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이 자주 보인다.
지금 시대에 맞는 정서와 가치관, 혹은 다른 가정하에 재탄생한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던 진부한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숨결을 불어넣는다.
국립정동극장에서 진행중인 공연 <단심>은 심청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전을 완전히 현대식으로 탈바꿈했다던지, 심오함으로 관객을 난해의 바다에 몰아넣는 류의 재해석은 아니다. 다만 심청의 속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리 참신한 아이디어는 아니겠지만, 방식이 독특하다. 언어적 기술 없이, 무용이라는 시각적 예술로 속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에게 심청은 효녀의 아이콘이다. 부모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는, 마음씨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어린 여성. 오로지 가여이 여기는 마음 하나로 삶을 송두리째 포기하라고 강요받던 유교 사회의 여인.
<단심>의 심청은 두 명이 등장한다. 하얀 옷을 입은 심청,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심청이다. 하얀 심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꺼이 희생하는 착한 여인이라면, 검은 심청은 그녀의 그림자다. 억울하고, 싫고, 도망치고 싶거나 모두 망치고 싶고, 화를 내고 싶은 유혹이라고 해야할까. 우리가 모르던, 혹은 외면한 인물의 어두운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다.
하나가 되어 움직이다,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홀로 춤을 추기도 하는 검은 심청은 말 한마디 없이 말을 건넨다. 우아한 몸짓 속에서 시끄럽고 어두운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듯 하다. 두 명이자 하나인 심청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물의 몰랐던 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용수의 섬세한 움직임을 더욱 극대화하는 것은 마냥 전통적이지 않은 의상의 몫도 있다. 시폰 원단의 천을 아낌없이 쓴 듯한 드레스는 서양의 느낌이 물씬 나면서도, 단아한 디자인으로 한국의 감성을 놓치지 않는다. 심청이 뛰고, 회전하고, 점프할 때마다 봄바람에 꽃이 흩날리듯 하늘하늘 천천히 떨어지는 치맛자락이 잔상처럼 남아 <단심>의 어딘가 씁쓸한 감성을 배가시킨다.
재해석 된 것은 심청과 의상뿐이 아니다. 무대 공간 조차 재해석의 대상이 된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 전 등장하는 사나운 바다와 뱃머리를 보고있으니 마치 내가 물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미디어아트와 무용이 결합되는 공연은 처음 보았는데,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심(單沈)>이라는 극의 제목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배경의 사나운 바다는 단지 바다가 아니다. 홀로 가라앉기를 결심하기까지, 심청의 폭풍이 휘몰아치듯 하던 감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용궁 장면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사나운 바다를 거쳐 도착한 곳이 마치 낙원처럼 연출되었다. 꿈 속에 있는 듯, 혹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듯, 몽환적인 분위기가 강렬한 분홍색으로 그려진다. 현실에 치여 도저히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던 심청이 이곳에서야 드디어 마음을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수한 경외와 행복을 느끼는 심청에게 검은 그림자는 드리우지 않는다.
용궁의 여왕이 심청의 어머니인 듯 연출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원작과는 다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황제와의 혼인을 앞둔 여인의 합당한 뒷배경을 마련해주기도 하지만, 심청이라는 인물이 단지 희생양이 아닌 하나의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셈이다.
<단심(單沈)>은 약 75분간 공연되는 작품이지만 내용과 안무, 연출이 강렬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아는 고전을 재해석하는 만큼 다양한 차이가 돋보이기도 한다. 위 언급된 부분들뿐 아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단청 색을 변주 혹은 활용하는 것이나, 심 봉사가 눈을 뜨는 것을 '말 없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방식은 문화 콘텐츠가 무궁무진하게 창의적일 수 있다는 청사진이 되어주었다.
전통문화가 촌스럽다는 편견으로 이런 공연을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다면 꼭 정구호 연출 <단심(單沈)>의 미장센을 경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문화는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