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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봄맞이 출사를 계획하던 중, 이런 글을 보았다.

 

“이번 봄은 다했네요. 올해는 안 오셔도 될 것 같아요.”

 

이상하리만치 추운 봄이다. 어제도 봄 외투를 뚫고 들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먼저 상처받은 이는 꽃이었다. 안부를 묻자마자 봄비에 지는 것이 벚꽃이라지만, 시린 눈발과 만나는 일은 꽤 낯설고, 어색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한 발 느린 내게도 이번 봄은 다한 듯하다. 그저 한발 빨리 온다는 여름을 기다리며 달력을 세고 있다. 덥다는 말이 입에서 새어 나오는 순간, 에어컨 청소는 세 박자 밀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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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약한 햇빛 뼛속으로 끌어들이고

늦눈 대비해 촉의 대담함을 자제시키고

(중략)

봄이 되려면 당신도 이만큼 바빠야 한다

당신은 세상이 꽃을 피우는

가장 최신의 방식이므로

 

- 「봄이 하는 일」, 류시화

 

 

봄이 오기에는 부지런하지 못했던 탓일까. 벌써 여름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만원 안짝으로 세탁과 건조를 해결해 주는 빨래방으로 이불 빨래를 하러 간 탓일까. 좁은 자취방에 순응하고 아끼던 책을 내다 판 탓일까. 지난겨울에 찍은 사진을 아직도 현상하지 못한 탓일까. 그래도 여전히 봄이 너무 빠르다고 탓하고 싶은 나의 탓인가.

 

이토록 느린 나는 ‘최신의 방식’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다.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라고 하니, 차라리 시원하게 불어줬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기꺼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꽃인 척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 뜻이 아닌 것 같다. 내 기억 속 이른 봄은 매번 추웠다. 하지만 해마다 모두가 처음인 듯 ‘왜 이리 춥냐.’고 말한다. 그러니까 날을 가리지 않고 염치없이 피어도 된다고, 그냥 피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가시뿐 아니라 꽃에도 약합니다

외로움에도 약하고 그리움에도 약합니다

세상 속에 서는 것에도 약하고

세상을 등지는 것에도 약합니다

당신이 알다시피 사랑에도 약하고

미움에도 뼈저리게 약합니다

 

- 「저녁기도」, 류시화

 

 

겁이 많아서 사랑하기도, 미워하기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잘하는 일이 하나 있다. 기억하는 것이다. 때로는 사소한 것까지 버리지 못하는 저장증이 다시 도질까 염려되지만, 어쩔 수 없다. 밉다고 말하기가 더 겁나기 때문이다.

 

봄눈에 일찍이 이울어진 꽃을 담아두기로 했다. 봄을 쫓기에 부지런하지 못해도, 이렇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상처받았다는 것은 살았다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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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증을 고치기 위해서 날을 정해 물건을 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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