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은 어렵다. 어렵고 모르겠는 것투성이지만, 작년부터 유난히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생각해 보건대, 사실 지금까지 나의 화두가 온통 나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오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매몰되어 살았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든, 그것의 본질적인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이 언동으로 나를 멋있게 봐주면 좋겠다는 욕심을 앞세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못나지고 우스꽝스러워질 뿐이었다. 필연적으로.
한창 유행할 때 읽었던 『미움 받을 용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사실 남이 아니라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거라고. 그 말이 맞았다. 끝까지 읽지도 않았던 책에서 그 내용만은 오래 기억에 남았지만, 그 후에도 한참을 남에게 관심이 없는 채로, 오직 나에게만 관심을 둔 채로 살았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매일 전전긍긍했다.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타인을 세심하게 배려하거나 후하게 베풀 줄 알 리도 만무했다. 외동으로 자라 그런 건지, 아니면 청소년 시절 쓸데없는 경계심만 키워서 그런 건지.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중에서도 청소년 시절 또래 문화의 탓이 특히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아이, 타인에게 더 친절하고 다정한 아이가 을이 되기 십상이었다. 미숙한데 자의식만 강한 청소년들은 자기가 받는 애정을 귀히 여길 줄 몰랐다. 사회화가 덜 된 아이들은 동물의 왕국 마냥 은근히 서열을 나누었다. 그중 재미있는, 가끔은 선을 넘는 불편한 농담도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쿨한 아이들이 교실을 군림했다. 조용하고 선을 넘지 않는 아이들은 공공연히 무시 받았다. 그래서 나도 쿨하게 보이고 싶었다. 친구의 사랑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인 양, 네가 없어도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신경줄이 굵은 사람인 양 가장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사려 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면서 사람이 되어갔다. 나는 친구들의 다정을 먹고 조금씩 자라났다. 귀찮은 일에도 주저하지 않고 먼저 엉덩이를 떼던 룸메이트. 시험 기간 친구들의 책상에 쪽지와 간식을 올려놓고 가던 친구. 공부하기 싫어 죽겠는 내가 시험공부 계획을 짜도록 옆에서 일일이 도와주던 친구. 선한 눈망울로 친구들의 장점을 찾아 감탄하던 친구. 그들을 지켜보며 다정과 배려야말로 신경이 굵은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진짜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지금 그나마 갖추게 된 인간성의 7할은 내 친구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직도 친구들의 다정을 받아먹으며 더디게 크고 있는 나의 요즘 화두는 '환대'다. 친구들을, 타인을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환대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보게 된 것은 내 친구 만두 때문이다. 그녀는 닉네임을 써야 할 때 자주 스스로를 만두라고 칭하고, 집에서 직접 만두를 빚어 먹을 정도로 만두를 좋아하는 친구다. 올해 초, 나는 만두의 집에 만두를 빚으러 갔다. 그녀의 친구들이 그렇게 극찬했다던 만두를 아직 못 먹어봤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만두는 나에게 냅다 잠옷을 건넸다. 집에 놀러 간 거라 나름 편한 옷차림으로 입고 갔는데도, 만두는 자기 잠옷을 입으라고 했다. 너 그거 입고 있으면 불편할걸. 심드렁한 얼굴로 가장 내밀하고 편안한 옷을 내어주는 만두가 웃기고 조금 놀라웠다. 나라면 굳이 부탁하지 않는 이상 선뜻 그러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곧 만두가 아무렇지 않게 내주는 다정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새삼 실감했다. 만두의 어머니는 만두를 빚기 전후로 끊임없이 먹을 것을 내주셨다. 과일, 빵, 커피, 매실차... 너무 많이 먹어서 기억도 다 안 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머리에 대한 주제가 나오자, 머릿결에 좋은 샴푸가 있으니 머리도 감고 가라고 권하기까지 하셨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우리가 빚은 만두를 커다란 반찬통에 한가득 담아, 집까지 따뜻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몇 겹의 봉지와 쇼핑백에 포장해 주셨다.
그날 만두 모녀는 환대의 사전적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반갑게 맞고, 정성껏 후하게 대접해 주었다. 친구들의 다정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지만 여전히 인색하게 굴고 마는 나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환대였다. 너그럽게 내어주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마음. 그게 너무 멋져 보여서, 나도 누군가 우리 집에 방문하면 꼭 그만큼 환대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주 우리집에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그들이 편하고 기분 좋게 머물 수 있도록 나름 분주히 움직여봤는데, 마음이 가닿았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환대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라, 남을 챙기는 것이 어설픈 집주인이 외려 손님에게 대접받은 것 같긴 하다. 이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려면 나도 부지런히 환대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
집에 초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환대할 수 있을까. 일단은 역지사지를 해봐야겠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던 말과 행동을 기억해 돌려주고, 내가 서운함을 느꼈던 순간을 기억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하는 환대의 기본에 따라, 반갑게 맞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는 격하게 환영하고, 헤어질 때도 쿨하게 등을 돌리기보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정성껏 배웅해주자고. 능숙하고 미끈한 어른처럼 보이기보다,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싶다. 그들이 내게 기꺼이 내주는 애정과 우정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결국 남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곧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니까. 이 사실을 자주 기억하면서 나의 친구들,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을 환대하면서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