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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3월 말, 런던 시내 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달걀 조형물들이 나타났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전시대에 부착된 QR 코드를 스캔했고, 곧이어 이 조형물들이 나타난 이유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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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 와프(Canary Wharf)역에 설치된 조형물. 출처: 직접 촬영.

 

 

 

공공 미술 캠페인 “Big Egg Hunt”


 

이 달걀들은 남아시아의 야생 동물 개체수 보존과 서식지 마련을 지원하는 자선 단체 Elephant Family에서 기획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Big Egg Hunt”의 설치 조형물들이다. 해당 단체는 2003년부터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야생 동물 지원의 시급성을 홍보하며 기금을 조성해왔다.


이번 프로젝트 “Big Egg Hunt”는 2012년부터 런던에서 시행되었으며, 초기 2년 간 긍정적인 성과를 얻어 뉴욕에서도 운영 중이다. 조형물의 형태가 달걀인 이유는 프로젝트의 진행 기간인 3월 24일부터 4월 27일 중 부활절*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올해 프로젝트에는 총 5명의 디자이너들이 조형물 제작에 참여했으며, 작품들은 코벤트 가든, 대영박물관, 버킹엄 궁전 등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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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조형물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지도. 주로 관광지나 출퇴근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설치되었다. 출처: Big Egg Hunt 2025 앱 화면 캡쳐.

 

 

*유럽에서는 연휴 기간으로 지정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을 기념한다. 참고로 영국의 부활절 법정 공휴일은 4월 18일부터 4월 21일까지였다.

 

 


달걀을 모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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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Egg Hunt 2025 앱. 출처: Big Egg Hunt 2025 구글 플레이스토어 화면 캡쳐.

 

 

“Big Egg Hunt”의 재미있는 점은 단순히 야외 공간을 갤러리 삼아 조형물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앱을 활용하여 시민과 관광객들이 프로젝트를 더욱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다는 것이다. The Big Egg Hunt 앱을 설치하면 달걀 조형물 지도와 함께 ‘달걀 수집하기’ 카테고리를 찾을 수 있는데, 이 기능을 통해 런던을 탐험하며 가상의 달걀 컬렉션을 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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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전시대. 자세히 보면 #4807이라고 적혀 있다. 출처: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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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의 전시대에 적힌 4자리 숫자를 입력하는 창이다. 출처: Big Egg Hunt 2025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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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집 때 얻었던 엽서 이미지. 게임 ‘피크민 블룸’이 떠오른다. 코끼리가 행복해 보인다. 출처: Big Egg Hunt 2025 앱 화면 캡쳐.

 

 

앱에 접속하여 내가 발견한 달걀에 적힌 4자리 숫자를 입력해보았다. 숫자를 입력하자, 내가 수집한 달걀 목록에 해당 조형물이 추가되며 식음료 할인 쿠폰, Elephant Family에서 기획한 엽서 이미지 등 소정의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조형물마다 받을 수 있는 보상이 달라 생각보다 달걀들을 찾는 동기부여가 되었고, 마음에 드는 달걀에 좋아요를 눌러 취향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여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달걀을 소장하자!


 

“Big Egg Hunt”는 공익성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기금 모금도 의도하고 있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통해 Elephant Family의 활동에 흥미가 생긴 시민들이 전시대의 QR 코드 혹은 앱에 접속하여 원하는 금액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모든 달걀들은 경매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 기간 종료 후 소장 가능하다. 전시 기간 중 The Big Egg Hunt 앱이나 전시대의 QR 코드를 스캔해 Elephant Family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마음에 드는 조형물에 기부금을 입찰할 수 있다. 입찰은 익명과 실명 모두 가능하며, 웹사이트에서 조형물별 입찰 현황을 알 수 있다. Elephant Family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장기적으로 기금을 모금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 경매 프로그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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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 입찰 현황. 기고문 작성 시간 기점으로 입찰액과 기부금 총합은 55,378 파운드(한화 약 1억)였다. 출처: Elephant Family 옥션 사이트 캡쳐.

 

 


시민 참여와 기금 모금, 두 마리 토끼를 챙기는 공공 미술과 자선의 결합


 

“Big Egg Hunt”는 공공 미술의 성격을 자선 활동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전략적인 예술 프로젝트다. 조형물이 설치된 지역의 인근 거주민이나 통근자들은 익숙한 생활 반경에 새로운 조형물이 설치되어 달걀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조형물은 약 한 달간 설치되기 때문에 나처럼 ‘한 번 쯤은’ 호기심을 가지고 QR 코드를 스캔해 볼 것이다.


관광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관광객들은 평균 1주일 내외로 런던에 체류하지만, 달걀은 주로 유동인구가 많거나 관광지 혹은 숙박 업체들이 밀집된 지역에 설치되어있어 하루 동안 여러 장소에서 달걀을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관광객들 역시 달걀의 정체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Elephant Family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공미술로 일상에 사소한 재미를 제공하여 긍정적 인상을 얻고, 단체의 인지도를 높여 야생동물 보호의 시급성을 효과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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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harities Aid Foundation (CAF) (2025) UK Giving Report. Figure 8: Did any of the following prompt your last donation? (p. 15)

 

 

이렇게 얻은 ‘인지도 향상’과 ‘긍정적 인상’은 기금 모금 시 강력한 힘을 지닌다. 영국의 자선 관련 재단인 Charities Aid Foundation의 2025년 영국 기부 리포트에는 도합 22%의 응답자들이 개인적인 경험 혹은 기억으로 기부를 결심한다고 언급한다. 공공 미술이라는 형태로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제공된 새로운 일상의 경험과 이를 통해 형성된 심리적 애착은 일반적인 광고 캠페인과 기부를 권유하는 문구보다 더욱 강력한 기부 동기가 된다.


또한, 각 달걀 조형물의 입찰가는 500 파운드에서 2500 파운드 사이에 포진해있는데, 이는 한화로 약 90만원에서 450만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즉, 조형물 소장 경매를 통해 거액의 기부금도 비교적 원활하게 모금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Big Egg Hunt”는 런던이라는 도시를 활용하여 일반 시민들에게는 공공 미술관을, 참여 예술가들에게는 경력 개발의 기회를, 기부자들에게는 갤러리를 제공하여 공익과 재정적 성과를 동시에 추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공공미술: 도시개발의 맥락으로


 

영국은 영국의 문화체육 관광부 DCMS(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 Sport)와 영국의 예술위원회 ACE(Art Council England)의 지원 하에 다양한 민간 조직들이 ‘자선 단체’로서 문화예술 사업을 운영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부금 모금 목적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제법 흔하다.


반면, 한국의 공공 미술 사업들은 지역자치단체 혹은 문화예술 관련 재단 및 공공 기관에서 직접 주도하거나, 예술가 및 기획자들이 그 기관들의 지원 사업에 공모하여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따라서 특정 조직의 인지도 향상과 수익 창출보다는 도시 개발과 지역 활성화를 위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들이 많이 실행된다.** 부산의 감천 문화마을과 수원 화성의 성벽을 활용한 야간 설치미술이 비슷한 예시다.


본 기고문은 서울시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을 간단히 소개하고 마무리하려 한다. 서울시는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약 8년 간 해마다 다양한 기획으로 낙후된 지역의 시설을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고, 지역적 맥락을 활용하여 시민들의 문화예술 인프라를 개선해왔다.


가장 최근의 프로젝트는 “다시 숨쉬는 땅, 피어나는 예술, 2024”로, 쓰레기 매립지에서 환경생태공원으로 복원된 노을 공원의 장소적 맥락을 활용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논의하는 야외 전시와 워크숍을 운영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신진 및 중견 예술가들에게 창작 기회를 제공하고, 평소 노을 공원을 자주 이용하는 가족 단위의 시민 참여자들이 워크숍에 참여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최근 4월 23일부터는 정수장 시설에서 생태 공원으로 재탄생한 선유도 공원에서 “선유담담”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에도 작가와 시민 아이디어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여 보다 다양한 수혜층들의 공공 미술 참여를 도모했다.


공공 미술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예술 접근성을 높일 수 있으며, 일부 참여형 미술을 통해 지역에 대한 소속감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롭다. 또한, 성공적인 대규모 공간 개선 프로젝트의 경우 장기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여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영국의 “Big Egg Hunt”와 서울시의 “서울은 미술관”은 각 프로젝트의 세부적인 실행 목적은 다르지만 일상의 공간들을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향후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공공 미술이 지닌 경제적 효과는 무시할 수 없으며 영국 또한 자선 단체의 지원 기준에 공익성과 지역 활성화를 고려한다. 다만, 한국의 공공 미술이 영국에 비해 직접적인 수익보다는 공익 목적의 지역 활성화와 관광 산업을 통한 간접적인 경제 효과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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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찌르무르
"The Big Egg Hunt" 라는 타이틀이 우선 흥미롭다. 게임 같기도 하고, 아이템을 득템하는 재미도 주면서 야생동물을 보존하는데 관심과 지원도 할 수 있는 프로젝트. 유럽의 대도시들이 환경, 차별,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자본주의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 룰을 잘 활용합니다. 정진형 에디터의 글은 잘 설계된 마케팅 활동을 통해 공공성을 실현하는 걸 잘 표현해 주어 그들이 왜 선진사회의 도시들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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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8 11:58:3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