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을 때 가사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멜로디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단연 가사파라고 생각했다. 가사로부터 영감을 받거나 위로받을 때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멜로디에 더 마음이 간다. 가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하던 일에 집중을 놓치게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멜로디만 있는 음악을 찾다 보니, 최근에는 옛날 게임 BGM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자주 하던 게임들의 배경음악을 들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지고 집중력도 높아진다.
요즘 내가 즐겨 듣는 몇 가지 게임 BGM을 소개하고자 한다.
크레이지 아케이드 BGM
나는 1남 1녀 중 둘째로, 위로 세 살 많은 오빠가 있다.
그 덕분에 어린 시절 처음 입문한 게임도 옷 입히기나 역할놀이가 아니라 바로 크레이지 아케이드였다. 2000년대 초중반, 전국의 초등학생들을 열광하게 만든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일명 ‘크아’라고도 불렸으며, 학교가 끝난 후 삼삼오오 집에 모여 다 함께 즐기던 게임이었다.
오빠가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 어린 나는 아무도 끼워주지 않아서 어깨너머로 구경만 하곤 했다. 가끔 2P로 끼워주면 뛸 듯이 기뻐했지만, 곧 “너 때문에 우리 팀이 졌다!”는 구박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최근에 다시 들어본 크레이지 아케이드 BGM은 곡의 종류가 생각보다 많았으며, 각 테마의 콘셉트에 맞는 음악 스타일이 다양해서 놀랐다. 초등학생을 겨냥한 게임 치고는 정말 퀄리티가 높았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바다 테마’ BGM이다.
몽환적인 분위기에 중간중간 들리는 파도 소리까지 더해져, 들을 때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참고로 크레이지 아케이드 BGM은 2005년 리뉴얼을 기준으로 올드버전과 뉴버전으로 나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올드버전에 더 끌린다.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매력이 있달까.
당시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양대산맥을 이루던 게임이 바로 메이플스토리였다.
캐릭터 꾸미는 재미가 쏠쏠하고, 맵도 다양해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 있었던 기억이 난다. 메이플스토리 BGM을 들으면 뭔가 벅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머릿속에는 꼭 토요일 오전의 밝고 화사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각 맵마다 음악이 다르고, 분위기에 따라 곡조도 천차만별이다.
최근 메이플스토리 BGM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았는데, 음악 작곡 경험이 전혀 없던 회사 직원이 피아노 건반 없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곡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그런 곡들이 게임 몰입감을 높여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메이플스토리의 성공에는 음악도 중요한 몫을 한 게 분명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커닝시티 테마곡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리스항구나 엘리니아도 좋지만, 커닝시티 특유의 다크한 베이스와 도시적인 느낌이 이상하게 중독성 있게 다가온다.
한때 이 곡 때문에 베이스를 배워보고 싶었던 적도 있을 만큼,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곡이다.
동물의 숲 BGM
동물의 숲도 시리즈마다 BGM이 조금씩 다르다.
내가 처음 입문했던 건 DS의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 시리즈였으며, 이 시리즈의 BGM이 가장 익숙하다.
곡 제목은 따로 없고 7AM, 11AM처럼 시간 순서대로 BGM이 구분되어 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한 시간마다 다른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요즘엔 유튜브 영상에서 종종 배경음악으로 들리곤 하는데,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공부할 때 들으면 집중이 잘 되는 편이라 추천하고 싶다.
단, 가끔 동물의 숲을 하고 싶어지는 충동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닌텐독스 BGM
앞에 소개한 BGM에 비해 생소할 수 있지만, 닌텐독스의 BGM도 정말 좋아한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꿨던 반려견 키우기는 나에겐 먼 이야기였다. 그 대신 닌텐독스 게임 칩이 내게 주어졌다. 현실에서는 어려웠지만, 게임 속에서만큼은 가능했다.
허스키 두 마리를 ‘돌돌이’와 ‘똘똘이’라 이름 붙여 정성껏 키웠다. 씻기고 산책시키고, 원반 던지기 대회에도 나갔던 기억이 있다.
가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간식도 받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반짝이는 효과음과 함께 강아지들이 만족한 표정을 짓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릴 적, 화면 너머의 강아지들을 키우는 일로부터 내 작은 책임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던 건 아닐까 싶다.
그 시절 게임 BGM을 들으면 어린 시절의 감정과 설렘, 아쉬움, 그리고 음악에 녹아 있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이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을 더 선명하게,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의외로 집중력도 높여주고 단시간에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게임 BGM, 한 번쯤 들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