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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무대엔 두 명의 심청이 등장한다.

 

하얀 옷을 입은 심청은 우리가 익히 아는 심청이다.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그 ‘효녀’ 심청이다. 하얀 옷을 입은 심청이 곁에는 검은 옷을 입은 심청이가 맴돈다. 이 검은 옷을 입은 심청이는 낯선 심청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리고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심청의 내면이기 때문이다.

 

결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 하는 심청이와 달리, 검은 옷의 심청이는 그런 심청을 어떻게든 말리려고 한다.

 

 

심청 페어사진3.jpg

 

 

‘단심’은 고전 설화 ‘심청’을 모티브로 한 전통 연희극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심청전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실 ‘단심’이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이야기를 내놓을지 궁금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새롭게 펼쳐갈지 말이다. 구시대적인 ‘효녀’ 심청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할지도 의문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게 ‘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단심’은 심청전 하면 떠오르는 ‘효녀 심청’이나 ‘효’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진 않는다. 그보다는 심청 개인의 내면에 집중한다.

 

소설 속 심청이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도, 번복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당수에 몸을 바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을까? 실제로 심 봉사가 눈을 뜨는 건 왕후가 된 심청을 만난 이후였다.

 

설령 딸의 희생으로 아버지가 눈을 떴다 한들,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심청전에서 왕후가 된 심청을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심 봉사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효녀인 심청이가 자신을 잃고 혼자 남겨진 아버지의 삶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을까?


우리가 아는 심청전 속 심청이는 희생정신으로 가득해 결연하게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자신의 선택을 번복하거나, 다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심청이는 아주 불안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불확실함,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목숨을 내놓는 일에 대한 공포 등. 무대는 소설에서 지워졌던 심청이의 복잡한 내면에 집중한다. 검은 옷의 심청이가 하얀 옷의 심청이보다 더 감정적이고, 극적인 이유다.


그렇게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는 죽지 않고, 운 좋게 용궁 여왕을 만난다. 실제 소설과 다른 대목이다. 용왕이 아닌 용궁 여왕의 보살핌을 받으며 심청이는 서서히 몸을 회복해 간다. 엄마를 가져본 적 없는 심청이가 따스한 모성을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용궁 여왕 역할로는 배우 채시라가 캐스팅돼 눈길을 끌었다. 1년 만에 무용수로서 프로 데뷔 무대를 갖게 된 그는 ‘단심’에서 절제된 동작과 카리스마로 심청이 물속에서 마주한 신비롭고 따스한 세상을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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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마다 펼쳐지는 화려하고 신비로운 미디어 아트는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고전 설화와 현대적 예술이 조화되는 순간이다.

 

특히 심청이 용궁 여왕을 만나 보살핌을 받는 2막은 선명하면서도 입체적인 핫핑크 물결이 무대를 꽉 채운다. 무용수들의 의상과 소품도 모두 핑크색이다. 감각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단심’은 국립정동극장의 2025년도 K-컬처시리즈 두 번째 작품 ‘단심’이다.  K-컬처시리즈는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담아낸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공연 브랜드로, 첫 작품은 ‘소춘대유희’를 모티브로 한 ‘광대’였다.

 

‘단심’은 지난 8일부터 공연을 시작했으며, 6월 28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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