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의사가 진단하고 치료 방안을 제시해준다. 사회가 병들면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서울대 정치철학과 교수라면 어떨까.
지난 책 ‘한국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김영민 교수는 여러 언론과 매체를 통해 통찰력 있는 분석을 보여준 칼럼니스트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통해서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번 책에도 역시 그간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으고 새로 몇 편의 글을 더해 새로 펴냈다. 특히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현주소에 대해 낱낱히 파헤치고 다시 한 번 사유해볼 다양한 주제를 던져놓는다.
지난해 겨울, 눈앞에서 정치적 기반이 내려앉았다. 한국은 곳곳에서 지반침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싱크홀의 나라가 됐다. 섣부른 정답을 내놓기 전에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 김영민, 시사인, 김영민의 연재할 결심, 간신히 지상으로 기어 올라와 묻는다 중에서
2024년 12월 3일, 다들 그날 밤을 기억하시는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마라탕을 시켜놓고 유튜브를 보던 밤 핸드폰에서 알람 하나가 띠링- 울렸다. 짧은 속보 한 줄을 다 읽기도 전 연이어 울리는 각 언론사들의 비상 알림. ‘비상 계엄’이라는 네글자가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언론사 실시간 라이브를 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발표하는 포고령의 한 문장 문장마다 차오르는 분노와 당혹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피로 쓴 그간의 역사를 다시 피바다로 뒤덮겠다는 그 어처구니 없는 선언 이후로 한국은 그야말로 소용돌이를 헤쳐나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그날의 비상계엄은 단일한 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에 쌓여 곪아가던 각종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법부와 행정부, 군과 검찰, 사회를 지탱하던 엘리트들과 권력들의 민낯을 마주했고 그 추악함과 민주주의의 재생력을 동시에 마주했다. 우리나라의 정치에서 의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를 봤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갈등은 심화됐지만 청년들은 거리로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헌법과 법조항을 읽었으며 정치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섣불리 정답을 말할 수 없는 시기이지만 수많은 질문이 탄생했다는 것만으로 유의미하다. 표면적으로는 더 혼란스러운 세상이 됐을지 몰라도 한국은 우리의 현주소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이런 시점에 출간된 김영민 교수의 이번 책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고조선의 역사부터 우리 민족의 근간과 의미를 따져나가는 그의 분석력과 사유의 깊이는 그가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가지고 있는 위치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져있는 여러편의 글은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섣불리 답을 제시하지 않으며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고민을 제시해준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한국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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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을 찾을 수 없는 4개월이었다. 나름대로의 내구성은 갖춘 줄 알았던 한국의 사회, 경제, 정치가 시민들의 막연한 믿음을 배반하고 구석구석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믿어온 한국이란 무엇이었는지를 허탈한 표정으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긴 투쟁 끝에 국면은 일단락되었으나 우리 앞엔 속이 훤히 보이도록 허물어진 이 나라가 휑하니 남아있다. 질문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무른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교수가 이 질문에 대답한다. 책은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 총 3부로 나뉜다. 과거 파트에서 홍익인간과 단군신화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현재 파트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정당 정치의 무능과 정체, 언론의 불신 등의 고민을 넘어 미래 파트에서 우리에게 남은 가능성까지 이어진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새로운 언어'다. 현재의 한국을 분석하기에 기존의 언어는 낡았으니 새로운 언어를 통해서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 자신도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탐색한다.
혼란한 와중엔 입 있고 펜 잡은 모두가 말을 쏟아낸다. 말들의 향연 속에서 길 잃긴 더 쉬워진다. 빠른 생각과 판단을 재촉하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각자가 촘촘한 질문들을 쥐고 있어야 한다. 김영민은 이 책을 통해 '한국이란 무엇인가'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 책소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