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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마주칠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다.

 

잘 가던 기차가 갑자기 분리되어 내가 타고 있던 칸이 출발지로 되돌아가고, 그로 인해 환승 열차를 놓쳐 모든 여행 계획이 엉켜버린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 분명 예약했던 재즈 바에서 내 이름이 명단에 없다며 거리로 내쫓겨, 비어 있는 가게를 찾아 헤매던 밤도 있었다. 단 1분 차이로 집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 환승을 놓쳐,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봉고차를 타고 두 시간을 이동했던 적도 있다.


그 순간에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오히려 소중한 추억이 되곤 한다.

 

놓친 기차 덕분에 오전 일정이 사라져 여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겨우 찾아간 마지막 재즈 바의 라이브 공연은 정말 최고였으며, 봉고차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는 금세 친해져, 나중에 생일파티에 초대받는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난관은 결국 더 큰 추억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한 달 전,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 참석하는 이모와 이모부를 도와 미국에 다녀왔다. 이곳에서도 잊을 수 없는 여행의 한 장면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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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중, 그날따라 유난히 멕시칸 타코가 먹고 싶어졌다.


여러 번 검색 끝에 구글 평점 4.5 이상의 타코 맛집을 찾았고, 우리는 부푼 기대감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높은 평점에 걸맞게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우리는 길 건너편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솔직히, 그날 맛본 타코는 정말 인생 최고의 타코였다.


직접 숯불에 구워주는 고기와 고소한 과카몰리,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맛은 정말 잊을 수 없었다. 몇 개를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푸짐하게 먹고, 미국의 물가를 생각하면 꽤 저렴하게 식사를 했다는 만족스러운 평가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가 타고 온 차가 보이지 않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뉴스에서만 보던 절도 사건이 우리에게도 일어난 걸까,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설상가상으로, 몇몇 불량 청년처럼 보이는 이들이 어두운 주차장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고,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차도 없이 낯선 곳에 남겨졌다는 사실이 점점 두려워졌다.

 

하지만 어른들은 역시나 어른들.


이모와 이모부는 침착하게 차량의 행방을 추리했고, 이모부는 분명 견인 조치가 있었을 것이라며 주변 표지판을 살펴보라고 했다. 주차장 구석을 다시 살펴보니,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글씨로 ‘30분 이상 주차 시 견인’이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견인 회사를 찾아 우버를 불러 이동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택시는 목적지로 가다가 돌연 골목 안으로 방향을 틀었고,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펼쳐졌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말이다.

 

거대한 창고형 클럽 앞에 수백 명이 모여 춤을 추고, 길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 찢어질 듯한 큰 음악이 좁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 여기 라스베가스였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동양인이 드문 그곳에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후드집업을 깊이 눌러쓰고 견인차 센터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수상하게 생긴 건물에, 감옥의 철장처럼 만들어진 카운터 뒤로 직원이 눈만 보이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불안했지만 차를 돌려받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서류를 건넸고, 우리에게 내려진 벌금은 385달러. 고작 타코를 30분 넘게 먹었다는 이유로 약 55만원을 내야 했다.


돈을 안내면 차는 당연히 안 줄 것이고, 귀는 물론, 머리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음악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서 실랑이를 벌릴 수도 없었다.


이모부가 현금을 세는 순간, 주차장에서 봤던 불량스러운 청년들이 우리 쪽으로 들어왔다. 순간 강도인가 싶어 긴장했는데, 그들은 오히려 “너희도 ROSS에서 왔어?”라며 말을 걸어왔다. 알고 보니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연으로 차를 견인당해 황당해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동질감이 드는 동시에 겉모습만 보고 경계했던 것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는 무사히 차를 되찾았고, 그 골목을 서둘러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온 뒤에는 견인 회사와 라스베가스 주차법을 찾아보았는데, 역시나 석연치 않은 불법이 개입된 것 같았다. 네바다주 교통과에 신고도 해봤지만, 미국의 느린 행정 처리 때문에 이 문제가 금방 해결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때는 정말 심각한 일이었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니 이모, 이모부와 함께 그날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혹시나 강도를 만나거나 차량이 절도되는 거 보다는 낫지 않겠냐면서!


이렇게 또 한 편의 심각하지만 웃긴 여행 에피소드가 내 인생에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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