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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우주 경쟁(Space race). 1957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과 구소련이 우주 탐사를 두고 경쟁적으로 기술 개발에 몰두했던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이 희대의 경쟁은 소련이 미국을 제치고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를 성공시키며 촉발되었다. 곧바로 두 번째 인공위성 개발에 착수한 소련은 이전보다 발전된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살아있는 생명체인 우주탐사견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한다.


그렇게 우주로 떠나보내진 라이카가 어린왕자의 행성 B612에 도착해 어린왕자와 장미를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신선한 상상으로 뮤지컬 '라이카'는 막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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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행성에서 '존재'로 거듭난 라이카는 마치 인간처럼 두 발로 걷게 되고, 후각은 퇴화한다. 인간을, 특히 자신의 관리자였던 캐롤라인을 너무나 사랑한 라이카에게 이것은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그러나 B612의 존재들은 '인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라이카가 인간처럼 바뀐 것이 아니라 존재가 된 것임을 강조한다.


B612의 존재들과 라이카의 불협화음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어린왕자와 장미, 그리고 바오밥나무들은 모종의 목적을 위해 라이카를 반기고 그가 행성에 정을 붙이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그러나 라이카는 사랑하는 캐롤라인을 만나러 다시 지구로 가고 싶고, 행성의 존재들과 함께하다 보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 존재들은 라이카를 길들인다 생각하지만 라이카는 그 안에서도 캐롤라인만을 그리워한다.


극 중 라이카는 캐롤라인을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 인간에게 계속 이용당했던 라이카가 그럼에도 인간을 사랑한 이유도, 지구에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도, 마지막에 그런 선택을 한 이유도 결국 캐롤라인이다.


그 시작은 힘든 훈련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다정했던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이었다. 그러나 '존재'가 되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기 시작한 라이카는 캐롤라인이 했던 말들의 의미를 하나둘씩 이해하게 되고, 캐롤라인의 진심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맹목적이었던 어린아이의 애정은 이해와 포용으로 보다 넓어진다.


극 중 어린왕자는 '인간다움'을 혐오했지만, 라이카는 '인간다워'졌기에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 일견 아이러니하다. 라이카는 늘 기다리고 견뎌야만 했고,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우주에 보내졌다. 그러나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거쳐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기다려 달라고 말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창작진이 말하고 싶었던 '인간다움'이란 이런 부분에서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며, 그 과정에서 번뇌를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다름을 길들이고 길드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어찌 보면 인간다움보다는 인간이 추구하고 도달해야 할 이상일 수도 있겠다.


전체적으로 라이카나 존재들에게 이입하다 보면 인간 혐오에 걸릴 것 같은 내용이지만 그것이 창작진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니었을 터다. 우리는 결국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뮤지컬 '라이카'는 그 'How'를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더욱 의미가 있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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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전달하는 메시지 역시 생각해 볼만 하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강점을 십분 살린 요소들이 이 극의 큰 강점임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다. 배우들의 탁월한 노래와 연기를 바탕으로, 믿고 듣는 창작진의 넘버, 앙상블과 함께하는 시원시원한 안무, 무대 공간을 충분히 활용한 연출, 게다가 장미가 전담하는 적절한 유머 코드까지 메시지와 별개로도 뮤지컬의 매력을 느끼기에 좋은 공연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길들임'의 장면에서 라이카를 적응시키려 하는 존재들의 노력은 명랑한 넘버와 기운찬 앙상블의 안무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 넘버 사이사이에 먼 곳을 바라보며 "안녕 캐롤라인"을 부르는 라이카의 모습은 아련하고 애달프다. 그렇게 상반된 장면과 음악이 반복됨에도 흐름이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무대를 밀도 있게 채우며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2막의 시작을 알리는 넘버에서는 라이카가 훈련소에서 겪어야 했던 상황을 안무로 표현했는데 매우 신선했다. 격렬하면서도 절제된 움직임의 솔로 안무가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물론, 현재의 라이카가 과거의 라이카를 바라보는 식의 무대 구성과 조명을 통한 그림자 연출이 감각적이었다. 인터미션 동안 1막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여운이 가시며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만큼 2막의 시작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그 부분을 넘치게 충족시킨 장면이었다.


물론 창작 뮤지컬의 초연인 만큼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숨 가쁘게 달려온 1막에 비해 2막의 내용 및 진행 속도가 상대적으로 잔잔해 1막과 2막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분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으며, 어린왕자가 갖고 있는 서사의 무게감이 좀 더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중에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울림을 주면서 공연 후에는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남겼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은 작품이었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너무 울어서 눈이 조금 부었다) 이번 초연을 거치면서 강화할 부분은 강화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여 재연, 삼연에서 더 좋은 공연으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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