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삶의 필수 요소가 될 수 있을까?
음악을 듣고 미술관에 가고 공연을 보고 책을 읽는다. 이러한 행위는 먹고사는 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먹고사니즘적 사고에서 봤을 때 이러한 것들은 돈도 밥도 되지 않는다.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없어선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예술은 일부에게만 필수적인 요소 같다.
연구자들은 낙서, 색칠하기, 프리 드로잉 모두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기능적극적외선분광법으로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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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집중력과 보상은 있으면서 허들이 없는, 일상과 닿아있는 것들이다. 살면서 낙서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색칠 공부(색칠 놀이)는 컬러링 북 유행으로 많은 세대의 수요가 있었다. 하지만, 별 거 아닌 것들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하는 건 크게 설득력이 없게 느껴진다.
트라우마가 생기면 생존 기제가 행복에 반하는 쪽으로 작동하고 마는 것이다.
107쪽
일상이 행복하면 낙서나 색칠하기 모두 해보면 좋은 일이 되겠다. 그럼 이제 낙서와 색칠, 드로잉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제안해 보자. 고된 일상을 잊고 집중할 수 있는 것,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 이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취미를 만드는 건 왠지 거창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걸 도전하기엔 첫발을 떼는 것도 쉽지 않을 때. 잘 살기 위해서 사는 건데 생존 기제를 불행을 향해 작동하게 놔두면 결국엔 나만 더 힘들어지고 만다.
이런 필요성을 알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십수년 전 상담실에서 들었다. 그때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라고. 경주마처럼 불안을 바라보며 불안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줄 모른다. 그걸 끊어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필요한데 예술은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표현적 글쓰기가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통증을 경감하고, 면역 기능을 높이고, 우울감을 완화하는 한편 자기인식을 고조시키고,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어려움에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는 것 또한 밝혀냈다.
122쪽
애석하지만 간단한 예술 활동으로 구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글을 쓰곤 했다. 태블릿 피씨에 손으로 그때의 생각이나 기분을 쭉 적어 내려가고 내 감정을 정리한 다음에 저장하지 않고 지웠다. 그것만으로도 일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인용한 위의 문장처럼 예술은 무안 단물이 아니다. 100을 80으로 줄여주는 걸 할 수 있지 0으로 만들어서 마냥 행복하고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게 되었다면 우리나라 정신과 초진 예약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병행 치료라고 생각하면 효과가 좋다고 본다.
나 역시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인데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나 불안할 때는 글을 쓴다고 했고 의사도 그게 좋은 방향이라고 했다. 혈압을 낮춰주는 건 글쓰기보다 인데놀이 효과적이지만, 글을 쓰고 감정을 정리하고 약을 먹으면 약만 먹는 것보다 더 좋은 효능을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한 예술 교육이 평등하게 이루어져 모든 아이가 똑같이 접근할 수 있을 때는 저소득 가정 학생과 고소득 가정 학생 간의 학습 격차가 줄어든다.
215쪽
국내에 인터랙티브 전시가 보편화되기 시작할 때 이러한 시도가 아이들의 미술관 문턱을 낮추게 될 것이라고 어딘가의 후기에 남긴 적이 있다. 미술관의 문턱이 낮아지면 미술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술 교육이 많은 이들에게 평등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다수의 한국 어린이가 부모님 손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지만 그 이후로는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다룰 수 있는 악기, 배울 수 있는 예술의 범위. 공교육에는 한계가 있다. 학습 능력, 삶의 회복력, 인지적 인프라가 일부에게만 향할 수 있다면, 예술의 양극화와 문화 소외계층 문제가 더 대두되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 예술교육은 일부 계층에만 집중된 것 아닌가.
학습은 단지 교과 내용을 배우는 것 그 이상이다. 진정한 배움은 생기 넘치고 회복력 강한 삶을 위한 지지대이며, 예술은 강력한 집행 기능을 발달시켜 아이들에게 인지적 인프라를 마련해주는데 더없이 중요하다.
219쪽
특히나 한국은 서울에 문화 인프라가 집중되었기 때문에 예술 교육은커녕 문화예술 경험조차 한정적인 상황이다. 찾아보니 20여 년 전 참여정부에서도 다수를 위한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후로 문화예술 교육의 사회적 효과에 대한 연구도 꽤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학계에선 이미 일찌감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보편적인 사회적 인식으로 확산되지 못한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앞서 생각한 것들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아예 전제조건을 잘못 설정해 두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예술은 일부 계층에게만 필수적인 것이 된 게 아닌가, 그들에게만 더 나은 삶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프롤레타리아의 피가 끓기 시작했다.
예술은 많은 경우 아름다움과 의외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움의 훌륭한 촉진제다. - 261쪽
경외감은 (중략) 상당한 정도의 생리학적 작용을 촉발한다. (...) 이 고양감과 희열이 고조되어 '절정 경험' 혹은 '초월'이라 불리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 267쪽
능동적으로 경외감을 경험하는 사람은 자기조절 욕구가 덜하고,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이 더 크며, 위험성에 대한 내성도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 270쪽
책을 한 번 덮었다가 침착한 마음으로 다시 '나의 예술'에 집중하고자 했다.
경이로움과 경외감을 비롯해 예술 작품이 나에게 주었던 여러 감정의 순간.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 차이를 지워본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예술 작품을 마주했을 때 받았던 긍정적인 경험과 기억. 나쁘지 않은 그 무엇이 긍정적인 재확산을 이끌어낼 것으로 생각한다.
맨 처음 문장으로 돌아간다. 내 삶에는 예술이 이미 필수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이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부디 많은 이들의 삶도 그러기를,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