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미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기도 전인 학생 시절, 미술에 관한 책에서 비누 부처 작업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난다. 신미경 작가의 '화장실 프로젝트' 작업이었다. '미술 작품'이라고 하면 고전적인 페인팅이나 대리석을 깎아 만든 단단한 조각을 주로 생각했던 나였기에, 비누라는 가변적이고도 취약한 재료가 제법 낯설고도 신기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미술 시간에 비누 하나를 제대로 깎아내기도 힘든데, 그토록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정교하게 만든 작업을 화장실에 비치해두며 관객이 편하게 만져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은 당시의 내게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성들여 만든 작업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만져보게 할 수 있다니, 그리고 관객이 그 비누 조각을 만져보는 경험만으로도 미술에 관한 즐거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니.

 

어린 내게 신선하고도 기분 좋게 느껴졌던 신미경 작가의 작업은 그렇게 뇌리에 생생히 각인되었다.

 

 

사진3.jpg

 

 

그 이후 비누 작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했던 것은 대학 입시를 하면서였다.

 

내가 지원하였던 모 대학의 시험 과정은 1차가 실기, 2차가 드로잉 및 면접이라는 다소 복잡한 형식이었는데, 기쁘게도 1차 실기 시험에 합격해 2차 시험을 칠 수 있었던 기회가 생겼다. 1차 시험과 2차 시험의 텀이 짧았기 때문에 급하게 드로잉 면접을 준비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나의 문제점은 작은 시험지 안에 너무 이것저것 담아내려 애쓰는 것이었다. 면접 직전이 되어서야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꼭 붙어야 한다는 욕심어린 생각 때문인지 세련되기보다는 그저 노력하기만 했다는 느낌이었다.

 

이처럼 찜찜하고도 복잡한 기분으로 시험장에 도착하여 받은 문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 중 일부를 채택하여 코로나 시대에 유용한 발명품을 디자인하라.' 였다. (꽤 예전에 치뤘던 시험이기에 기존의 문제와 완전히 같은 물음은 아닐 수 있다.) 석궁이나 물레바퀴 등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사물들을 스케치한 것들 중 하나를 골라야 했고, 막힘 없이 스케치를 하는 다른 응시자들의 사이에서 한참이나 고민에 잠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스스로가 내었던 답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는데, 그간 시험을 준비하며 인상 깊게 느꼈던 작업들 중 일부와, 코로나 하면 떠오르는 행위를 결합한 작업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그때 떠오른 것이 '손 씻기'라는 행위, 나아가 신미경 작가의 비누 작업이었다. 화장실에서 비누 등이 아이의 시점에서 다소 불편한 곳에 놓여 있거나, 너무 마모되어 있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누와 연관 지은 발명품인 '비누 바퀴'라는, 조금은 유치한 이름의 발명품을 그려내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구술 면접 전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었기에, 공중 화장실 등에 자동으로 바누나 위생용품을 리필하는 내용의 답변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물론 아무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더라도 긴장했던 탓에 면접에서 덜덜 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어지는 결과가 다행스럽게도 좋았던 탓에, '비누 바퀴'는 아직까지도 나의 구체적인 첫 작업이자, 좋은 추억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때 처음으로 관객에게 물리적으로 가까운 작업이야말로 좋은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질 수 있는 작업'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신미경 작가의 전시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실, 제법 오래 신미경 작가의 작업들을 짝사랑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침 특히 좋아하는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의 마지막 날에 미술관을 찾았다. 전시 제목 외에는 일부러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은 채로 전시장에 도착했다. 익숙한 로비를 지나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큰 신전 같은 공간이 꾸며져 있었다.

 

 

사진1.jpg

 

 

층고가 높아 시원한 느낌을 주던 전시장은 좋은 향기로 가득했다. 작품 자체에서 나는 향일까 궁금증이 들었으나, 전시를 보며 모 회사와 협력하여 전시와 어울리는 향을 직접 제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전시를 많이 보았지만, 후각까지 자극하는 전시는 드물었기에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리석처럼 정교하고 부드럽게 깎아진 조각들과, 비누를 녹여 부어 만든 평면 작업에서 작가의 고뇌와 시간, 그리고 비누라는 재료의 물성에 대한 숙련도가 느껴졌다.

 

 

사진4.jpg

 

 

전시는 앞서 보인 큰 신전 같은 공간을 지나, 어린이 관객을 주 타겟으로 한 향유 체험 공간을 지나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자칫하면 지나칠 수 있던 화장실은 신미경 작가가 만든 천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천사들은 전시장에서 만큼 깔끔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구석구석이 마모되고 흐트러진 모습이 되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외려 마지막 날에, 거의 마지막 순번으로 신미경 작가의 작업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접하는 비누라는 물체임에도, 전시를 보며 느꼈던 고요함과 기쁨이 그날 향유를 뿌려 가방에 넣어온 종이의 향처럼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