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워크맨]의 배경인 2060년, 노동시간이 비약적으로 줄어들어 주 3일 3시간 노동의 시대를 맞이했다. 극 중 사람들은 남는 시간에 무얼 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까. 세간의 기대처럼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거나 자아실현에 열중하는 삶을 살게 될까.
최근 야당 대표가 주 4일제는 시대의 흐름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을 미래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당연히 곳곳에서는 반발이 터졌다. 엄살의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 팔을 꼬집으면 아! 하고 소리를 내지르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닌가. 사회가 적절히 대화를 통해 해결해나갈 문제이다.
내가 인상 깊게 본건 한 설문이다. 한겨레에서 진행한 늘어난 휴일에 무엇을 하겠냐는 설문조사였다. 가장 많은 답변이 무엇이었을까. 가족과의 시간? 자기계발? 많은 직장인이 꼽은 항목이긴 하지만, 1위는 아니었다. 대망의 1위는 기운 빠지게도 ‘그냥 쉼’ 이었다.
2위가 취미생활, 3위가 육아 등 가족과의 시간이었다. 놀라운 건 2위와 3위의 비율을 합쳐도 ‘그냥 쉼’을 이기지 못했다. 더 재밌는 건 나이 대 별로 차이 나는 주 4일제 찬성 비율이다. 20대는 64.6%, 30대는 74.6%가 찬성한 반면, 50대는 절반 이하인 46.1%가 주 4일제에 찬성했다.
이런 설문이 무엇을 뜻하는가. 주 4일제의 필요성을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는 건 1차적인 문제다. 이면에 숨어있는 건, 20대와 30대가 50대에 비해 직장생활의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2030 직장인들이 주 4일제에 찬성하고, 휴식을 원하는 현실은 기성세대와 비교하여 회의감과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노동한다는 반증이다.
기성세대 중심으로 돌아가는 업무 프로세스를 구성해놓고, 휴식을 원하는 청년 노동자를 비판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과 다른 게 없다. 전문직을 준비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청년들을 보라. 생존을 위해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치열하게 살지 않는가. 젊으니까 해이한 것이 아니다. 2030 직장인에게는 그만한 동기가 주어지지 않을 뿐이다.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 워크는 독이고 라이프는 약인가?
노동 시간 단축은 이러한 의미를 내포한다. 어차피 직장에서는 제 뜻을 펼칠 수 없으니 차라리 노동 시간이라도 줄여 숨이라도 쉬게 해달라는 것이다. 연극 [워크맨]은 배경은 이런 노동계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한 듯 보인다. 2060년, 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 사람들은 주 3일, 하루에 3시간씩만 일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넘어, 쉼의 비중이 과하게 비대해졌다. 일은 누가 하냐고 되묻는다면, 사람 형태의 AI 로봇이 대신 해준다. 서빙도, 문서 작업도, 집안일도 AI 로봇의 몫이다. 꿈에 그리던 노동해방의 미래. 기대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유를 마음껏 느끼며 살아가게 되었을까.
‘워크맨’은 극의 제목이자 극 중에서 등장하는 정신건강검진 앱이다. 사람들은 핸드폰에 설치된 워크맨을 통해 자신의 정신건강상태를 점검받는다. 워크맨은 이용자의 상태에 걸맞은 해결방법과 약을 추천해준다. 상태가 심할 경우,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잡아주기도 한다. 작중에서 이 앱은 국민앱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워크맨을 사용한다.
그만큼 미래 사람들의 정신건강은 피폐해졌다. 기후위기가 악화되어 매일 같이 비가 내리고, 안락사 희망자가 넘쳐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종종 자살사건이 발생한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불길한 사이렌이 울린다. 시체를 수습하는 AI 로봇이 달려와 자살 현장을 수습하는 장면을 수시로 보여준다.
[워크맨]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고충을 안고 있다. 극은 이 고통의 원인을 단절로 인한 소외로 꼽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연결되어있지만, 단절되었다. 그리고 소외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워크맨 앱에 의존한다. 워크맨 앱은 정신건강기능 외에도, 불특정다수를 잇는 SNS기능도 제공한다. 앱 속에서 이들은 서로의 하루를 응원한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자며, 격려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하루하루 버텨나갈 뿐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갯벌에 빠진 발처럼 점점 가라앉는다. 2060년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현대 노동자의 삶과 소름끼치게 닮아있다. 아무리 단축된 노동 시간을 누려도 우울의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행복은 요원하다.
세상은 바뀌었다. 인권 의식이 향상되었으며, 외국인 이민자의 비중이 점점 늘고, AI가 대부분의 산업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 위기도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된 요소이지만, 이제 와서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진행을 더디게 하는 것이 최선일 정도로 거대한 담론이니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노동과 삶을 대하는 방식이다. 연극 [워크맨]은 아무리 노동 시간을 줄여도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행복의 길은 모두들 알 것이다. 건강한 관계를 맺고, 시기질투 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며 오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이상적인 조언들.
정답을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힘들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위기는 더욱 빠르게 찾아올 것이다. 연극 [워크맨]은 노동 시간을 줄이는 담론과 노동에서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해야한다고 말한다. 의대에 입학해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이 노동 시장에서 소외되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
그러나 현대의 노동 시장은 이러한 특색을 그저 무경력으로 폄하한다. 마치 로봇처럼, 구직자들이 사용 설명서에 적힌 방법대로 움직이길 원한다. 이는 자연스레 인간 소외, 노동 소외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노동 시간을 줄인다 할지라도, 우울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
연일 뉴스에서 떠드는 청년 실업자 120만명. 이들이 모두 직장을 구한다고 노동 소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안락사를 희망하는 현실로 한 걸음 가뿐하게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