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물에 빠지기 전 심청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떠한 마음들이 그 작은 몸 안에서 싸우지 않았을까.
이 공연에는 우리가 몰랐던 심청이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몸과 화면의 조화
공연은 크게 3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심청이가 물에 빠지기 전까지가 1장, 용궁 여왕을 만나 땅에 올라가기까지가 2장, 아버지를 만나는 3장.
각 장의 앞부분마다 암전 속에서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등장해서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또한, 외국인들을 배려해 영어 자막으로 작품 해설에 대한 내용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설명이 없으면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무대는 바닥과 벽 모두 화면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영화에 들어간 것처럼 배우들의 동작이 화면 속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심청이의 옷이 쉬폰 재질의 옷이라서 그런지 단아한 한국적인 매력을 살려주고, 옷의 모양이 예쁘게 나와서 무용을 보는 매력을 더해주었다. 별다른 무대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배우들의 동작에 시선이 갔고, 꽉 찬 화면은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심청이가 바다에 빠질 때 모든 화면이 파도로 변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한, 심 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인 만큼 어떻게 연출할지 가장 궁금했던 장면이었다. 심 봉사가 눈을 뜰 때 흑백으로 덮여있는 화면이 점점 컬러로 바뀌었다.
지팡이를 이용한 안무도 센스 있다고 느꼈다. 심 봉사와 다른 장님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 지팡이를 활용한 안무를 넣어 재미를 더했다. 단순히 아름다운 동작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에게 맞는 안무를 구사하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봉사들이 등장하고 박수로 호응을 유도하는 것은 한국적 공연의 매력까지 더한 것 같다고 느꼈다. 관객과 배우의 경계가 흐릿한 ‘마당놀이’가 우리 공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무용공연과의 차별점을 느낀 것 같다.
하나의 심청이만 물에 빠진다는 것
검은 옷을 입은 심청이와 하얀 옷을 입은 심청이가 등장한다. 포스터에 주요하게 등장한 만큼 분리된 심청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했다.
심청이의 분리된 자아는 1장에 주로 등장한다. 1장에서는 검은 심청이, 하얀 심청이, 뺑덕어멈, 심 봉사가 나와서 서로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뺑덕어멈은 익살스럽게 심 봉사를 놀리는데, 주목할 점은 검은 심청이도 심 봉사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지팡이를 빼앗고 안 돌려주는 등 우리가 알던 효심 가득한 심청이의 모습이 아니다. 어쩌면 심청이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효심을 강요받던 시대, 오롯이 눈이 먼 아버지를 감당해야 했던 여성의 삶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착한 심청이의 패러다임에 갇혀 심청이의 깊은 속마음에 주목하지 않았다.
[단심]은 그런 심청이의 마음에 집중한다. 아버지가 버겁고, 때로는 미웠던 심청이의 마음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심청이가 바다에 빠져들기 전, 검은 심청이는 하얀 심청이를 말리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심청이의 갈등을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하얀 심청이는 결국 배 위에 올라가 매서운 파도에 뛰어든다. 그곳에는 오롯이 하얀 심청이만 빠질 수 있다. 갈등하던 심청이가 택한 마음이 하얀 마음이어서도 있지만, 검은 마음을 가지고서는 그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검은 마음이 단순히 악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검은 마음과 하얀 마음의 갈등은 정직한 우리의 현실이다. 여기서 검은 마음 혹은 하얀 마음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비현실에 가깝다. 그러므로 심청이의 자아를 분리한 것은 심청이의 선택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더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바다에 빠지고 난 이후부터는 우리가 아는 심청이의 내용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곳에는 오로지 하얀 심청이만 등장한다. 갈등을 지우고, 우리가 아는 심청이로 돌아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