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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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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에서 절찬리 공연 중인 판소리 뮤지컬 '적벽'. 판소리와 뮤지컬의 만남이라는 점이 흥미로웠고, 공연을 보고 난 후에는 기대 이상의 감동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적벽'은 전통 판소리의 매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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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사로잡는 음악: 전통과 현대의 조화


'적벽'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음악이었다. 판소리의 창(唱) 작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편곡과 악기 구성에 있어 과감한 시도가 돋보였다. 특히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나 록 스타일의 강렬한 비트가 판소리 가락과 어우러지며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판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도 전혀 지루함 없이 극에 몰입할 수 있었고, 전통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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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는 캐스팅: 젠더프리의 신선함


'적벽'은 젠더프리 캐스팅을 전면에 내세웠다. 조조, 공명, 조자룡 등 삼국지연의 속 상징적인 남성 인물들을 여성 배우들이 연기했는데, 놀랍게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배우들이 성별을 넘어 캐릭터 자체에 집중하여 그 인물의 카리스마와 고뇌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대 위 인물은 더 이상 '남성' 조조나 '여성' 공명이 아닌, 그저 한 명의 입체적인 캐릭터로 다가왔다. 키가 작고 곱상한 외모, 높고 가는 목소리가 오히려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한 새로운 인물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젠더프리 캐스팅이 단순히 성별을 바꾸는 것을 넘어, 캐릭터를 얼마나 새롭고 깊이 있게 해석할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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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압도하는 시각적 향연: 조명과 오브제의 활용

 

시각적인 연출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적벽'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무대는 붉은 톤의 강렬한 조명이 주요 색상으로 채워졌다. 레이저 쇼를 방불케 하는 역동적인 조명 디자인은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전투 장면의 박진감을 더했다. 특히 공명이 화공(火攻)으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는 장면에서 배우들이 붉은 부채를 활용해 타오르는 불길을 형상화한 것은 압권이었다. 공연 내내 중요한 오브제로 사용된 부채가 결정적인 순간 불의 이미지가 되는 상징성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역동적인 움직임: 현대무용과의 접목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맞게 현대무용을 접목한 안무 역시 훌륭했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장식적인 것을 넘어, 인물의 감정과 극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공명을 쫓는 두 충신의 장면에서 여성 배우가 남성 배우의 목마를 타고 달리는 안무는 속도감과 함께 주군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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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관찰: 역할 분담과 배우들의 역량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배우들의 역할 분담이었다.

 

유비, 관우, 장비 등 주요 인물들은 캐릭터 연기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도창(導唱, 극의 해설자이자 소리꾼)이나 조조의 부하 등 조역 배우들이 오히려 더 많은 판소리 대목을 소화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것이 판소리 전공 배우와 뮤지컬/연기 전공 배우, 혹은 무용 전공 배우가 각자의 강점을 살려 역할을 분담한 것인지, 아니면 다재다능한 배우들이 각 파트를 소화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러한 구성이 '적벽'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내는 요소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는 배우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조화롭게 극을 이끌어갔음을 보여준다.

 

 

성공적인 각색과 무대 활용

 

삼국지연의의 방대한 '적벽대전' 이야기를 뮤지컬이라는 틀 안에 효과적으로 압축한 점도 칭찬할 만하다. 핵심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또한, 정동극장이라는 비교적 크지 않은 무대 공간을 경사와 단차를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채로운 장면을 연출해냈다. 무대 양옆 벽면에 궁서체로 인물 이름을 크게 띄우고 관련 그림을 함께 보여준 디테일은 관객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극의 시대적 배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했다.

 

 

결론: 모두를 위한 축제

 

판소리 뮤지컬 '적벽'은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삼국지가 생소한 사람까지 모두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전통 판소리의 멋과 현대적인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음악, 고정관념을 깬 신선한 캐스팅, 강렬하고 아름다운 시각적 연출, 역동적인 안무, 그리고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까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했다.

 

전통 예술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있는 시도였으며, 잘 만들어진 공연 한 편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직 '적벽'을 만나보지 못했다면, 이 강렬하고 매혹적인 무대를 꼭 경험해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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