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마음이 힘들 땐’이 아니라 ‘뇌가 힘들 땐’이라는 표현에 끌려 이 도서의 문화초대를 신청했다. 예술이란 예술가의 내면에서 촉발되어 세상에 표출되고 다양한 매체와 표현으로 감상자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예술이 심리 치유 효과를 지녔다는 데에는 이미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이는 체험으로 얻어진 동의다. 그래서 예술의 심리 치유 효과는 그것을 경험한 사람의 구체적인 사례를 일목요연히 읽거나 들으며 접할 수 있다. 한편 뇌과학의 영역에서는 연구 데이터와 수치로 예술이 사람 뇌와 신체에 유익함을 보여줄 텐데, 그 유익함을 얻는과학적인 과정이나 이 책의 내용 전달 방식이 어떠할지가 궁금했다.
뇌과학 분야 도서인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존스홉킨스 의대 뇌과학자인 수전 매그새먼과 구글 하드웨어 제품 개발부의 디자인부총괄인 아이비 로스가 공저했다. 이 책은 불안, 트라우마, 질병을 치유하는 예술의 힘을 최신 뇌과학 연구로 밝혀낸다. 공저자 두 명은 더 좁게는 신경미학이라는 분야의 연구와 지식을 활용한다. 비교적 신생 학문 분야인 이 학문은 미적 경험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해석한다.
우리의 뇌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데 이러한 특성을 ‘신경가소성’이라 한다. 책에 따르면 뇌는 틀에 박힌 암기식 공부와 정해진 답을 찾는 식의 시험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극이 가득한 ‘풍부화한 환경’에서 사고회로를 계속해서 재배선하는 데에 훨씬 적합하다. 그리고 예술은 이런 ‘풍부화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만약 옆에 앉은 사람에게 뜨거운 감자인 이슈를 들어 대뜸 토론을 하자고 말을 걸거나, 여러 입장이 복잡하게 섞여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고 한다면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그 문제로부터 오랫동안 고개를 돌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예술은 흡인력 있는 서사 혹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표현 방식을 취함으로써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술 작품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스며들거나 천착하게 한다. 우리 뇌에 신경가소성이 있지만 사람 마음과 본능에는 낯섦이나 어려움에 대한 기피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럴 때 예술은 낯섦, 어려움에 대한 긴장감은 낮춰주고 호기심과 흥미를 북돋아준다. 쉽게 말해 예술은 사람이 관성대로만 살지 않게 자극을 주고 어떤 문제를 계속 들여다보게 한다. 다채로운 질감, 색감, 그리고 여러 가지 화제와 관점이 들어 있는 세상에 보다 흥미롭게 입장하게 도와준다. 그렇게 입장한 ‘풍부화한 환경’에서 우리의 뇌는 새로운 사고회로를 보다 다양한 방면으로 배선하며 성장할 수 있다.
이 책은 예술 감상에서 오는 효과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술 활동에의 참여를 독려한다. 그를 위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 치료, 예술 활동에 참여하여 트라우마 회복을 경험한 사람들의 사례를 든다. 물론 그 사례를 과학의 언어로 설명한다. 오감각 중 한 감각을 주로 사용하는 예술 활동을 했더니 그 감각을 주관하는 뇌의 어떤 영역이 정보를 처리하였고 이로 인해 부교감신경계가 영향을 받거나, 모종의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 심신의 안정을 의미하는 수치가 집계되었다는 식이다.
["표현적 글쓰기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한 연구에서는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가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 결정적 영역인 중앙대상피질을 활성화시켜 뇌 신경활동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감정과 느낌에 언어를 부여하는 행위가 살면서 겪는 힘겨운 사건들에 맥락을 입히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도록 신경생물학적 수준에서 돕는다는 뜻이다."] p.122
인용한 부분은 나 역시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치유를 경험한 적 있어 십분 공감하는 대목이다. 또한 이는 심리학 도서 등을 통해 알게 된 ‘감정에 이름 붙이기’ 또는 ‘감정 라벨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방법과 상통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독서는 예술애호가이면서 쓰는 사람, 그리고 심한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경험과 직감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바를 뇌과학의 용어로 다시 알아가는 동시에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이었다.
두 명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활동에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뇌과학, 신경미학 지식을 활용했고 연구 사례를 적재적소에 언급했다. 두 저자가 거듭 당부하는 것은 예술활동에 참여하는 것 자체였다. 그림과 글, 춤추기 등으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찾을 때 참여자들은 흔히 자신이 그런 활동을 할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며 참여를 거부하거나 참여를 하더라도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예술 활동 중에서도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행위가 수반될 때에는 애써 만든 결과물을 다른 참여자들의 것과 비교하며 이 활동의 본 목적(자유로운 표현을 통한 내면의 목소리 찾기, 트라우마의 원인에 직면하기 등)을 잊고 실망감만 안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참여와 표현하기, 감각하며 자신을 알아가기 그 자체이다. 그러니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이득이 있으며 삶의 층위는 풍부해지고 범위는 넓어지는 예술활동 자체를 즐겨보자.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새로운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가고, 특정한 감정에서 자신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이는지를 알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