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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을 만든 예술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점점 예술작품만큼이나 예술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지던 차에, 도서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을 만났다. 누구나 아는 유명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까? 그런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는가?


이 책은 미술 평론계 최고 권위자인 저자 마이클 페피엇이 애정을 품은 반 고흐, 베이컨, 피카소 등 27인의 예술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술가의 일생은 물론이고, 그들과 연관된 독특한 이슈와 숨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거기에 예술가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과 평가가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이 이 책의 핵심 특징이다. 실제 예술가를 만나 대화를 나눴던 일화부터,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통렬한 비평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반 고흐부터 샤드까지, 27인의 예술가 이야기


 

저자는 반 고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 책의 서두를 연다. 이미 너무도 유명한 이 화가는, 저자가 소개하는 그의 일생과 그가 생전에 작성했던 편지로 독자의 연민과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반 고흐는 그 누구보다도 그의 고통과 갈등을 작품과 분리하기 어려운 화가였다. 특히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의 일부 내용들은 그가 일생에서 얼마나 큰 내적 갈등과, 이를 완성도 높은 예술 작품으로 구현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 내적 세계와 삶의 태도 등 여러 요소가 맞물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반 고흐라는 화가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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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Gogh, Café Terrace at Night, 1888.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결국 고흐는 일생 전반에서 내적 불안과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또한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술적 성장을 꾀했다. <밤의 카페 테라스>처럼 꽤 대조적인 색감으로 묘사된 그의 작품들을 보면, 마치 그가 품었을 내면의 갈등과 불안을 색채로 절절히 토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한편,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화가는 크리스티안 샤드였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몰랐으나 책을 다 읽은 후, 크리스티안 샤드의 이야기에 꽤 많은 메모를 해 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그만큼 샤드는 저자뿐만 아니라 내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증거였다.


샤드의 그림은 사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 대부분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진하고 굵은 윤곽으로 표현되고, 무표정에 냉담한 시선을 가진다. 그림 너머로 감상자를 응시하는 듯한 시선은 어딘가 슬퍼 보이기도, 화가 난 것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샤드의 대표 작품들은 주로 인간의 몸을 묘사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누드 작품과 달리, 샤드의 그림 속 인물들은 은근히 비치는 셔츠를 입고 있는 등 여러 장치가 추가되어 있다. 이에 대해 샤드는 이러한 방식이 호기심과 표현 욕구를 훨씬 더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소위 ‘배운 변태’라는 타이틀이 어울리겠다고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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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Schad, 1912, by Franz Grainer.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놀라운 점은, 샤드는 대부분의 그림을 전적으로 기억에 의존해 그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샤드는 눈썰미와 기억력이 굉장한 화가였다. 사물을 보고 똑같이 그리는 것도 쉽지 않은 내게, 샤드의 작업 방식은 여간 놀라운 게 아니었다.

 

 

혹자는 샤드가 별난 것을 평범한 것처럼, 평범한 것을 별난 것처럼 보여 주는 특유의 재능을 바탕으로 1929년에 베를린에서 두 명의 서커스 공연자에게 아름답고 걸출하고 취약한, 이 세 가지 특징을 모두 발견해 초상화에 담아낸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 p.138

 

 

당대 사회의 모습을 냉담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샤드는 그림을 직관의 영역으로 보았다. 저자의 말처럼 그의 초상화들은 사실의 영역을 객관적으로 포착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서 당대 사회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경계를 뛰어넘는 예술가


 

한편 저자는 특히 자신과 같이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책에서도 호안 미로, 앙리 미쇼 등 글과 그림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예술가들을 이야기할 때 한층 더 깊은 흥미와 애정을 드러낸다.


특히 화가이자 시인인 앙리 미쇼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저자는 앙리 미쇼에게 있어 그림과 글쓰기는 완전히 독립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가 관심을 보였던 인간의 심층적 내면세계를 구현하고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글과 그림은 완전히 분리된다는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공통적인 메시지는 ‘고통’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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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있어 늘 그림보다는 글이 익숙한 나에게도, 두 가지의 작업을 함께 진행하는 예술가들은 꽤 인상적이다. 생각해 보니 가끔 글을 쓰거나 말할 때, 단어와 문장만으로 설명이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데 어떤 단어로 설명해도 100%의 완벽한 표현이 어려웠다. 아쉽게도 난 그림에는 소질이 없기에, 앙리 미쇼라는 작가이자 화가가 참 부러웠다.

 

이외에도 저자는 존 리처드슨의 글솜씨에도 진심으로 감탄한다. 그는 도라 마르, 시릴 코널리, 피카소 등 여러 인물을 단 몇 줄로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실제 그가 쓴 글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리처드슨이 자신의 성격과 내면적 동기들을 더 많이 내비쳤다면 재미있고 재치 있게 청춘을 엮어 낸 이야기가 정말로 인상적인 회고록이 되도록 더 큰 여운을 남겼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 p.172

 

 

고통과 번민이 없는 자는 예술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들었던 것도 같은데, 이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삶에서 저마다의 고통을 겪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수용하거나 정복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기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예술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도 강력하다.


우리가 예술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만큼, 이를 창조해 낸 예술가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갈등과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 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예술가들 또한 우리처럼 삶의 고단함을 견뎌낸 존재임을 조용히 일러주며, 그들을 먼 세상의 인물이 아닌, 곁에 머무는 사람들로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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