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활동하는 듀오, 클로이와 나타샤가 직접 연출하고 각본을 쓴 <소년에게서 온 편지: 수취인불명>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예술 축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 3년 연속 퍼스트 어워드를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남성성과 전쟁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를 치밀하게 잘 짜인 안무와 날카로운 유머를 통해 깊이 있게 풀어낸다.
새와 풀벌레 소리만 들려오던 작은 공간은 보이스카우트 옷을 입은 두 배우가 하모니카를 불며 활기차게 등장하는 순간, 순식간에 1960년대 미국의 한 작은 마을로 변신한다.
바닥에 놓인 커다란 타이어가 유일한 무대 장치였지만, 두 배우의 섬세한 몸짓과 뛰어난 연기는 단숨에 관객을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연극에는 두 소년이 등장한다. ‘에이스’와 ‘메뚜기’는 진정한 남자를 꿈꾸는 아이들로, 린든 B. 존슨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를 신처럼 모시고 있다.
에이스와 메뚜기는 대통령이 탄 기차가 자신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밤에 몰래 집에서 빠져나온다. 그들이 한밤중에 잠도 포기하며 기차역 플랫폼에 서 있었던 이유는, 눈 깜빡할 사이에 기차를 타고 지나갈 대통령에게 트럼펫으로 국가를 들려주며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대통령이 트럼펫 연주를 들을 수도 있을 거라고, 내심 기대하는 그들의 순수한 마음은 사실 국가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의해 세뇌된 결과이기에 씁쓸하게 다가온다.
에이스와 메뚜기는 앳된 소년티에서 벗어나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남자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군인이다. 진정한 남자라면 언제 어디서나 눈물을 흘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위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절대 다른 남자와 손을 잡아서도 안 된다.
이들은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 군인 놀이를 하고, 줄을 타며,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두 소년이 전장에 나간 군인을 흉내 내며 총싸움 놀이를 하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건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한다.
놀이와 전쟁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미국 사회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강인한 남성성이 어떻게 소년들을 파멸로 이끄는 지가 드러난다.
사회가 만들어낸 왜곡된 남성성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자다움’이란 여전히 육체적 강인함과 전투력을 가리키며, 남성이 높은 지위와 지배력을 갖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힘과 폭력이 정당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트럼프는 이런 패권적 남성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꾸준히 약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며 폭력을 야기하고 있다.
트럼프를 비롯한 극우파, 극단주의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소년들에게 의도적으로 여성 혐오를 부추긴다. 사회가 만들어낸 왜곡된 남성성에 쉽게 노출된 아이들은 그렇게 여성과 소수자를 조롱하며 자신도 모르는 새 혐오 범죄의 가해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들에 의해 수많은 여성의 삶이 파괴되고 목숨을 잃는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재현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진짜 남자가 되어 조국을 위한 길이라 믿었던 두 소년의 여정은 결국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쓸쓸한 희생으로 막을 내린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남자다움’이라 여기고 있으며,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모니카로 연주되는 익숙한 비틀즈의 노래와 두 소년의 순수함이 빚어내는 유머는 유쾌했지만, 이 작품이 품고 있는 질문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