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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1. 전기, 새로운 빛의 시작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빛이 없는 세계’는 상상할 수 있어도 ‘전기 없는 세계’는 상상할 수 없는 곳이다.

 

빛과 전기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에서 차이가 있다.

 

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고, 1882년 뉴욕에 발전소를 세운 이후 전력을 공급하면서 전기는 점차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최초로 전등불을 밝혔으며, 1898년 한성전기회사 설립 이후 가정에도 전기가 도입되었다.

 

다음 남현지와 김리윤, 두 사람의 시에서 ‘빛’과 ‘전기’가 시 내에서 어떻게 새로이 재구성되었는지 살펴 볼 수 있다.

 

 

 

2. 남현지, 빛의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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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좋아해요?


이제 그만

그걸 자연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담배를 마지막으로

집에 불타오르는 물건이 없어졌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전기를 좋아하는구나


전기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만두 없는 세계

슬프지만 그럴 수 있고

종달새는 본 적도 없고

나 없는 세계는 지금도 뭐


언제부터

고통 없는 세계

그건 상상을 안 합니다


남현지, 빛의 생산 中

 

 

남현지의 「빛의 생산」의 세계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빛이나 타오르는 불 대신 전기가 그 자리를 대체한 공간이다.

 

이 시에서 만두나 화자인 ‘나’가 없는 세계는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고, 종달새는 육안으로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전기는 자연이나 고통과도 같은 존재로, 그 이전 전기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대가 있었음에도, 분리하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이다.

 

이제는 불이 존재하지 않아도 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담배 연초를 마지막으로 불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전기로 세계를 새로 재구성하였으며, 전기가 보여주는 빛이 표방하는 질서로 세계와 사물을 감각하고 이해한다. 전기로 만든 빛이 번쩍거리면, 문제가 생겼다고 인식한다.


 

봄기운이 완연한

오늘 날씨 이야기처럼 다들

두 줄을 넘기지 말라고

고통에게 차례를 지키라고

말할 거라면


사물들은 다 잘 있습니다

가끔 고장이 나고

그것을 고치거나 버립니다

빛이 깜빡거리면

문제가 있는 거고


담배는 진짜 끊었습니다


남현지, 빛의 생산 中


 

인간의 인식 체계 자체가 완전히 전기와 기계의 체계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빛이 깜빡거리면 사물에 문제가 있다는 서술 이후 이어지는 “담배는 진짜 끊었습니다”라는 문구는 화자가 불을 사용하는 연초 담배를 끊고 충전식의 전자담배로 바꾸었다고 읽을 수도 있다.

 

2021년 발표된 이 시는 “두 줄을 넘기지 말라고 고통에게 차례를 지키라”는 서술을 통해 코로나 19로 인한 펜데믹 사태에 대한 주제성 역시 읽어낼 수 있다. 

 

감염이나 고통 역시 ‘두 줄’을 통해 판별해내고, 번호표를 발행하여 대기하는 절차 또한 기계적인 체계의 일환이다.

 

남현지의 「빛의 생산」은 짧은 시이지만 21세기 현대인들이 빛과 전기를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세계에 대해 감각하는지 읽어낼 수 있다.

 

 

 

3. 김리윤, 재세계 reworlding



 

12월엔 어디에서나 커다란 나무에 작은 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불빛이 들어오고

빛을 끄고 불을 켜면 다 똑같아 보이는


세계의 근원은 이제 전기라고

인간은 빛보다 한참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서 원하는 만큼의 빛을 만들 수 있다

운전자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달릴 자동차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생명의 낭비를 줄여주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너무 환한 곳에서는 생명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높은 조도에서는 사물을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밝게 빛나는 하늘과 흰옷을 입은 사람을 구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김리윤, 재세계 reworlding 中

 

 

「재세계」에서 빛과 전기란 구별하기가 거의 불가한 것이다. 이제 ‘세계의 근원은 전기이기’ 때문이다. 휴대폰 불빛은 극장에 가득 깔린 어둠을 이겨내고 상영되는 영화 속 밤거리의 불빛은 시야조차 가려버린다.

 

전기로 돌아가는 세계는 인간이 멸종하고서도 계속 전기의 동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생명의 낭비를 줄인다는 목적으로 표방하였으나, 이러한 발전은 생명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김리윤은 더 나은 것에 대한 추구, 발전에 너무 매몰되어 생명을 경시하게 된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인간의 면을 “높은 조도에서는 사물을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려워 “너무 환한 곳에서는 생명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고 세련되게 비판한다.

 

“정원사의 손에서 떨어지는 잎사귀와 뚝뚝 분질러지는 나뭇가지”,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등에 포개어져 있는 짐승의 등”이 인간이 이룩해 낸 현 세계의 온상이다.

 

인간은 세계에 극히 일부로 종속된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이 미를 탐구하고, 빛에 닿으려는 오만을 가지고 관념을 가짐으로써 세계를 인간의 세계로 재세계화한 순간, 인간은 지구와 우주에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큰 착각은, 우리는 우주와 함께 멸망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김리윤은 이런 재세계화의 대안으로 인간의 멸종을 제시한다. “매년 20퍼센트 정도의 광량이 감소”하며, “세계는 점점 더 낮은 조도로 진화” 중이다. 

 

희박해져가는 태양광 아래에서 전기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지구나 우주보다 일찍 멸종할 것이다. 전기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식별해내야 할 것도 없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낭비되거나 희생되는 생명도 없을 것이다.


 

아름답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아름다움은 시작되었다

이것은 전기로 작동되는 신이 들려준 이야기다


김리윤, 재세계 reworlding 中


 

기록을 읽고 소화해 이어나갈 존재가 없으니 인간의 존재도 영원히 중단되고 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세계」의 마지막 문장으로 인해, 이 시는 새로운 메타 구조를 띠게 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전기가 인간을 정복하고 인간이 멸망한 이후에도 계속 작동하여 아마 인간일,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마무리는, 독자에게로 하여금 시 전체를 전복하게 한다.

 

또 “전기로 작동되는 신”은 기계론적 세계관이 결국에 도달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신의 형상’의 이미지와,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던 ‘창작’의 영역까지 도달한 AI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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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간은 빛을 신으로 생각하였고, 숭배하였다.

 

그 후 인간은 몇 세기에 걸쳐 진화를 거치고, 기술의 발전을 통해 전기로 빛을 만들어 내기까지에 이른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기술로 재구성된, 새로운 세계의 질서 속에 갇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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