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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한 인간이 태어나서 여러 갈래의 길을 그려가는 것이 인생의 지도라면, 치매라는 병증은 하나의 삶이 지나간 길들과 지나친 길들을 돌아보고 차근차근 지워가는 죽음의 과정일 테다. 치매는 물론 슬픈 일이지만, 치매라고 해서 다 같은 치매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치매가 있다. 밉게 오는 치매와 예쁘게 오는 치매. 말하자면 세상에 ‘좋은’ 치매는 결코 없지만 ‘예쁜’ 치매는 있다는 것.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가보는 일이 부디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이, 결코 쉽지 않을 그 과정에 ‘예쁜’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리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창작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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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춘자(서나영)는 치매를 앓기 시작한 노인이다. 가족들은 그녀의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해 외식을 계획한다. 자식들은 생일을 맞은 춘자의 소원을 묻지만, 정작 춘자는 소원을 기억하지 못한다. 돈과 명예, 혹은 편안한 휴식. 춘자의 생일은 자신의 소원이 아닌 다른 이들의 소원이 대신 모이는 자리가 된다. 어쨌거나 시끄럽고 정신없는 식당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는 사이 가족들은 춘자를 잃어버린다. 춘자의 아들 성찬(김대웅)과 진수(성열석), 그리고 며느리 다정(하미미)은 사라진 춘자를 찾기 시작한다.


‘여가 어대요. 나는 누구요.’ 가족들 곁을 떠난 춘자는 깜깜한 정신 속을 헤맨다. 70년을 살면서 예순아홉 번의 생일 소원을 빌었을 그녀지만, 일흔 번째 소원은 도저히 기억하지 못한다. 소원은 그녀의 일흔 번째 해를 생생하게 만들 것이므로,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기억해내야 한다.

 

춘자는 자신이 실수로 쏟아낸 소변 속에서 나온 ‘영혼의 물고기’(엄현수)를 만난다. 생물학적 죽음이란 몸을 유지하던 액체가 모두 마르는 일이고, 정신적 죽음이란 몸을 지탱하던 영혼이 증발하는 일이므로, 몸속에서 헤엄치다가 몸이 흘리는 액체와 함께 빠져나온다는 영혼의 물고기는 생명력의 정확한 은유일 테다. 몸과 마음의 모든 액체를 쏟아내기 전, 그러니까 완전한 죽음에 이르기 전에, 춘자는 남은 생명의 도움으로 소원을 찾아 기억 속을 여행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춘자의 가족들은 춘자가 지나간 공간들을 따라 움직이며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춘자를 찾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우선 과제는 치매라는 병증을 받아들이는 것. 춘자가 북적이던 떡볶이 가게를 혼자서도 능히 운영하던 예전의 그 춘자로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강인한 엄마로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은 춘자의 상태를 애써 부정한다. 그러나 춘자의 흔적을 따라갈수록 드러나는 것은 삶의 끝에 다다른 그녀가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오래된 기억과 묻어둔 고통까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마침내 춘자의 현재를 인정한 가족들은 춘자의 여행을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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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아가는 기억 여행의 끝에서 춘자는 그리운 이들을 만난다. 먼저 떠나보낸 남편과 너무 일찍 잃어버린 딸, 보고 싶은 엄마와 반가운 누렁이까지. 언제나 춘자의 곁에서 그녀의 삶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그들의 말은, 그녀가 언제까지고 그들을 그리워하며 살았다는 말과 정확히 같은 의미처럼 들린다. 언젠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들을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가 그녀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게 했던 삶의 한 부분이었던 것.

 

그러나 아직 남은 삶에서 빌어야할 소원이 있으므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춘자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마침내 잊었던 소원을 떠올린 춘자는 어느 교회의 십자가 앞에 다다른다. 그녀는 자신이 믿는 불교의 방식대로 십자가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하나의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소원. ‘자식들 공부 잘하게 하시고, 자식들 건강하게 자라게 하시고, 자식들 친구들과 싸우지 않게 하시고, 자식들 바라는 거 다 이뤄지게 하시고…’ 춘자의 일흔 번째 생일 소원은 잊었던 소원이 아니라 평생 동안 제 시간과 몸을 다해 이뤄냈던 소원이다. 예순아홉 번을, 아니 육백아흔아홉 번을, 아니 육천구백아흔아홉 번을 빌고 또 빌었을 소원이다. 십자가 앞에서 절을 하며 비는 그녀의 간절한 소원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닌 소원이고, 종교의 벽을 허물고 뒤섞기에 충분한 소원이고, 삶과 죽음의 본질을 꿰뚫는 소원이다.

 

사랑. 춘자의 소원은 사랑이다. 이런 소원은 망각의 과정 속에서도 끝까지 지워지지 않을 테다. 이런 소원을 망각하지 않는 치매는 예쁜 치매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치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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