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뻘건 용암이 들끓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기꺼이 달려가는 한 부부가 있다. 모든 걸 녹일 수 있을 만큼 뜨거운 화염이 솟구쳐도, 화산재가 온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어버려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파괴의 중심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화산만큼 사랑해>는 화산을 평생 사랑해 자신의 인생과 목숨까지 내어준 프랑스 화산학자 부부 카티아와 모리스 크라프트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카티아와 모리스는 1966년 프랑스에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처음 사랑에 빠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한 건 화산의 강렬한 에너지에 매혹된 서로를 알아봤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때쯤 태어나 전쟁의 상흔을 몸소 겪으며 자랐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계속해서 폭력을 반복하는 인류에게 큰 환멸을 느꼈고, 불완전한 인간 대신 모든 생명의 근원인 위대한 자연에 사로잡히게 된다. 때마침 학계에서는 판구조론이라는 혁명이 일면서 화산학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지구를 형성하고 재형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평생 화산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울퉁불퉁한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용암, 하늘로 치솟는 시뻘건 화염, 하늘과 땅을 모두 뒤엎는 거대한 회색 뭉게구름 등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하고 경이로운 광경이 러닝타임 내내 펼쳐진다. CG로 만들어낸 장면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비현실적인 광경들은 모두 카티아와 모리스가 직접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사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산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작은 디테일과 연결성에 집중한 카티아는 스틸 카메라로 한 프레임에 한순간을 담아냈고, 하나뿐이고 웅장한 것에 끌린 모리스는 집착하듯 자신이 본 모든 장면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누구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화산을 들여다봐서일까. 그들이 남긴 수천 장의 사진과 수백 시간의 영상 속 화산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무섭고 두려운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아름답고 숭고한 하나의 잘 빚어진 생명체 같다.
폭발하는 활화산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은 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언제나 죽음 쪽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일이었지만, 카티아와 모리스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화산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좌절하기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기를 선택했다. 화산에 대한 굳건한 사랑은 두 사람이 죽는 그 순간까지 이어졌지만, 화산 폭발로 인해 파괴된 마을과 큰 재앙을 겪은 사람들 앞에서는 그들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제 꿈은 화산 때문에 사람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는 거죠.” 카티아와 모리스는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는 인류에 실망해 그보다 더 위대한 화산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인류에게는 화산이 모든 것을 앗아가는 재앙이지만,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내부의 에너지를 배출해주는 숨구멍이자 비옥한 땅과 새로운 육지를 선사해주는 생명의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화산과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대자연 앞에선 한낱 작은 점에 불과한 인간을 마침내 사랑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랑은 적당한 거리를 둬야만 비로소 유지되는 법이었다. 이들은 곧바로 화산의 위험성과 피해 현황을 알리는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이를 본 필리핀 정부는 화산 폭발 전 약 6만 명의 사람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커다란 사랑이 경계를 넓혀 뻗어나가기 시작할 때, 결국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린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화산만큼 사랑해>는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더 지독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평생을 함께한 카티아와 모리스는 1991년, 일본 운젠 화산을 관찰하러 갔다가 한날한시에 세상과 영영 작별하게 된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일생을 통해 죽음의 공포도 이겨낼 수 있는 거대한 사랑의 힘을 보여줬다. 활화산처럼 활활 불타오르는 이들의 사랑이 세상에 남긴 흔적은 단순한 그을림이 아닌 세상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였다. 무언가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내 모든 걸 내던져야 하는 법이라고.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쓰기 시작할 때, 우리의 발걸음이 무자비함, 폭력, 허영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으로 향할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