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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뮤지컬에서 오디션 금지곡이라 불리는 “지금 이 순간”. 이번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20주년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우리에게 뮤지컬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여기 [지킬 앤 하이드]를 1인극으로 풀어낸 연극이 있다.


연극 [지킬 앤 하이드]는 지킬의 친구인 어터슨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어터슨이 지킬의 유언장에 등장하는 하이드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해하며 그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특히나 이 연극은 1인극이기 때문에, 한명의 퍼포머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도 이 작품의 큰 특징이다. 그래서 관객은 퍼포머의 안내에 따라 하이드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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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이라서 보게 되는 연기의 절정과 무대의 아름다움이 있는 작품이다. 연기 차력 쇼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각 캐릭터마다의 특색을 아주 잘 살리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유머와 스릴을 오가는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관객석에 앉아있을 이유는 충분했다. 무대는 거의 비어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무대의 빈 부분을 조명으로 채웠는데, 조명만으로 이야기 전개가 될 만큼 정말 다양한 형태의 조명을 보여주었다. 조명을 섬세하게 나눠서 한 무대에 마치 다양한 공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배우가 표정을 바꾸지 않더라도 배우의 얼굴이달라 보이게 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연기와 조명에 집중하다 보니, 이 연극은 이게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연극의 끝에서 하이드를 만나고 난 후, “저는 이 이야기에서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한 어터슨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어터슨, 당신은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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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어터슨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어터슨이 처음에 자신을 소개할 때,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아니라고 한다. 또한, 자신과 친구가 되면 자신은 평생 그 사람을 도와줄 것이라고도 말한다. 능력 있는 변호사에, 지킬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다. 한마디로 어터슨은 보통의 사람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누군가의 친구인 보통 사람. 그래서 우린 어터슨의 시선을 쉽게 따라갈 수 있고, 어터슨을 선하다고 믿기 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하는 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린 자기 생각과 행동이 합리화가 되지 않는 걸 못 견디기 때문에, 자기 행동이 맞다고 쉽게 생각한다. 어터슨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며, 지킬을 아끼는 자신의 마음을 어필한다. 물론 어터슨은 지킬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물이고, 그를 챙기지만 그게 정말 지킬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기에 어터슨의 행동은 우리와 닮아있고, 우린 그런 어터슨을 보며 그가 선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생각이 뒤바뀐다. 어터슨이 지킬과 하이드의 정체를 알아버린 순간, 지킬은 어터슨에게 말한다. ‘너는 내가 하이드가 되는 걸 막을 수도 있었고, 나에게 찾아올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지킬은 어터슨의 ‘방관’과 그가 몰랐던 그의 ‘이기심’에 대해 지적한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터슨은 자신 안의 하이드와 싸우고 있는 지킬을 방에 내버려두고 나가버린다. 하이드를 마주하기 전까지 어터슨의 방관이 의도하지 않고 일어났다면, 하이드를 만나고 난 후 어터슨은 의도적으로 지킬을 남겨둔다. 어터슨도 지킬처럼 자신 안에 하이드를 만난 것이다. 하이드를 만난 후 어터슨은 한마디를 남기고 나가버린다.


“말했잖아요. 전 선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 이야기는 이 문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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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어터 플러스에서 진행한 백석광 배우와 이준우 연출의 인터뷰에서 이준우 연출이 [지킬 앤드 하이드]의 서사와 관련하여 한 말이다.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마음의 문을 여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작은 문이 열리면 관객분들이 자신 안의 하이드를 마주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길 바라요.”


이게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지킬 앤 하이드]가 필요한 이유이다. [지킬 앤 하이드]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 혹은 식상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지킬 앤 하이드]라는 작품, 특히 이 연극이 지적하고 있는 선과 악의 미묘한 경계에서 우리는 동시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방관하며 살아간다. 이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이고, 특별히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이다. 극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지킬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어터슨에게 ‘너에게도 하이드가 있다’고 말한다. 지킬은 욕망과 파괴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노는 내면의 한구석을 가감 없이 조명한다. 난 지킬의 말에 불현듯 작은 손가락 하나가 떠올랐다. 네모난 화면 위에서 춤을 추는 손가락. 그 손가락이 누른 화면 때문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거리로 나서고, 누군가는 돈을 번다.


이 사회가 참 기괴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정상’은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무서울 정도로 맹목적이고, 극단적이다. 연예인의 사망 소식은 점점 자주 들리는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은 가짜 뉴스에 속아 맹목적으로 비난하거나 지지한다. 오로지 얄팍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 그것이 진리라며 손을 높이 들고 숭배한다.


이 모든 현상이 내가 무심코 조회수를 올린 기사, 릴스, 영상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 소름 끼칠 때가 있다. 지킬이 말하는 욕망이 뛰어노는 곳은 우리의 핸드폰 속이 아닐까. 나비효과는 실재한다. 무심코 누른 화면들이 모여 조회수를 만들고, 여론을 만들고, 흐름을 만들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다. 내 손가락 하나에 누군가의 생명이 달려있다.


인간은 충분히 조용히 악할 수 있다. 우리는 악한 것을 요란하고, 명확하고, 시끄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악은 조용히 우리의 모든 것을 잠식시킨다. 그것이 ‘악’인지도 모르게. 인간은 절대 선할 수 없다. 아무리 긴장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어느 한구석에선 우리의 욕망이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악은 조용히 나를 잠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사실은 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내면의 하이드를 마주할 때 그것이 지킬이라고 착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이드를 보고 크게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하이드를 없애는 건 우리의 최선이 아니다. 우리의 최선은 하이드를 마주하고 그를 바라보는 일이다.


가장 큰 악은 자신을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큰 불행은 인생이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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