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다는 감각은 대개 조용히 다가온다. 너무 사소해서 말하기 애매한 불안, 이유 없는 무기력 같은 것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문장으로 끄집어낸 감정은 형태를 얻으면 그 무게를 덜었다.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이와 같은 이치를, 예술이라는 더 크고 다정한 언어로 풀어낸다.
["감정과 느낌에 언어를 부여하는 행위가 살면서 겪는 힘겨운 사건들에 맥락을 입히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도록 신경생물학적 수준에서 돕는다는 것이다."] - p.122
형체 없는 미약함보다 구체적인 절망이 나을 때가 있다. 내 안의 감정이 ‘예술’이라는 외형을 얻는 순간, 그것은 나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나와 분리된 무엇이 된다.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고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거리감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다.
정신의학에서도 말한다. 우울과 트라우마, PTSD는 내면에 묻어둘수록 곪는다. 치료의 시작은 꺼내는 것이다(물론 그전까지의 과정이 가장 험난하다). 책은 이 지점을 뇌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며, 예술이 감정의 흐름을 어떻게 복원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미적 경험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해석하는 분야 '신경미학', 뇌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는 '신경가소성' 등 새로운 개념도 예술가들의 사례를 통해 소개된다. 솔직히 쉽지는 않다. 평소 심리학, 뇌과학에 관심이 있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책이었다. 내용을 전부 이해하겠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맘 편히 읽기를 권한다.
신경미학: 익숙하지 않지만 친숙한 개념
‘신경미학(Neuroaesthetics)’은 책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 중 하나이다. 예술적 경험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신경생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으로, 우리가 감동받는 그 순간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탐구한다. 아름다움을 감지할 때, 뇌의 시각 피질뿐 아니라 보상 시스템과 관련된 영역이 활발히 활성화된다. 즉, 예술은 시각적 자극을 넘어 감정과 동기, 회복의 회로를 동시에 건드리는 다차원적 자극이다.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수천 건의 연구가 내놓은 결과는 창작자로 참여하든 감상자로 참여하든 예술 활동이 전신 상태를 개선한다는 수많은 근거를 제시했다."] - p.55
최근 화재를 모으는 사회 이슈 중 하나는 ‘저속노화’다. 현대인의 가속노화는 스트레스 그 자체보다 스트레스에 대한 건강하지 못한 해소 방법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마라탕후루’를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해소되지 않은 스트레스는 자제력을 떨어뜨리고, 그로 인해 불건강한 생활습관을 반복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우리가 렌틸콩만큼 예술과 가까워진다면 이 문제를 더 즐겁고 건강하게 풀어갈 수 있다.
신경가소성: 여전히 뒤를 돌아보는 당신을 위한 처방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은 뇌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는 단지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고착된 신경 경로를, 예술을 통해 다시 구성하는 실제적 회복의 메커니즘이다.
["내과의사, 심리 상담사, 사회복지사, 그 외 수많은 전문가가 스트레스에는 노래교실을, 불안에는 미술관 방문과 콘서트 관람을, 번아웃에는 자연 속 산택을 처방한다."] - p.96
우리가 겪는 우울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길은 ‘원인’을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상처 준 그 사람을 용서해야만, 환경을 극복해야만 치료될 수 있다면, 우리 삶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정서적 문제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예술은 뇌를 다시 쓰는 일이다.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이 주는 실제적인 위로다.
예술의 일상화: 나에게서 출발하라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예술을 결코 고상하거나 우월한 행위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의 일상화를 강조한다.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며,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첫걸음이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면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김창옥 교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은 계절을 단 두 가지로 분류한다고 말한다. 덥다, 춥다. 짧지만 불쑥 찾아오는 봄내음, 습하지만 싱그러운 여름의 향기, 알록달록한 가을의 쓸쓸한 공기, 하얀 겨울의 붕어빵 냄새. 예술은 이토록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뇌과학이 예술을 권합니다
우리는 왜 힘들까. 왜 점점 더 지쳐가는걸까. 경제는 성장하고, 기술은 진보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점점 지쳐간다. 자아는 비대해졌지만, 자기를 표현할 길은 좁기 때문이다. 표현은 곧 존재의 증명이다. 어쩌면 가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진 것을 꺼낼 수 없어서 괴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만드는 종족이다. 뭐라도 만들지 않으면 잘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자기표현은 인간 본질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 p.288
뇌 ’과학’이 ‘예술’을 권하고 있다. 그 객관적 언어 덕분에 우리는 예술을 삶의 필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찾았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낙서, 짧은 일기, 하나의 명화 앞에서 조용히 오래 머무는 일. 당신의 안에 이 봄날에 어울리는 시가 가득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