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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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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른이 되면>은 18년동안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살아온 동생과 다시 함께 살아가게 되는 둘째 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 함께한 시간을 일기 쓰듯 담담하게 적은 그는 모든 장애인의 '일상성의 회복'을 꿈꾼다. 책 속 묘사된 혜정 씨는 탈시설 장애인으로서, 다양한 경험과 세상에 열린 주체로서, 자립하는 주체로서, 혜정 씨로서, 혜영 씨의 하나뿐인 동생으로서 존재한다. 그 '존재함'을 기록한 이 책은 자립하는 장애인과 그를 둘러싼 비장애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헤아리고, 여러 번 배우며 반성한다.

 

 

1. 일상성과 평범성의 회복

 

작가는 일상성과 평범성의 회복을 강조했다. 이 책은 장애인과 주변의 가족들이 진정 바라는 세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혜정 씨와 혜영 씨는 유튜브에 함께 출연하는데, 작가는 동생이 장애가 있다는 점을 미리 공식적으로 알리고 '양해'를 구하지 않는다. 가끔 놀람의 반응을 얻기도 하지만, 외려 작가는 그 사실을 따로 공지해야 하는 이유를 질문한다. 혜정 씨의 자연스러운 출연은 장애인에 대해 낯설음을 느끼는 보편화된 감각과 반응에 도전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런 활동은 누구나 그렇듯, 동생과 함께하는 소중한 일상의 순간들을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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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와 내가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

 

좋은 순간만 기록하고 또 기록해도, 결국 혜영 씨의 일상과 혜정 씨의 일상은 매우 다르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그려볼 수 있는 미래의 범위도 다르다. 작가는 그 '다름'을 감내하는 혜정 씨와 가족의 삶을 낱낱이 담았다. 그 속에 장애인에 대한 국가 시스템의 부조리함과 가족으로서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아픔이 존재했다.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이 사는 삶에 대해 몰랐던 나로선 부모님이 혜정 씨를 이른 나이에 ‘수용 시설’에 보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부모님의 선택에 존재했던 배경을 설명한다. 그는 국가적인 장애인 정책은 대부분 장애인이 시설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건설되며, 가족들이 시설을 선택하도록 은근한 압박을 가해진다는 점을 짚어낸다. 가정 내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에 대한 까다로운 기준과 센터에 들어가기 위한 기나긴 웨이팅리스트는 부모님을 좌절시키고, 장애인 수에 비해 부족한 정책과 공간은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장애인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낙오됨을 느끼게 하는 사회에서 혜영 씨는 종종 동생과 함께 할머니가 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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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애인을 대할 때 주의 사항은 필요치 않다

 

장애인을 대해 내가 가진 정보는 적절치 않았고, 충분치 않았다. 장애인과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을 접할 때마다 그들을 배려하면서 동시에 평범하게 대할 수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곤 했다. 작가는 장애인을 대하는 데에 특별한 주의 사항은 필요하지 않다며, 무례를 범했다면 사과하면 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소통하면 된다고 말한다. 장애와 비장애간의 간극은 중요치 않으며,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소통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장애인으로서 다른 비장애인을 대할때와도 다를 바 없는 태도이다. 상대의 ‘상태’에 따라 대화를 이어가는 것. 서로 간의 다름을 인식하고 경계하기보다 우선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화해보는 것.

 

그러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똑같이 대우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해, 작가는 장애인이 ‘취약’하지 않고 ‘연약’하다는 점을 짚는다. 모든 부분에서 비장애인 중심적인 이 사회에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적응이 어려운 경우를 위한 보호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약한 지점을 진단하고 보호하는 장치이자, 그들의 자립을 지탱하는 지지대로서의 특정한 체제는 필수적이다.

 


4. 연약함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란 내가 연약해질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공정 감각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남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기보단 그들이 비로소 권리를 외칠 때, 주류 사회가 어떤 피해를 입는가에 모든 시선과 손가락질이 집중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든, 언제나 연약해질 수 있음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공감을 통해 모두를 위한 장치를 꾸준히 주장해나가야 한다. 궁극적으로 좋은 세상은 작가가 말하듯, ‘연약한’ 이들에게 최적화된 세상이다.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마음의 여유에 기반해 행동하는, 그런 당연한 사회가 도래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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