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국립정동극장]전통연희극_단심_poster.jpg

 

 

'단심(單沈)’은 국립정동극장 컬처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고전설화 ‘심청’을 모티브로 삼아 심청의 내면을 현대적 감각으로 섬세하게 재해석한 한국무용극이다.

 

2025년 5월 8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펼쳐지며, 정구호 연출가가 간결하면서도 판타지적인 영상 미장센을, 정혜진 안무가가 전통춤선과 드라마틱한 동선의 조화를 함께 선사한다. 더불어 배우 채시라가 용궁 여왕 역으로 출연하여 무용수로서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것도 이번 작품의 큰 볼거리다.

 

관객에게 익숙한 설화인 만큼, 하얀 무대 위 두 심청이 등장하여 움직임만으로 희생을 받아들이려는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마침내 뱃머리 끝에 선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뒤 맞이하게 되는 풍경은 점차 화려한 영상으로 채워져, 심청이 마주하는 또 다른 세계를 구현한다.

 

특히 심청이 용궁에 도달해 용궁여왕과 신녀들과 만나는 순간, 무대 전면에 펼쳐지는 몽환적 영상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용궁 장면에서는 채시라가 연기하는 용궁 여왕이 관객을 압도했다. 그녀의 절제된 손동작과 고요한 눈빛은 마치 물결을 다스리는 여신처럼 공간을 지배하며 심청의 여정에 신비로운 무게를 더한다.

 

이 짧은 등장만으로도 주인공에게 새로운 시공간을 부여하는 장면 전환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심청&용궁여왕 페어1.jpg

 

 

정구호 연출가는 ‘간결함’과 ‘화려함’의 절묘한 균형을 보여준다. 무대를 채우는 시노그라피는 바다의 파도, 분홍빛의 심해, 그리고 화려한 궁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며, 전통 무대장의 여백을 현대적 판타지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특히 화면 속 비치는 물방울의 질감과 무용수의 몸짓이 맞닿을 때, 관객은 심해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환상을 경험한다.

 

또한 정혜진 안무가는 한국무용의 전통적 선과 현대적인 몸 표현이 충돌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짰다. 한국무용에 첨가된 현대적인 감각은 번뇌하는 심청의 감정이 직관적으로 전달되게 한다. 특히 용궁에서의 안무는 단선이라는 연꽃 모양의 부채를 사용하여 현대적인 움직임과 고전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전통 민요 선율을 기반으로 한 오리지널 음악은 전자음과 어우러져 긴장감 넘치는 언밸런스를 만들어낸다. 특히 굵은 북소리가 떨어지는 순간 심청의 가슴 속 심장 소리가 관객의 가슴을 함께 뛰게 하고, 극적인 관현악 선율은 환상적인 용궁의 모습을 드러낸다.

 

조명과 음향이 맞물린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일순간 정적이 흐른 뒤,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터져 나와 잠제했던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심청 페어사진4.jpg

 

 

‘단심’은 전통 설화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청의 내면 여정을 예술적 실험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 심청의 존재는 ‘단심’이 지닌 혁신적 퍼포먼스성을 상징한다.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게 만드는 그녀들의 존재감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된 애틋함과 강인함을 되살린다. 언제나 희생되는 존재로 그려진 그녀들에 대해 다시 한 번 희생이 당연한 것만은 아니며, 심청이란 여성에게 연민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단심’에서는 전통과 현대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조응하며, 관객은 고전 속에 숨겨진 감각적 원음을 새롭게 듣는다.

 

정구호 연출가는 작품 제목을 ‘단심(單沈)’이라 지은 이유로 “심청의 마음은 굉장히 곧고 단순한 깊은 마음”임을 꼽는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마주한 ‘단심’은 심청만의 것이 아니라,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품고 있는 내면의 심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에게 단심은,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인 丹心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단심’은 전통설화의 울림을 넘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 가장 깊고 순수한 단심을 일깨워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컬쳐리스트 최선.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