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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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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교수님께 소설 합평을 받았다. 이면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이라는 개념과 아이돌 산업에 대한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룬 소설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써 왔던 소설은 순문학과 장르 문학에 걸쳐져 있는, 사랑하는 이유리 작가님과 이기호 작가님 풍의 느낌이었다. 또한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이 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사건 위주의 소설이기도 했다.


지금 쓴 소설은 사건보단 인물과 인물 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었다. 처음 쓰는 느낌의 소설이었기에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는데, 교수님께서 의외로 소설을 좋게 봐주셨다.


제일 좋았던 칭찬은 ‘정성껏 다듬으면 눈에 띄는 소설이 되겠다’라는 코멘트였다. 최근에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소설 쓰기’를 포기해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재능 있는 학우들의 글을 보며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그 한마디가, 앞으로도 스스로를 믿고 집필하라는 일종의 위로처럼 느껴졌다.


합평을 받은 날 밤, 들뜬 마음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교수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어떻게 소설을 발전시켜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잔상처럼 소설이 계속 머무르는 밤이었다. 태아처럼 작고 흐릿했던 인물이 소설이란 장르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 들뜨는 감정을 나는 꽤 오래 잊고 살았었다.


처음 소설 쓰기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마트에 일하는 20대 청춘에 대한 내용이었다. 너무 오래 전에 쓴 소설이라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바쁘게 돌아다니는 고객들 사이에서 혼자 멈춰 있는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는(?) 그런 문장을 썼던 기억이 난다.


소설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주변의 소음도,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의 촉각도 증발된 채 한글 창에 기입되는 글씨만 보이는. 초인적인 것 같은 그런 감각. 공모전은 아쉽게 떨어졌지만 그 소설을 계기로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소설 다운 소설을 써 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50대 남성이, 몇 년 전 이식 받은 심장 판막 재료가 돼지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혼란스러워하는 내용을 담았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왔다. 석훈이 위로 올라가려 손을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누군가 그를 끌어내리기라도 하는 듯 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살려달라고, 여기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울음소리에 묻혔다. 돼지들의 몸통과 엉덩이가 얼굴과 몸을 짓눌렀다. 죽어가는 돼지들의 몸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화려하게 타올랐던 노을은 밤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자취를 갈무리하고 있었다. 석훈은 돼지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돼지 생매장 작업을 하던 주인공은 결국 돼지들이 묻힌 구덩이 속으로 빠지고 만다. 상당히 충격(?)적인 결말을 가진 소설을 쓰며, ‘소설’이란 어렵고도 귀찮은 작업을 왜 가슴속에 계속 품고 살아왔는지에 대해 비로소 깨달았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는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불합리한 것들, 혹은 부당한 것들을 보면 참을 수 없었다. 쉽게 변하지 않는 사회 구조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분노를 표출하기엔 난 너무 소심하고 언변 또한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줏대 없고 흐릿한 ‘나’란 사람 대신, 누구보다 개성 있고 생생한 ‘주인공’을 앞으로 내세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내 소설은 '비겁'이란 감정으로부터 파생 된다. 문장력도 썩 좋지 않다. 하지만 날 것 특유의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특징이 내 소설의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더 써봐야 알 것 같다. 부디, 소설 쓰기를 오래도록 좋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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