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최근 교수님께서 '문학이란 장르는 무엇이냐, 그리고 왜 문학을 하냐, 마지막으로 좋은 문학은 무엇이냐'라고 물으셨다. 교수님의 말을 듣고 문학을 옆에 두는 삶을 원하면서도,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문학' 과 '예술'에 대한 다양한 비평과 의견을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나눌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과 '예술'이란 개념의 재정립을 위해 질문에 대한 답을 옮겨볼까 한다.

 

 

patrick-tomasso-Oaqk7qqNh_c-unsplash.jpg

 

 

불만과 불신, 사랑, 절망, 슬픔 등의 감정을 누구보다 예민하고 냉철하게 받아들이는 이들. 점점 흐릿해져 좌우로 흩어지는 ‘삶’이란 시간을 가슴속에 붙잡아 둔 채 끊임없이 바라보기에 만사가 귀찮고 불편한 이들. 자신의 사유를 지독하게 연구하고 곱씹는 이들. 하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작품을 세상에 남기는 이들. 그것이 바로 예술가이다. 또한 ‘주인공’이란 보편적인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 고유의 예술성과 사유를 표출하는 것이 문학일 것이다.


소설가 김성중은 단편 소설 ‘상속’에서 문학을 박물관의 고대 항아리에 비유했다. 즉, 문학이란 장르는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고대 항아리처럼 영원히 기록되어 남아있을 것이란 말이다. 불사의 존재가 아닌 인간은 언젠가 세상을 뜨지만, 인간의 사유를 담은 문학은 영원히 세상에 남겨진다. 필멸의 시간을 불멸하게 만드는 것. 문학의 또 다른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문학은 나를 세일러문으로 만들어준다. 어릴 적 나는 세일러문을 동경했다. 예쁜 옷을 입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 어릴 때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세일러문의 아름다운 외형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정해진 길을 곧게 걸어가야만 한다는 지루한 현실을 깨닫게 된 시점부터, 그의 외형보단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자유를 동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의 나는 사회가 말하는 ‘보편’에 맞춰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적당한 나이에 취직하여 적당히 남들처럼 살아야 하는. 특히 한국 사회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다’고 정의하기 때문에, 남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더욱더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란 장르는 그렇지 않다. 주인공이 마법 소녀처럼 굴어도, 팬티만 입고 밖에 돌아다녀도, 흙을 파먹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마약을 구하다 호수에 빠져도 그들을 지탄하거나 저해하는 이들이 없다. 행동의 사유를 이해하긴커녕 들어주는 것조차 하지 않는 현실과 다르게 독자들은 소설 속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들의 행동을 해석하고 때로는 응원한다.


나는 소설을 쓸 때 주인공에게 몰입해서 쓰는 편이다. 글을 쓸 때만큼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인물과 나를 동일시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문학작품을 쓸 때 하늘을 누비는 세일러문처럼 자유로움을 느끼곤 한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책장을 넘기며 주인공을 따라 장면 장면을 그려나갈 때마다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바람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다.


사람이 가득 차 시끄러운 만석 버스에서 모두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소리치고 싶은 욕망이 들 때가 있다. 모두가 조용한 도서관에서도 그런 욕망이 들곤 한다. 참 곤란하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 크게 외치고 싶은 사유가 너무나도 많다.


그뿐만 아니라 내 가슴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인물이 입주 중이다. 누군가는 버스 망치로 변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엉뽕으로 변한 친구를 마주해야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처음 보는 연극 속 주인공이 된다. 마음보는 작은데 살고 있는 인물들은 너무 많아 인구 밀집 상태다.


이런 ‘말’들과 ‘인물’들이 자음 ‘이응’을 제외하고 직선으로 이뤄진 자음과 모음 속에서, 자음과 모음이 모인 단어 속에서, 단어가 모인 문장 속에서, 이런 문장이 모인 문학 속에서 곡선으로 이뤄진 이응처럼 유연하게 놀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둥근 형태인 이응처럼 누구나 동의를 표할 수 있는 소설 또한 쓰고 싶다.

 

거창하고 과장된 문장이지만 결국 '예술은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는 의미다. 앞으로 내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지만, 예술을 항상 삶 근처에 두었으면 좋겠는 바람이다.

 

 

 

김예은.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