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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또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새로운 의미를 건네주는 이야기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으며, 또 어딘가에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뮤지컬 〈라이카〉도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소중한 이야기다.

 

〈라이카〉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과열되던 시기,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에 이어 2호를 개발한 소련이 최초의 우주탐사견을 우주선에 태워 생명체의 생존 여부와 적응 가능성을 시험한 1957년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라이카'는 품종, 우주탐사견의 실제 이름은 '쿠드랴프카'로 인간을 사랑한 개는 귀환 장치가 없는 우주선에서 인간의 욕심에 의해 희생되었다. 그로부터 68년 후인 2025년, 인간을 사랑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펼쳐지고 있다.

 

다만, 실화를 배경으로 하면서 라이카의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B612 행성에 불시착하게 된다는 가상의 설정으로 최초의 우주탐사견을 제3자의 시선이 아닌 일인칭의 시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불시착하기까지 어떤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우주선에 탑승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라이카의 속마음을 대사와 노래 가사에 담아 전한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들의 연구 대상이었지만, 보조관리자 캐롤라인만큼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고 아껴주었기에 수많은 검사와 고된 훈련을 겪었음에도 캐롤라인을 생각하며 버텼다고, 그녀는 나의 사랑, 나의 세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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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는 B612 행성에서 왕자, 장미, 바오밥들처럼 자신과 닮아있는 '존재'들을 만나고, 경쾌하게 춤을 추며 살아가는 그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쌓는다.

 

두 발로 걷게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펄쩍 뛰며 지금의 상태로 캐롤라인을 만나는 설레는 상상도 하고,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환대에도 행복을 느낀다. 그 존재들로부터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하는 지구와 인간들의 실체를 알게 되어 괴로워도 한다. 알지 못했으면 좋았을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라이카는 한없이 가여워진다.

 

그런 라이카에게 왕자와 장미, 바오밥은 우주의 뱀구멍을 이용해 지구를 멸망시킬 오랜 계획에 동참해 주기를 제안한다. 분노와 상실감에 가득 찬 라이카는 제안을 수락하고, 뱀구멍을 이용할 동력을 만들어내는 자전거에 타 바퀴를 하염없이 발을 굴러댄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슬퍼지는 것을 느낀다. 여러 번 슬퍼지기를 반복한 어느 순간에는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서의 존재가 되기 위해 바퀴를 구르던 발을 멈춘다.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고, 지구가 멸망하면 인간들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동물들도 함께 멸종되고 말 거라고,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가 되지 않아야 한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라이카의 모습은 그와 반대되는 인간의 무자비함과 온갖 만행이 스쳐 지나가게 한다. 넘버 '인간은 뭘까'가 흘러나오면서 도대체 무슨 자격과 권리로 인간은 그러했을까 라는 물음이 무대에 끊임없이 던져진다.

 

그 물음은 무대를 빙글빙글 돌아 무대를 응시하고 있는 관객들을 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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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라이카는 마지막으로 캐롤라인과의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왕자와 함께 지구에 간다. 지구, 소련의 어느 동네에 세워진 자신을 기리기 위한 동상을 본다. 그 앞에 서 있는 나이 든 캐롤라인의 뒷모습과 우연히 뒤돌아보며 자신을 보고 미소 짓는듯한 그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캐롤라인을 끝까지 지켜본다.

 

봄에서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라이카의 동상은 변함없이 서 있다. 꼿꼿한 자세를 취하며 라이카는 늘 그렇게, 세상에 변함없는 존재로서 존재한다. 라이카가 행복하기를, 이 이야기가 라이카, 쿠드랴프카에게 닿기를, 세상에 뿌리내린 수많은 존재들에게 아픔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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