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재즈의 달이다.
가정의 달이거나 신록의 계절처럼 공인되는건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런 감상을 갖고 있다.
한국 재즈 페스티벌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달이기도 (올해는 5월 30일 - 6월 1일 개최/다른 하나의 축은 가을에 열리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하고, 대학교 입학 직후 입부한 재즈 동아리의 공연을 준비하던 기억이 묻어있는 달이기도 하다.
스탠다드 곡도 몇곡 모르고 언젠가는 쳇 베이커가 섹소포니스트야 트럼페니스트야? 하는 의문을 품던 리스너일때도 심심찮게 보이고 들리던 키워드가 바로 '블루노트'다.
블루 노트(blue note)란 재즈나 블루스 등에서 사용되는 장음계이다. 그 중 제3음과 5음, 7음을 반음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곡을 감상하면서 이 노트를 캐치했다는건 아니고,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등의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작업한 레코드 레이블의 사명으로서 그 이름을 들은 것이다.
블루노트는 1939년 설립된 재즈 음반사이다. 80년에 걸친 세월 동안 1000매 이상의 음반을 내고도 '수많은 앨범을 프로듀싱 했지만, 이 가운데 무시해도 좋을 만한 것은 없다.' 라는 평이라니,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발매 음반사만으로 이토록 강력한 큐레이션 파워를 발휘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재즈 입문자에게에는 "블루노트 가이드-필청 음반 10선" 등으로 회자되고, 마니아에게는 "블루노트 컬렉터를 위한 지침" 이 존재할 정도. 지금부터 블루노트의 내막,까진 아니더라도 외양이라도 파헤쳐본다.
재즈의 흐름 속에서 피어난 블루노트
블루노트가 처음 탄생한 1939년, 미국은 대공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뉴욕은 예술과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그 언젠가 독일에서 건너온 알프레드 라이온(Alfred Lion)과 프랜시스 울프(Francis Wolff)가 하나의 음반 레이블을 설립한다. 그리곤 맥스 마굴리스(Max Margulis)라는 인물의 자금 지원으로 시드니 베쳇(Sidney Bechet)의 'Summertime'를 첫 음반으로 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블루노트 레코드의 시작이었다.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는 재즈가 단순한 음악적 실험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세계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딕시랜드와 스윙이 주를 이루던 시기로 흑인 뮤지션들은 주류 음악계에서 여전히 소외되어 있었고, 그들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뉴욕의 클럽들은 그 예속에서 조금 비껴나 있었다. 색다른 선율을 찾고, 기존 형식을 깨고자 했던 이들이 모여드는 와중 그 중심에 블루노트가 자리했다.
점차 블루노트는 단순한 음반 레이블을 넘어 재즈 혁신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된다. 비밥(Bebop), 하드 밥(Hard Bop), 쿨 재즈(Cool Jazz), 소울 재즈(Soul Jazz) 등 재즈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어 낸 다양한 스타일의 앨범들이 이곳에서 탄생하였고,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허비 행콕(Herbie Hancock),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같은 거장들이 블루노트 레이블을 통해 작품을 남겼다.
클럽에서의 잼 세션, 레이블이 마련한 즉흥적 녹음 세션들을 통해 이들은 서로의 연주를 들으며 자극을 받고, 자연스럽게 교감하며 음악적 실험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블루노트의 미학 - 음반 커버 이야기
블루노트의 음반 커버는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음악을 시각화한 예술이었다. 그 중심에는 프랜시스 울프의 흑백 사진이 있었다. 그의 흑백 사진은 재즈의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냈고, 리드 마일스의 혁신적인 타이포그래피와 레이아웃 디자인은 블루노트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완성했다. 피곤한 얼굴로 색소폰을 불던 존 콜트레인의 앨범 《Blue Train》,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텍스트로 완성된 허비 행콕의 《Maiden Voyage》 등은 블루노트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대표작이다.
John Coltrane - Blue Train (1957): 블루노트의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콜트레인의 진지한 표정과 색조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 - Moanin' (1958): 블루노트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커버 디자인의 대표작으로, 블레이키의 드럼 연주가 커버에서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블루노트의 공간 - 재즈 클럽 이야기
블루노트는 단순히 음반사에 머물지 않았다. 1981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 첫 번째 블루노트 재즈 클럽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현역 아티스트와 신진 뮤지션들이 함께 무대에 서며 라이브 음반을 녹음하곤 했다. 블루노트 클럽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예술의 장이었다.
이후 블루노트는 도쿄, 밀라노, 하와이, 베이징, 상하이 등으로 확장되며 재즈 팬들에게 성지가 되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뮤지션들은 무대 옆에서 대화를 나누며 또 다른 음악을 구상했을 것이며, 그 열정이 블루노트를 '재즈의 본고장'으로 자리 잡게한 힘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 블루노트는 이미 2004년 강남 교보타워 2층에 '블루노트 서울'을 오픈했으나, 오픈 3개월 만에 폐업하였다. 20억 원대 자본이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였지만, 입장료가 8만 원에 달하고, 미국처럼 매주 세계적 뮤지션을 초청하는 고가 전략이 한국의 재즈 시장 현실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재즈 인구의 가능성과 함께 재기를 꿈꿔볼 수 있을지 모른다.
블루노트는 지금도 여전히 재즈의 중심에서 새로운 뮤지션들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현대 재즈 아티스트들 역시 블루노트를 꿈꾸며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간다. 비록 시대는 변했지만, 블루노트를 통해 전파되는 재즈의 선율은 여전히 외유내강의 힘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