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틔움_포스터.png

 

 

“어떠한 결론이나 특정한 어휘로는 정의 내릴 수 없을뿐더러, 그럴 이유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뭉툭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감정들이 갈망하는 것은 해소가 아닌 시선이다. 그 눈빛은 완고하게 닫혀 있었던 마음 한구석의 단단한 벽을 틔우고, 메마르고 굳어진 땅 위로 새순을 틔우며, 마침내 막혀 있었던 숨통을 틔워낸다.”

 

타인에게 기대 이상의 것을 바란다고 생각한다. 남을 넘겨짚고, 치밀하게 노려보는 습관이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아트인사이트에서 개최한 제1회 기획전 <틔움>에서 위와 같은 사회를 정면으로 바라본 뒤 활을 겨누고 있다.

 

성수동의 작은 갤러리, 팝업 스토어들이 즐비해 있는 분주한 거리를 걸어가다 보니 조금은 다른 바람이 불었다. 오른쪽으로 틀면 보이는 틔움의 포스터, 초록빛을 띠고 있는 전시의 첫인상은 올까 말까 고민하는 봄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자세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새싹의 뿌리 밑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한 지 2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나도 모르게 편파적인 기대감이 땅 위로 금방 싹을 틔울 것만 같았다.

 

 

IMG_3583.png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된 건 전시의 서문, 왜 전시의 제목이 틔움인지 그리고 그 새싹이 어떤 세상을 보여줄 것인지 강하게 자극했다. 총 5명의 작가, MIA, 나른, 대성, 유사사, 은유가 펼치는 세상은 서문에 이어 다채로운 파동을 일으켰다.

 

 

Mia_나는,이제_원화.jpg

 

 

MIA의 <나는, 이제>, 물감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가 현장의 모습에 바로 덮힌 듯한 이 그림은,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색깔의 경계를 비틀었다. 꿈을 꾸고 있는지, 안경에 무지개가 비친 것인지 한참 동안 그림 앞에서 나의 인식 기능을 의심했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해소”하고 나서야, 오해를 제친 나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식탁 위 식물과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해를 보지 못한 탓인지, 식물을 바깥세상을 지독하게 욕망하는 듯했다.

 

그런 식물에게 반쯤 열린 창문은 하나의 빛이었고, 희망이었다. 자연스럽게 바람에 날려 잎 하나가 탈출한다면, 식물의 뿌리는 크나큰 기쁨을 소리칠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나간다”. 어떻게 보면 눈을 피로하게 만들 형광색 계열의 색을 작가가 선택한 이유도 비슷할 것만 같았다. 피로하고 나를 옭아매는 공간에서 벗어나 나는, 이제 “자유”다. 마음 한 구석의 있던, 각자에게 하나씩 있는 딱딱한 벽을 부실 수 있는 “시선”을 주는 작품이었다.

 

 

유사사_선잠.jpg

 

 

유사사의 <선잠>. 잠이라는 것. 요새 낮잠 잘 시간이 없었다. 잠을 자지 않아도 잠을 잔 듯한 기분을 원했다. 도둑놈 심보. 일은 일대로 하고 싶고, 잠도 자고 싶고.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선잠>을 본 순간 잠시 난 눈을 감았다 뜰 수 있었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식물이 자란다. 평행사변형의 차원에 존재하는 늪지대에 줄기가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감히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차원 너머의 세계, 그래서 그림 속에서도 그 차원을 다 볼 수는 없었다. 그곳은 깜깜해 보였지만 분명 별과 같은 것들이 있어 넘어간다 해도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면 그런 차원에서 현실로 식물들이 단체로 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가 내리는 어쩌면 정말로 더 어두운 현실로 식물들이 여행을 왔다. 아름다웠다, 기특했다. 근데 내 눈에만 기특한 것 같아 두려워졌다. “여기를 왜 오지, 굳이 올 이유가 있나?” 차가운 의문들이 벌써부터 내 걱정을 찔렀다. 사랑스럽게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우리의 곁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줄 순 없을까?

 

해맑고 밝은 식물들의 웃음을 보자마자, 현실에서부터 지켜주고 싶었다. 내 시선은 사랑이고 보살핌이고, 이러한 시선들이 모이고 모이면 식물들을 지켜줄 사람들이 많아져 여기서 희망을 “틔울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행복했다. 정말 꿈만 같았다. 현실에서도 일어나면 좋겠어서.

 

대표적인 두 작품만 나누었지만, 남은 작품들을 통해서 귀하게 틔우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 시선의 전환, 틔움을 준 경험은 생각보다 내가 인생을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에너지가 될 것만 같았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