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개발의 역사에서 라이카는 ‘최초’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이름 뒤에는 과학적 성취를 위해 희생된 한 생명이 있었다. 뮤지컬 라이카는 과학적 성취 뒤에 가려진 작은 생명의 이야기를 무대 위로 끌어올리며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린 존재들의 목소리를 다시금 들려준다.
작품은 1957년 냉전 시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를 시작으로 한 소련의 우주 탐사를 배경으로 한다.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에 이어 두 번째 위성을 발사하며 그 위성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탑승시키기로 결심한다. 이로써 선택된 존재가 바로 지구 최초로 우주를 탐사한 개, 라이카였다.
라이카는 우주에 보내지기 전에 작은 행성에 불시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왕자, 장미, 바오밥을 만난다. 라이카의 여정은 ‘어린 왕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롭게 그려지며, 라이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계는 우리가 알던 ‘어린 왕자’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 하찮은 욕망을 위해 지구를 지옥으로 만들어"
라이카의 1막을 이끄는 핵심 정서는 ‘실험과 희생’이다. 라이카는 인간의 목적을 위해 희생된 존재로서 우주로 떠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실험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라이카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극은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동물의 생명이 희생되는 현실을 그리며, 이를 통해 인간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그에 대한 윤리적 고민을 관객에게 전달하려 한다. 라이카가 자신이 희생된 이유와 목적을 점차 깨닫게 되면서 관객은 인간의 과학적 호기심과 윤리적 책임 사이의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어린 왕자는 본래 순수한 마음을 가진 존재였으나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에 환멸을 느끼게 된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인간들의 행동에 실망한 어린 왕자는 점차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과 증오를 품게 되고 증오심은 끝내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왕자가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1막을 통해서는 명확하게 풀리지 않는다. 공연을 보는 내내 인간을 혐오하게 된 정확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왕자의 행동이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극을 보며 '어린 왕자'의 원작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왕자의 감정선이나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는 데 훨씬 수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자가 인간을 혐오하는 이유는 특정한 사건이나 행위들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혐오는 점차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도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퍼져나간다. 왕자의 과도한 혐오가 계속해서 표현되면서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낳는 양상은 단순히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더 오래 걸렸으니까, 나가면 더 길게 안아주겠지"
2막은 ‘상실’과 ‘공존’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라이카와 어린 왕자, 장미는 각각 상실과 공존의 개념을 이야기한다.
라이카는 인간의 탐험이라는 큰 목적을 위해 희생된 존재로, 상실을 겪은 동물이다. 어린 왕자는 순수한 마음을 잃고 어른이 되어버린 존재로서, 공존을 갈망하지만 인간과의 괴리감을 느끼며 갈등한다. 장미는 길들여진 존재로, 사랑과 소유의 개념을 대표한다.
이 세 캐릭터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관객에게 다양한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한다.
이 뮤지컬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인간의 ‘다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라이카의 결정을 오롯이 납득하기는 힘들었지만 인간이기에 누리고 있는 것, 인간의 탐구심이 만든 희생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라이카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