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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김없이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갑자기 다가온 것처럼 느껴졌지만 시기를 생각해보면 늘 그렇듯 제때 온 셈이다. 계절은 정직하다. 변하는 건 계절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본격적으로 여름이 오기 전 한적한 시골길을 걸었다.

 

도시와는 다른 고요함이 온몸을 감쌌다. 푸릇푸릇한 풀 내음이 퍼져 있었고, 풀들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삭막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머리 위로는 노을이 내려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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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에는 핸드폰을 보지 않고 주변 풍경 속에서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며 쉬는 걸 좋아한다.

 

나는 열심히 자란 풀들 사이에서 모여 있는 노란 꽃들을 발견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지만 렌즈는 내가 본 풍경을 그대로 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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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것들이 있다.

 

빛이 공기 속을 떠다니는 움직임, 노을이 얼굴에 닿을 때의 따스함 같이 여러 찬란한 순간들과 그 속 내가 느낀 감정들. 기록하는 것의 중심은 ‘경험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보는 만큼 예쁘게 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바라보는 것이다.

 

산책길에는 항상 음악도 함께한다.

 

최근 발매된 잔나비의 신보 <사운드 오브 뮤직 pt.1>을 들었다. 이 앨범은 <전설>처럼 시집 같은 가사, <환상의 나라>처럼 펼쳐지는 뮤지컬적인 구성, 그리고 80–90년대 록 사운드를 연상케 하며 새로운 감성을 전해준다. 앨범 전반에 흐르는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꽉찬 사운드가 인상 깊었고, 그중에서도 <옥상에서 혼자 노을을 봤음을>이라는 트랙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 / 조금 더 붉은 하늘을 원해 / 보고만 싶은 걸, 무언가 더 진한 걸…”

 

노을을 보기 위해 시간을 맞춰 걷는 내 습관이 떠올랐다. 위로 고개를 들어보니, 열심히 일한 해가 쉬러 내려가고 있었다. 나 역시 ‘무언가 더 진한 것’을 바라고 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감정에 끌렸다.


사람은 종종 자신이 가진 것의 반대를 원한다. 노련한 사람은 날 것의 신선함에, 정돈된 사람은 어지러운 자유에, 차가운 사람은 따뜻함에 끌린다. 서로가 때로는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반대되는 것들이 함께 있을 때 서로를 채워주며 아름다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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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며 숨은 새소리를 들었고, 홀로 핀 들꽃을 발견했으며 조용히 걷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삶 속엔 이렇게 작은 예술의 순간이 숨어 있다는 것과 그 안에 생각할 거리도 있다는 걸 느꼈다. 무더위가 오기 전 의미 있는 생각들의 산책이다.


스쳐 지나가던 풍경 속에서도 무언가를 느끼고, 기록하고, 바라보자.

 

그러니 여름을 맞이할 준비와 함께, 우리도 언젠가 붉게 물들 날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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