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가장 자주 결부되는 단어가 있다면, 추모 문구로 곧잘 쓰였던 ‘Remember 0416’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단연 ‘기억’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달라고 호소하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목소리와, 한편에 ‘언제까지 세월호 이야기를 하느냐’고 피로와 지겨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있다. 기억하자는 말은 단순히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자는 뜻을 넘어서, 잊히지 않도록 반복해서 기억을 말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기에 그런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일 테다.
기억은 한 사람 내부에서는 불완전하다. 기억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누락, 변형, 왜곡을 겪기에 완전한 기억이라는 게 있을 수 없지만, 우리는 기억을 소리 내 말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보다 강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점을 김연수의 단편 소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세월호 사건 당일에 일어난 세 명의 기억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소설 속 세 인물 ‘나’와 희진과 후쿠다의 이야기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4월 16일, 죽기로 결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후쿠다는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방문한 카페에서 희진이 신청한 노래 <하얀 무덤>을 듣게 된다. 중학교 시절 좋아했던 그 노래를 들으며,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린 후쿠다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10년 후인 2014년 4월 16일, 그는 인디 가수로 활동하던 그녀를 수소문해 초청 공연을 연다. 자초지종을 듣게 된 희진은 2004년 함께 일본에 왔었던 옛 연인 ‘나’에게 메일을 보낸다. 그렇게 2004년 4월 16일이 각자의 기억을 통해 다시 소환되고 연결된다.
기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공유를 통해 강화된 기억은 어떤 힘을 가지게 될까.
기억은 존재를 구성하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 기억의 총합이라고도 하지 않나. 그렇기에 기억의 공유는 서로의 존재를 보다 온전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후쿠다의 사례처럼 한 존재를 구하기도 한다. 소설 속 핵심적인 제재로 등장하는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도 특정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감상자의 사적인 기억을 통해 감상되고 완성되는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나’와 희진이 시그램 벽화에서 함께 본 “빛” 또한 기억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소설의 결말부에서 작가는 희진의 입을 빌려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라고 질문하며 기억의 의의를 되새긴다. 그러니까 다만 한 사람의 기억이란 다른 한 사람의 존재를 보다 온전하게 하고, 목숨을 구하며, 우주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빛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 안타깝게 죽은 이들을 추모하며 슬퍼하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런 비극이 일어났던 원인이 무엇인지, 비슷한 인재(人災)가 자꾸만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다른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억해야만, 목숨을 구하고 우주를 바꾸는 빛으로서의 역할을 마땅히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