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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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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많이 키우는 사촌 언니로부터 작은 화분을 분양받았다.

 

‘우정의 식물’이라고도 불리는 필레아 페페는 얇은 줄기와 동그란 잎을 가졌다. 여린 잎과 대비되는 단단한 기둥을 가진 이 식물을 ‘페페’라고 부르기로 했다.

 

서대문구 옥탑 원룸에 페페 하나 입성했다고 묘하게 집 같아졌다. 창문을 열면 붉은 벽돌만 보였는데, 이제는 페페가 창문을 떡 하니 지키고 있어 일렁이는 초록빛이 먼저 보인다. 혼자 먹던 밥, 혼자 쓰던 일기, 혼자 자던 잠을 이제 페페와 함께한다는 사실에 나름의 책임감이 생겼다.

 

굳게 닫았던 창문을 열어 함께 해를 보며 바람을 쐬고, 노트북 화면만 보다가 한 번씩 물을 머금은 초록 잎을 들여다보고, 흙이 너무 마르거나 습하지는 않은지 노심초사한다. 화분 하나에 생각보다 많은 마음이 들어가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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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달팽이와 동거 중이다. 우연히 상추에서 나온 달팽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내 주먹만 해진 그 듬직한 달팽이와 여전히 함께 산다. 드넓은 상추를 야금야금 먹으며 기던 그 조그마한 게, 이제는 무럭무럭 자라 상추 한 장 정도는 금방 먹어 치운다. 상추에서 나온 달팽이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냐고, 볼 때마다 헉, 하고 놀라곤 한다.

 

친구는 ‘팽이’의 컨디션에 따라 플라스틱 케이지를 이리저리 옮기기도 하고, 손님 앞에서 ‘팽이’가 활발히 움직이면 기뻐한다. ‘팽이’는 그렇게 친구의 마음을 먹고, 가끔 우리의 대화에 반응하듯 고개를 빳빳하게 내밀어 주는 ‘집 달팽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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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애정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답하는 생명을 통해 매일 관심과 다정의 중요성을 배운다. 며칠 전 페페의 줄기 중 하나가 너무 길었는지 살포시 꺾여 힘을 잃었었다. 지지대를 사야 하나, 그러기엔 줄기가 연약한데. 잘랐다가 다시 안 자라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인터넷에서는 잘라내라고 했지만, 원체 잎의 수가 적은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해가 조금 더 잘 드는 창틀에 올려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낸 후 어느 날 물을 주려고 다가가니, 축 처져있던 줄기가 조금 생생해졌다. 잎에 선명한 초록빛이 들고, 꺾여서 갈변됐던 부분도 본래 색을 되찾은 듯 보였다. 찾아보니, 완전히 죽지만 않는다면, 식물은 어김없이 광합성을 한단다. 그렇게 꺾여도 햇빛만 있다면 살아남아서 숨을 쉰단다. 해를 보게 해줬을 뿐인데, 그동안의 걱정이 무색하게 페페는 알아서 잘 회복했다. 경이로워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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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와 팽이를 보니 문득 농사 활동이 공식 수업이었던 내 초등학교가 떠올랐다. 담임 선생님은 초등학교 3학년생 우리를 마당으로 불러내 짱돌처럼 야무진 친구에게는 호미를, 키가 컸던 나에게는 손잡이가 긴 괭이를, 손이 빠르고 차분한 친구에게는 씨앗 봉투를 쥐여줬다. 큰 돌과 쓰레기로 가득한 메마른 땅을 함께 몇 개월에 걸쳐 갈고, 고랑과 이랑을 만드니 공장 앞 작은 땅이 우리 반의 밭이 되었다. 생각보다 무럭무럭 자라난 농작물에 담임 선생님도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여름에는 땀을 빨빨 흘리며 봄에 심은 감자와 토마토를 수확하고, 겨울에는 언 손으로 눈을 털며 가을에 심은 배추를 뽑아냈다. 토마토로 샐러드를 만들고, 감자로 수프를 끓이고, 배추에서 벌레가 나오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다 같이 김장도 했다. 매서운 철 소리와 연기를 뱉어내는 공장 건너편에 네임펜으로 칠한 해, 구름, 새싹으로 알록달록한 나무 간판이 우뚝 심어졌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10살의 우리는 다양한 색을 지닌 생명에 노력을 기울이면, 어떤 곳이든 싹이 움트는 현장이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우리 반 텃밭일지에 담겼던 농작물들이, 나와 함께하는 페페가, ‘어김없이 살아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날을 더 잘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과 나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사람을 대할 때 더 진실해지고자 노력한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면 상대의 마음에서 나왔을 말들을 여러 번 곱씹어 본다. 말할 때는 눈을 바라본다. 가족과 친구의 일상을 자주 묻는다. 버스와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건넨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햇빛, 물, 바람을 조금이나마 선물하려고 노력 중이다. 햇살을 피해 고개를 숙인 이들, 반복적인 일상에 갉아 먹히는 기분을 느끼는 이들이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도록 조금은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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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아파트, 달리는 차, 그리고 개인주의와 소외로 건설된 이 고독의 세상에서 다른 생명에 관심을 기울이기란 참 어렵다. 그럼에도 집 안에 초록 새싹과 촉촉한 흙을 들이는 이들이 존재한다. 어둑한 거실에서 크는 반려식물들을 위해 손수 스탠드의 각도와 빛의 농도를 조절하는 사촌 언니, ‘팽이’가 잘 클 수 있는 환경을 조심스레 가꿔나간 친구, 그저 밭을 일구는 방법보다 더 큰 원리인 생명 존중의 법칙을 가르쳤던 선생님. 나눈 정을 듬뿍 먹은 존재의 자라남을 눈과 마음에 담는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막 키우기 시작한 식물에 관해 하나씩 배워가듯, 유심히 들여다본 후 얻게 되는 서로에 관한 정보를 소중히 할 것이다. 마음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벌레 먹지는 않았는지, 잡초가 발목을 타고 자라고 있는데 그저 버티고 서있지는 않는지, 서로 들여다봐 주기로 하자. 그래서, 꺾인 줄기로도 햇빛을 머금는 페페처럼 그 생명에 다시금 윤기가 돌 때, 벅차오름과 용기를 느껴보자. 정을 주는 행위, 다정을 실천하는 과정은 삶을 기르고 수확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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