모습이 현실적이었어요. 기대도 받지만 의심하는 사람도 많고, 큰 시련을 겪죠. 오늘날에도 예언자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글쎄요. 어떤 모습일까요? 시대에 따라 수월한 예언자가 있을 것이고 굉장히 어려운 예언자도 있을 텐데 지금은 어려운 시기일 것 같습니다. 문명이 크게 쇠퇴해 가는 것 같아 걱정스러워요. 많은 사람이 파멸을 예측하지만 변화는 더디죠. 주기적으로 닥치는 파멸을 막아낼 기회가 지금이라면 우리는 막고 있나, 그걸 막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소설을 쓰기도 했어요.
"저도 책을 내고 나면 감이 와요. 이거 잘 나왔다 같은.
요즘 제 기량이 올라와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에서 구백 년, 천 년이 지나면 가장 똑똑한 사람도 어리석어지고, 과거에 일어났던 재앙을 믿지 않는다던 대목이 떠오릅니다.
지금이 인간이 어리석어지는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책에서 어떤 문명이든 천 년 정도 지나면 증거가 남아 있어도 다 신화나 설화로 여겨진다고도 썼는데요. 그런 부분은 꽤 SF 같은 분위기를 풍기죠.
그 외에도 판타지이지만 SF적인 해법을 갖고 쓴 부분이 많아요. 대표적으로 파멸의 신전이 열리는 주기인 1021이라는 숫자. 책에서는 이 숫자의 독특함을 풀어서 설명하는데, 한 단어로 말하자면 소수라는 의미예요. 조선시대까지는 소수라는 말이 없어서 소수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괴물도 우주의 암흑물질을 염두에 두고 묘사했고요.
어느덧 데뷔하신 지 20년이 되었는데요,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조금씩 연결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번 『기병과 마법사』 역시 타 작품과 연결고리가 있을 듯한데, 들려주실 수 있나요?
소설가로 본격적으로 데뷔하기 전 습작을 쓸 때부터 마로하 이야기를 써 왔는데 그게 사실 『기병과 마법사』의 원형입니다. 그 후에 쓴 다른 작품에도 흔적이 있어요. 『청혼』에는 예언서와 예언자가 나오고 파멸의 문이 열리죠. 그 예언자가 마로하를 언급하고요. 단편소설집 『안녕 인공존재』에 수록된 「매뉴얼」에도 마로하와 파멸의 신전 테마가 그대로 나옵니다. 이걸 다 아는 분들은 없을 거예요. (웃음) 예전에는 연결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서 그냥 여기저기 흩어 두었는데 이제는 세계관을 통합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이번 ‘작가의 말’에서 지금까지 써 왔던 소설들이 모두 “작동하는 세계와 인간의 이야기”라고 말씀하셨어요.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작가님이 써 온 세계는 어떻게 변해 왔나요?
『타워』를 쓸 무렵에는 유머 감각을 가져보고 싶었어요. 세계를 비틀어보고 싶었다고 할까요.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태도가 있었죠. 그래서 풍자도 많이 하고 유머도 썼는데 시간이 지나며 세상 무서운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유머가 줄어들고, 너무 멀거나 까마득해서 극복할 수 없는 무언가가 예전보다 소설에 자주 등장합니다. 불가항력적인 무언가도 세상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근 인터뷰에서는 소설을 점점 더 잘 쓰게 되고,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도 그러신가요?
그럼요. 저는 예전에 쓴 것보다 최근에 쓴 작품들이 좋아요. 양궁선수들은 활을 쏘자마자 잘 쐈는지 못 쐈는지 안다고 하잖아요. 저도 책을 내고 나면 감이 와요. 이거 잘 나왔다 같은. 요즘 제 기량이 올라와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20년을 생각하며, 작가님이 쓰고 싶은 소설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단편소설을 쓰고 싶고, 웃긴 소설을 쓰고 싶어요. 경쾌한 소설이요. 의외로 경쾌하게 쓰는 사람이 드물거든요. 그래서 제가 좀 많이 써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