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는 포스터, 잡화, 광고 등 다양한 상업 디자인 작업을 통해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성을 드러내며 아르누보 양식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업 이후 포스터는 단순한 광고물이 아닌 예술적 가치를 지닌 일종의 작품으로 부상했으며, 이렇게 무하는 상업 예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물며 오늘날 예술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는 알폰스 무하의 탄생 165주년을 기념하여 오는 7월 13일까지 <아르누보의 꽃: 알폰스 무하 원화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상업예술로 파리에서 성공을 거둔 무하의 상업 디자인 작품에서 이후 체코의 민족적 정체성을 담아낸 작업까지, 그의 예술과 철학이 발전해온 궤적을 조명한다. 오리지널 판화와 포스터, 유화, 디자인 장식 등 30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아르누보 양식을 넘어선 ‘무하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다.
아르누보의 꽃
‘새로운 미술’이라는 뜻을 가진 아르누보(Art Nouveau)는 고전주의적인 미술을 탈피하려는 기조 속에서 탄생한 예술 운동이다.
특히 아르누보는 인상주의와 같은 예술운동이 이미 활발히 전개되고 있던 순수미술 분야보다는 포스터나 공예 등의 응용미술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공예와 산업을 조화시키는 시도 속에서 예술은 산업과 융화되게 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개념이 탄생하게 된다.
화가이자 디자이너였던 알폰스 무하는 연극 포스터와 광고 등 다양한 상업 디자인 작업에 매진했고, 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주인공으로 한 포스터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두며 무하는 단숨에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성상을 중심으로 한 무하의 스타일은 단순히 아르누보 양식을 넘어서 무하의 독창적인 양식; ‘르 스타일 무하(Le Style Mucha)’라고 불렸으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유려한 곡선과 꽃이나 덩굴과 같이 자연을 모방한 장식은 화려하고 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표젹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아르누보의 또 다른 중요한 가치는 누구나 평등하게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믿음에 있다. ‘국민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던 무하 역시 이러한 아르누보의 철학을 따르며 많은 대중들이 예술과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예술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특히, 예술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가격이 저렴했던 장식 패널은 그의 주된 작업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무하는 포스터, 장식품, 장식 패널 등을 일상 속의 물건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고, 거리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브랜딩의 시초
무하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원석이나 꽃, 계절 등을 주제로 한 장식 패널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아르누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네 개의 꽃 - 장미, 카네이션, 아이리스, 백합>은 각각의 꽃을 상징하는 요정을 등장시켜 서로 다른 유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무하의 상업 디자인 작업에서도 비슷한 경향성을 찾아볼 수 있다. 무하는 제품 광고에서 제품을 강조하여 그리기보다는 해당 제품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표현해 냈다. 특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신비롭고 유려한 여성은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기능했다.
‘모엣&샹동’의 샴페인 광고 이미지에서는 샴페인을 강조하기보다, 드레이프 의상을 입은 우아한 분위기의 여성을 등장시켜 해당 인물이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브랜드의 이미지로 표현해낸다. 이러한 무하의 시도는 현대 광고 디자인과 브랜딩의 선구적인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슬라브의 화가, 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의 후기 작업은 체코의 민족적 정체성을 담아낸 작품이 주를 이룬다.
그는 파리에서 거둔 상업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민족주의적 신념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실현했다. 이 시기 무하는 조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이후에는 국가의 지폐와 우표 디자인을 맡아 신생국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었다.
특히, 외세의 핍박 속에서 조국에 대한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제작했던 ‘슬라브 서사시’는 무하의 인생을 담은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슬라브 서사시’는 체코와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20 제곱미터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 20점으로 구성된 대규모 연작으로, 무하가 자신의 고향과 민족에 대해 바치는 애정 어린 한 편의 시였다.오늘날 체코의 국민 작가로 여겨지는 무하의 다양한 민족주의적 작업은 예술이 감각적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미적 경험을 넘어 사회와 역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알폰스 무하의 예술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시대와 사회,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깊은 사유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번 <아르누보의 꽃: 알폰스 무하 원화전>은 아르누보의 대표 작가이자 ‘무하 스타일’로 불리는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한 그의 예술적 여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상업 예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의 대중화와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던 무하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렬한 울림을 준다.
그의 판화, 포스터, 장식 패널을 비롯한 작품들을 직접 마주하며, 감각적 아름다움과 상징적 의미, 그리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