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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버닝필드]는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근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 상황을 지켜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불이 났을 때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지켜보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없이 나약해지는 순간이었다.


연극 [버닝필드]는 이러한 우리의 한계를 허물기 위해 분투하는 연극이다.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담아내며, 관객 참여형 연극인 ‘이머시브극’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난 이 연극을 통해 소방관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고, 그들의 호흡을 조금이나마 엿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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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짝 더 들어가 보기


 

이머시브 연극의 이머시브(Immersive)는 '몰두하다', '몰입하다', '에워싸는 듯한'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이다. 즉,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연극으로, 관객 참여형 연극 또는 몰입형 연극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 연극에선 관객석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공연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공연에 참여한다. 이러한 형식 자체가 이 연극이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에 한발짝 다가가는 느낌을 준다. 이 공연에서 이머시브 연극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무대 속에 관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무대를 채울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공연 중간에 소방관들끼리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또한 사고 현장에 관객들이 모여있으면, 소방관이 그들을 직접 구조한다. 이런 장치는 관객들이 실제로 그들과 같은 현장에 있다고 느끼게 하며, 소방관들의 시선과 촉감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두 번째는 모든 관객의 시선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머시브 연극은 무대 속에서 관객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때문에, 각 관객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 다르다. 연출이 특정 장면을 의도해서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 공연의 주체는 관객들이다. 관객이 어떤 장면을 담아갈지 주체적으로 결정하여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같은 날, 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관객들은 각자 다 다른 장면과 조명의 각도를 보는 것이다. 사실 공연이 영상 매체와 가장 다른 점은 관객이 어떤 장면을 볼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머시브 연극은 관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뛰어넘기 때문에 관객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한다.


이러한 특징은 현장감을 더욱 살려준다. 상황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닌, 직접 참여하는 참여자로 존재하기에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이야기에 더 깊이 들어가고, 무엇보다 소방관들과 같은 현장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들의 호흡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인간으로서 불 앞에 선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엄청난 영웅이 아니라 우리보다 조금 더 용기 있는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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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날 지급받은 무전기

 

 

이머시브 연극이라는 특징도 소방관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지만, 공연 곳곳에 숨어있는 세심한 연출들도 정말 인상 깊었다. 먼저, 관객들은 무전기를 하나씩 받는다. 소방관들의 무전을 관객들도 직접 들으면서 그들은 어떤 소리를 듣는지 경험할 수 있다. 이머시브 연극으로 관객들에게 소방관의 촉각을 경험하게 해준 것을 넘어 청각까지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두 번째로, 소방관에 대해 교육하는 장면이 있는데, 관객들은 여러 교육 내용 중 하나를 선택하여 들을 수 있다. 관객에게 단순히 소방관에 대한 감정과 상황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인 현실을 알려준다는 것이 세심하게 느껴졌다. 이를 통해 이 공연은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임을 자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헌화를 통해 소방관을 기리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공연을 찾아온 관객들이 소방관을 기리고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더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이 끝까지 그분들의 희생과 아픔을 기억할 수 있도록 신경 쓴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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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마주한 그분들의 호흡


 

어느 공연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소방관들의 현실은 적나라했다. [버닝필드]의 주요한 스토리는 동료를 잃고 아픔에 빠진 소방관과 그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을 담은 연극이다. 단순히 소방관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방관의 가족, 그들을 진료하는 정신과 선생님, 화재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 정부 관계자 등 화재 현장을 둘러싼 여러 인물이 나온다. 또한, 화재 현장을 찍고 올리는 인스타 화면과 기자가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뉴스 화면이 사실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연출은 ‘화재’라는 상황이 우리의 사회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며 소방관을 둘러싼 여러 인물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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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용돌이 속에서 소방관의 트라우마는 치료되지 못한다. 구조와 상황 그리고 곁에 있는 인물들의 무관심함이 그 상처를 아프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상처는 애초에 치료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소방관은 불길로 뛰어 들어가 줄을 목에 메고 자살한다. 난 이 결말이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괜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달까? 오랫동안 지켜봐 온 소방관의 죽음이 자살이라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리하게 누군가를 구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되자 내 안에 존재하는 어이없는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소방관은 나에게 영웅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쉽게 죽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존재이고, 누군가를 구하다가 죽는 결말이 그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건 소방관도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들도 죽음이 두렵고, 상처가 온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것을 느낀다.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비단 화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상처와 아픔도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아픔에 주목하지 않는다. 소방관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놀라운 희생과 기적적인 구조에만 초점을 맞춘다. (때로는 그 초점마저 흐릿해질 때가 있다) 물론, 소방관들의 일생과 희생은 영웅으로 비유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이 비유가 우리의 마음을 안일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소방관분들이 경험하는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시뻘건 불꽃과 매캐한 연기 속에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건 어떤 감각일까. 연극을 다 보고 난 지금도 나는 알 수 없다. 아주 작은 모서리만 마주했을 뿐이다.


마음이 저릿한 것은 지금도 누군가는 그 연기 속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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