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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우리는 어째서 유치한 마블 영화를 사랑하는가?


 

당신은 '마블' 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마블은 '이상할 정도로 성인들이 좋아하는 유치한 히어로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히어로물 자체를 어릴 적부터 접할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예술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상한 자존심과 자만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콘텐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힘을 갖고 있는 영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블의 영화를 몇 편 정도 정주행한 적도 있지만, 결국 '어째서 그리도 지극히 단단한 코어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그런 내가 '히어로물'에 대하여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의외의 영역에서였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라는 마블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난 수많은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리듬감과 고양감, 연출과 음악,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을 한 곳에 어우러지게 만드는 '완벽한 스토리'. 내가 지금까지 '유치한 히어로물'이라고 취급했던 것이 그날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파고들어 내 혼을 빼놓은 것이다. 그저 평범한 일반인인줄 알았던 주인공이 히어로가 되어 멋있게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다는 단순한 스토리 안에 나는 매료되어, 영화가 끝난 이후 혼이 빠져나가 한참 동안 '스뉴버(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줄임말)'가 얼마나 멋있는 히어로 애니메이션인지에 대해 입이 닳도록 지인들에게 읊고 다녔다.

 

그와 동시에 내가 과거 가졌던 의구심은 다시금 내 머릿속을 차올랐다. '히어로물'은 어쩜 이리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뛰도록 만드는가. '히어로물'의 매력에 한 발자국 다가간 나에게, 이제 풀어야 할 숙제는 '히어로물이 정말 재미있는가'가 아니라 '히어로물이 왜 재미있는가'였다. 하지만 바쁜 나날들 속에서 그 의구심은 그저 마음 속에 묻게 되었고, 몇 년 뒤 나는 한 책을 통해 그 궁금증에 실마리찾게 되었다. 바로, 세상을 뒤흔든 영화 스튜디오들의 이야기 기법를 파고드는 도서 시리즈, '스토리텔링 비법 시리즈'의 세번째 도서인 [창작자를 위한 마블 스토리텔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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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창작자를 위한 마블 스토리텔링]


 

이 책은 내가 어째서 결국 ‘마블’의 히어로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넘어, 왜 수많은 관객들이 오랜 시간 동안 마블에 열광하고, 여전히 그 세계를 그리워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해답해주는 책이었다. 단순히 '영화를 잘 만든다'는 차원을 넘어서, 마블은 어떻게 스토리를 설계하고,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며, 어떻게 세계관을 창조하는지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7개의 챕터로 나누어 구체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해체한다. 거기다 이 책은 이야기 창작의 구조를 실질적으로 해체하고 분석해, 창작자가 곧장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주는 ‘작법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우리가 그저 ‘재미있다’고만 느꼈던 마블 영화 속 장면들 뒤에 얼마나 정교한 계산과 설계가 숨어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보여준다는 것이다.


프롤로그의 첫번째 목차 제목은 [우리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였다. 나를 포함하여 '마블'의 힘을 지금까지 간과하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챕터다. 앞서 이야기 했듯 나는 '마블'의 영화를 '상업적인 영화'라고만 치부하고 있었고, 동시에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는 유치한 영화'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마블의 영화에 '덕통사고' 당했을 때, 나는 깊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토록 상업적이고 유치한 영화에 나는 어째서 심장이 뛰는 것인가? 마블은 어째서 '히어로물'이라는 하나의 주제 안에서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인가?'

 

프롤로그에서 홍지운 저자는 이러한 나의 의구심을 '공통 언어'라는 단어 하에 다시금 언급하며 마블을 연구해야할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이 책의 의의를 소개한다. 단순한 흥행 성공이 아니라, 장기적인 팬덤을 끌어내는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설계의 정교함에 주목하며, 이 책이 창작자를 위한 실용서임을 강조한다.

 

 

MCU는 지금 이 시대의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몇 안 되는 ‘공통언어’다. 나와 동 세대의 작가들은 모두 어린 시절에 TV를 봤고 〈마동왕 그랑조트〉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의 주제가를 부를 줄 안다. 이런 공통언어로 작동하는 작품은 그 자체로 연구의 대상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모두가 어렵지 않게 이 작품에 대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는 이런 공통된 기억이 많지 않다. 이는 그들이 게으르거나 불성실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저 상술한 바와 같이 너무나도 많은 매체에서 온갖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기에 내 어린 시절의 라디오나 TV 같이 전 국민이 반드시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 흔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앞서 언급한 OTT 서비스를 전부 구독한 적이 있으며 내 주변에도 나와 같은 구독자가 다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취향이 달라 서로가 본 작품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엇갈림은 시대적인 필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이건 유럽이건 한국이건 MCU의 신작 영화는 반드시 개봉한다. 아이도 어른도 누가 아이언맨인지 안다. 이렇게나 각종 매체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기에도 MCU처럼 모두가 봤고 또 사랑하는 콘텐츠는 그 자체로 일종의 공통언어로 작동해 시장의 기준이 된다.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론장에서 각자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하다 못해 〈해리 포터〉 시리즈도 읽지 않은 세대가 대학에 들어오고 있는 이 시대에 MCU나 지브리, 픽사처럼 어느 나라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향유한 작품들은, 다시 말해 공통언어로 작동하는 작품들은 반드시 연구하고 넘어가야만 한다.

 

- 창작자를 위한 마블 스토리텔링, 프롤로그, 홍지운

 

 

 

7개의 뼈대를 세워 마블을 해체하다


 

[창작자를 위한 마블 스토리텔링]의 첫 번째 챕터는 ‘주인공’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한다. 사실 우리는 마블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몇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예를 들면, “왜 마블의 히어로들은 늘 가면을 쓰고 유니폼을 입을까?” 같은 외적인 요소부터, “왜 그들은 언제나 정의로워야만 할까?”와 같은 보다 본질적인 의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결국엔 이렇게 비슷한 설정을 지닌 히어로들이 왜 전혀 닮지 않은 듯한 개성과 매력을 갖고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궁금증을 하나씩 짚어가며, 주인공 설계가 어떻게 관객의 몰입을 이끄는지를 수많은 영화 속 장면을 예로 들어 풀어낸다. 특히 ‘히어로’라는 존재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요소들, 즉 결점, 외로움, 자기희생과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 구조를 정밀하게 해석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챕터에서는 ‘빌런’의 존재를 정교하게 해부한다. 이 책은 빌런이 단순히 악한 존재가 아니라, 서사의 긴장과 주인공의 성장을 이끄는 촉매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분석은 히어로와 빌런의 관계가 단순한 대립을 넘어, 유기적인 구성을 이룬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독자에게 훨씬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조연과 세계관을 다루는 장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연 캐릭터나 세계관 설정을 하나씩 짚어나가며, ‘왜 이러한 장치들이 효과적인가’에 대해 면밀히 분석한다. 앞선 주인공과 빌런 파트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에 집중했다면, 이 부분에서는 ‘이 요소들이 이야기 구조 속에서 얼마나 기술적으로 영리하게 작동하는가’를 되짚어보는 느낌에 가깝다. 단순히 조연이 주인공의 보조자에 그치지 않고, 서사의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 그리고 세계관 역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장치라는 점이 설득력 있게 드러난다. 이 책은 그러한 설정 하나하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영화 속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창작자가 실제로 응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책의 다섯 번째 챕터부터는 이전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앞선 장들이 주로 인물과 세계관이라는 ‘이야기의 재료’를 다뤘다면, 이 시점부터는 그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즉 스토리텔링의 기술적 구조와 연출의 전략, 주제의 설계 방식으로 초점이 옮겨간다. 창작자가 인물과 세계를 모두 준비한 뒤, 이제는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관객에게 가장 강렬하게 전달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창작자를 위한 마블 스토리텔링]은 그 첫 번째, '플롯'이라는 주제로 본격적인 전환을 이룬다.

 

플롯은 단순히 이야기의 순서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인물에 몰입하고, 설정을 납득하며,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일종의 정서적 설계도이자 서사의 내비게이션이다. 많은 이들이 ‘정형화된 플롯’이라는 말을 들으면 곧장 창의력의 반대말처럼 느끼지만, 이 책은 그런 선입견에 반기를 든다. 저자는 헐리우드 상업 영화와 MCU가 왜 그토록 많은 감동과 재미를 전달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이면에 존재하는 플롯 공식의 논리성과 기능성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이야기를 ‘기시감 있다’고 평하면서도, 그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고 감동받는다. 이는 익숙한 구조가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의 감정선에 더 깊게 접근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특히 마블의 영화처럼 복잡하고 비일상적인 세계를 다루는 작품일수록, 그 구조는 더욱 단단하게 짜여야 한다. 초능력, 외계 문명, 평행우주 같은 복잡한 개념들을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선, 정교하게 계산된 플롯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장에서 저자는 ‘1편’, ‘2편’, ‘3편’으로 이어지는 시리즈 플롯 구조의 흐름을 통해 마블이 어떻게 ‘기원’, ‘확장’, ‘완결’의 단계를 나누고, 그 안에서 각각 어떤 기능을 수행했는지를 짚어낸다. 그리고 그 공식이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변주되고 섬세하게 조정되며, 때로는 예상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장치로까지 확장된다는 점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이후 이어지는 ‘연출’과 ‘주제’의 장에서는 더 나아가, 마블 영화들이 이야기의 구조 위에 어떤 미장센을 더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어떤 철학과 감정을 남기고자 했는지를 탐색한다.




'상업'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느낀 건, 마블 영화의 성공 요인이 단순히 거대한 예산이나 화려한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는 점이었다. 마블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리듬과 구조를 집요하게 탐구해왔고, 수많은 작품들을 단일 세계로 정교하게 엮어내며 관객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그러한 마블의 전략을 단순히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창작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정리해준다.


도서 [창작자를 위한 마블 스토리텔링]은 마블을 사랑하는 팬은 물론, 여전히 마블을 ‘유치한 히어로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마블이 왜 이토록 깊은 여운을 남기는지 알고 싶은 팬에게, 히어로물이라는 장르가 왜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는지 궁금한 입문자에게,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닿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든 창작자에게 꼭 필요한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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