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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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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세계가 쉴 새 없이 들썩인 적 있었나. 뉴스 틀기가 두려울 정도로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상상 이상의 폭력과 비리가 곳곳에 난무하는 현상을 보며 평화와 유대, 협력이라는 단어는 이미 증발한 지 오래인 것 같다.


나라 살림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각국이 전진과 후퇴를 수없이 거듭하는 와중에도 전쟁만큼은 그대로다. 되려 전쟁은 모든 걸 뒤로한 채 역행하고 있다. 저 혼자 자리를 고수하느라 온 세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불안을 떠안고 살아간다.


예측 불가능한 세계 정세만큼이나 영화 <허트 로커>도 일촉즉발 상황들의 연속이다. 밀리터리 영화를 곧잘 챙겨 보는 편인데 허트 로커는 조금 이례적인 영화였다. 러닝 타임 동안 총알이 끊임없이 빗발치지도 않았고, 승리와 패배가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도 아니었다. 밀리터리 영화만의 고유한 그림체보단 전쟁으로 입은 피해와 후유증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는 초반부에서부터 이미 쐐기를 박는다. 전투의 격렬함은 중독을 낳고 사람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어쩌면 <허트 로커>는 감춰져 있던 전쟁의 참상을 세밀하게 그려낸 기록일 수도 있겠다.




‘허트 로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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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Hurt Locker)‘

미군에서 쓰는 일종의 속어로 ‘벗어나기 어려운 물리적 또는 감정적 고통의 기간’을 의미한다.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뜻하기도 한다.

 

 

<허트 로커>는 이라크에서 폭발물을 처리하는 EOD 병사들의 삶과 그들의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예기치 못한 폭발 사고로 선임을 잃게 된 팀에 새로운 분대장인 ‘제임스’가 부임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아무리 경험과 실력을 갖춘 EOD 베테랑 요원이라 할지라도 결국 폭탄을 다루는 일이다. 언제 어떻게 어떠한 식으로 폭발물이 터질 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안전이 걸려있는 일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자신의 직감을 과신이라도 하듯 오히려 과감하고 무모하게 폭탄 해체 작업에 뛰어든다.


작업 철수 권고도 무시한 채 오로지 손 끝에 쥐어진 폭탄 연결선에만 집중한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은 함께 움직이는 팀원들마저 위험에 빠뜨린다. 광기 어린 눈빛으로 이상하리만큼 폭발물에 집착하는 그. 모두가 살얼음을 걷고 있는 순간에도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분대장 제임스 때문에 팀원들은 점점 두려움에 빠진다.




<허트 로커>의 관전 포인트


 

1. 생생한 현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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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있으면 EOD 요원과 함께 작전 현장에 투입된 것만 같은 현장감을 전해 받는다. 특히 현실감 있는 폭발 신들과 함께 슬로우를 건 특유의 화면 연출은 긴장감과 불안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땅이 천천히 솟구치고, 흙먼지들이 진동하며 일어나는 폭발의 순간을 아주 느린 속도로 보여주는데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을 정밀하게 보고 있다는 게 어쩐지 소름이 돋고 공포스러웠다.


거기에 작품 상의 특수한 설정으로 스릴은 배가 되었다. 주인공이 지금 제거하고 있는 폭탄이 터질까? 혹은 터지지 않을까?하는, 결과가 둘 중 하나인 극단적인 상황이 어느 때보다도 영화의 몰입을 높였다. 폭발물이 언제 터질지 몰라 영화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제임스를 지켜보는 팀원처럼 덩달아 나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화면을 뚫고 나오는 긴장감은 대중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영화 <허트 로커>는 제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현실감 넘치는 특유의 연출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2. 전쟁 PTSD를 집중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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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D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다. 각종 사고와 재해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장애를 뜻하는데 <허트 로커>는 그중에서도 ‘전쟁’, 더 들어가서 ‘전쟁 중독’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전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메시지도 아예 영화 초반부에 등장해 버린다.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


영화는 오랜 시간 전쟁의 격렬함에 노출되어 버린 한 인간이 어디까지 심각해질 수 있는지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는 폭발물 제거 업무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인물이다. 사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는 자기 업무에 대해 아주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폭발물 처리를 마치 도장 깨기 하는 것처럼 여기는 그의 태도를 보며 사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폭탄 제거 작업은 제임스에게 엄청난 쾌락을 안겨 준다. 오직 그 쾌락만이 그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전부인 것 같았다. 하나하나 처리를 할 때마다 엄청난 아드레날린에 취해 버린다. 자극은 더한 자극을 불러일으키고 위험한 일을 스스로 자초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제임스는 심지어 그동안 해체한 폭탄의 뇌관들을 침대 밑에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자신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팀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그거 알아? 사람들을 죽일 뻔 했었던 무언가를 모으는 게 말야...정말 흥미로운 일이라고.“ 자신이 제거한 폭탄 개수까지 다 외우고 있는 그는 갈수록 더 한 자극을 찾는다. 자기 자신도 점점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제대까지는 단 38일이 남은 상황. 제임스는 이곳에서의 하루가 왠지 아쉽기만 하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혼란스러워 하는 그다.


제대 후 갖게 된 평온한 일상.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전장을 택하고 마는 제임스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의 발길을 다시 돌리게 했을까? 살 떨리는 현장이 누군가에겐 살아갈 이유가 된다. 미처 알지 못했던 전쟁 중독의 심각한 끝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3. 섬세하게 표현한 병사들의 심리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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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는 폭발물 제거 작전을 수행하는 EOD 요원들의 심리를 매우 자세하게 다룬 작품이다. 영화의 주요 인물은 세 명의 병사인 분대장 ‘제임스’와 병장 ‘샌본’ 그리고 상병 ‘엘드리지’다. 각자의 기질도 다르고 전장에서의 경험치에서도 차이가 있다. 또 저마다 갖고 있는 심리적 트라우마도 조금씩 다르다. 때문에 셋은 기본적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개인차가 있다.


샌본과 엘드리지는 폭발 사고로 이미 한차례 선임을 잃은 상태다. 안전에 총력을 기울여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따르는 것이 자신들이 일하는 현장이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난 자리에 사람이 채워지고 위험은 똑같이 반복된다.


이성적이고 신중한 태도로 팀을 움직이던 샌본 병장은 새로 부임한 분대장 제임스의 무모한 작업 방식이 거슬린다. 함께 움직여야 하는 작전 상황에서 분대장은 보란듯이 독단적인 행동을 보인다. 일이 틀어질 때마다 상황을 수습하는 건 온전히 팀원들의 몫이 됐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이미 한계점을 찍고 있었다. 제임스가 헤드폰을 집어던지고 손가락 욕을 날리며 팀원들과의 교신을 거부했던 날 샌본 병장이 폭발하고 말았다. 멋대로 굴지 말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며 그에게 주의를 요했다. 허나 작전을 거듭할수록 이들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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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제임스는 일을 내고야 만다. 한밤중 그의 무리한 작전으로 인해 엘드리지 상병이 다리에 총상을 입게 된 것. 심리적인 어려움으로 이미 상담 치료를 받고 있던 엘드리지는 또 한차례 패닉에 빠지고 만다. 그간 쌓였던 감정을 토해 내듯 엘드리지는 분대장에게 소리친다. ”당신 아드레날린 때문에 사람 다 죽어나가!“


샌본도 마찬가지였다. 끝까지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결국 놓치며 ”죽는 게 너무 두렵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반복되는 위험에 지칠대로 지친 그는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오는 모든 것들이 혐오스럽다. 이제 그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무너지는 샌본과 엘드리지를 보면서도 제임스는 덤덤하기만 하다. 도박하는 사람처럼 작전에 목숨 걸었던 그는 사실 본인조차 그러는 이유를 모른다. 이 일을 하는 본래의 이유는 사라지고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느꼈던 전율만이 기억날 뿐이다.

 

평온한 일상에는 그 어떤 쾌락도 존재하지 않았다. 제대를 하고 가족 곁으로 돌아온 제임스는 소중한 시간 앞에서 되려 권태감을 느낀다. 마트 시리얼 진열대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한참을 당황하다 겨우 하나 집어 든 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 ‘선택’이라함은 ‘폭발물을 제거하냐, 제거하지 못하냐’로서, 답이 바로 나오는 쉬운 결단이다. 장을 보고 수십 가지의 시리얼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그에게 어떠한 감흥도 안겨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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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돌아와 놓고 다소 이기적으로 보이는 말을 뱉기도 한다. 이라크에는 더 많은 폭파 요원이 필요하다, 아이는 참 많은 것을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면 좋아하는 게 하나씩 사라진다, 내가 좋아하는 건 오직 하나뿐이다...비통하게도 그가 살아가야 할 이유에 가족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곳을 향해 주저 없이 발길을 돌린다. 중독을 넘어 이제는 살기 위해 이라크 전장으로 다시 복귀하는 제임스. 이로써 모두가 ’허트 로커‘에 갇혀 버렸다.



4. 가려진 전쟁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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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한복판에서 나서는 이들은 아니지만 전장 한 켠에서 활동하는 EOD팀을 작품에 앞세운 것은 전쟁이 가진 속성 중에 조금은 가려져 있던 ’중독‘을 우선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한결같다. 마약과도 같은 전쟁 중독의 심각성. 이미 여기가 막다른 끝인데 계속 더한 낭떠러지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 또한 전쟁의 비극적인 참상임을 대중에게 또 한 번 각인시킨다.

 



전쟁의 당위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영화를 통해 사람이 서서히 파괴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조금씩. 제임스도 분명 시작은 그랬을 것이다. 전쟁의 처참함은 늘 상상 이상인 것 같다. 그리고 전쟁의 속성은 오직 파멸과 파괴뿐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의미 있는 전쟁은 절대 있을 수 없고 승리 또한 없다는 것을.


전쟁의 당위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 아직도 곳곳에서 벌이지고 있다. 모든 인류가 평화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무의미한 일들이 종식되기를 바란다.


무의미한 전쟁에 열린 결말은 절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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