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눈을 마주하면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돌아보게 되고 이 맑음이 세상의 무게에 물들지 않기를 조용히 소망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할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수취인불명>은 바로 이런 ‘순수’와 ‘현실’ 사이를 깊이 성찰하게 되는 두 소년에 대한 작품이다.
["우정의 맹세놀이, 밧줄타기, 군인놀이가 전부였던 소년시절. 하지만 이 모든 놀이가 진짜 현실이 되고, 유년시절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 어렵게 된다면 어떨까요? 캠프파이어 앞에서 나누던 이야기에도, 엄마에게 쓴 편지에도, 좋아하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기도문에도, 이 두 보이스카우트는 그저 알려주고 싶었죠."] - 시놉시스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 3년 연속 퍼스트어워드를 수상한 화제작 <소년에게서 온 편지: 수취인불명>이 드디어 한국 관객을 찾아왔다. 2025년 5월, 연우소극장에서 만나본 이 연극은 단 60분의 러닝타임 안에 ‘순수’와 ‘부조리’ 그리고 ‘성찰’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연극은 보이스카우트인 두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군인 놀이, 밧줄 타기, 우정의 맹세. 모든 것이 장난이었던 시절. 하지만 베트남 전쟁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그 모든 장난이 갑자기 ‘실전’이 되고 만다.
그들은 캠프파이어 앞에서 속마음을 나누고, 군인 놀이를 하고, 좋아하는 대통령에게 기도문을 바친다.
그저 자신들이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무대는 작고 소박하다. 큰 장치나 세트도 없다.
하지만 배우들의 움직임, 호흡, 시선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고, 어떤 장면보다 강렬하다.
이 작품은 2인극으로 밀도 있는 스토리텔링과 광대극, 피지컬 씨어터가 결합되며 큰 매력과 울림을 선사해준다. 60분 간 ‘몸’으로 기억을 말하고, ‘움직임’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배우 클로이 라이스와 나타샤 롤란드는 원작 그대로 이번 내한 공연에 직접 참여하였고, 작은 소극장에서 마주한 이들의 표정과 눈빛으 그 자체만으로 압도적이였다.
모든 대사는 영어로 진행되지만, 한글 자막이 제공되며 언어 장벽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영어 대사를 들으며 배우들의 감정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던 점이 또 다른 몰입의 계기가 되었다.
영어를 들을지라도 배우들의 눈빛과 손짓 하나하나가 마음에 직관적인 감정으로 들어온다. 마치 아이들의 덧없는 마음을 보게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극에선 꾸준히 비틀즈의 음악이 흐른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소년들의 ‘장난’과 현실의 ‘비극’ 사이를 잇는 정서적 연결 고리 역할을 해준다. 기찻길 위에서 나누는 대화, 대통령을 향한 농담들. 가벼워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때로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극을 보며 아이들의 싸움과 어른들의 전쟁은 정말 다른가? 이데올로기와 도덕, 그 모든 것을 누가 강요했는가? 우리가 자라온 시대는,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과연 그 소년들에게 떳떳한가?
질문을 하게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