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브러리 컴퍼니의 뮤지컬 <라이카> 초연은 2025년 3월 14일부터 5월 1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라이카>는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었을 때 그 우주선에 타고 있던 강아지 라이카에 대한 기록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라이카가 우주로 보내진 몇시간 뒤 우주선 속에서 죽었다는 역사적 기록과 달리 라이카는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행성 B612에 도착해 왕자와 장미를 만나게 된다. 인간과 비인간, 지구와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뮤지컬 <라이카>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무인도에 고립된 남한 군인과 북한 군인이 가상의 여신을 통해 소통하는 이야기인 <여신님이 보고계셔>,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차별과 억압에 글로 맞서 싸우는 ‘안나’의 이야기인 <레드북>, 그리고 한국 뮤지컬 어워즈 대상과 극본상에 빛나는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를 창작한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의 조합(이하 ‘한이박’)으로 개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생텍쥐페리의 희곡 <어린왕자>와 ‘라이카’의 교차
최초로 지구의 궤도를 돌았던 라이카는 우주선에서 며칠 뒤 자동적으로 약물 주사로 안락사된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내부 압력과 고열로 죽었음이 밝혀졌다. 뮤지컬 <라이카>는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소련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우주를 향해 떠난 라이카가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행성, B612에 우주의 틈으로 불리는 뱀구멍을 통해 착륙하면서 시작한다. 라이카는 극 속에서 죽지 않고 다른 행성에서 다른 생명체들처럼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존재가 된 라이카는 꼬리도 사라지고, 이족보행을 하는 사실상 ‘인간’의 외형을 하고 사고 능력, 언어 능력을 가지게 된다. 불시착한 라이카를 맞아준 것은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쓴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왕자, 라이카, 그리고 이 작품 속에서 앙상블의 역할을 하는 바오밥들이다.
<라이카>에서는 어린 왕자가 ‘아저씨’, 즉 생텍쥐페리와 실제로 만났었고, 그 당시 어린 아이의 외형을 하고 있던 어린 왕자는 성장해서 20대 후반 정도 나이가 되었다는 극적 설정을 취하고 있다.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양이 들어있는 상자나 바오밥 나무가 등장하고,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 맺는다는 것’ 같은 인용구가 변형되어 언급되기도 한다. 이렇게 원작 <어린 왕자>를 참고하면서, <어린 왕자>의 캐릭터의 ‘뒷이야기’를 그리는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 <어린왕자>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진 장미와 불화하기도 하던 어린 왕자는 재회한 뒤 서로를 이해하고 가끔 거리를 두는 방법을 배운 조금 더 성숙한 관계가 되었으며, 장미는 특유의 예민함이 많이 누그러지고 자기애를 유쾌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존재가 되었다. 또한 소설 속에서는 떠났던 어린 왕자가 이 극 속에서는 지구를 다시 방문했다는 추가적인 이야기를 창작했는데, 이때 어린 왕자를 소년으로 착각하고 비행기에 태워준 독일 공군 리페르트가 자신의 문학적 롤모델이었던 생텍쥐페리가 탄 연합군의 비행기를 격추시킨 비극적인 우연은 실제 생텍쥐페리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추정과 증언을 반영한 것이다.
<라이카>의 결말, 그리고 인간을 비판함으로써 다시 소환되는 인간중심주의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의 메시지는 세상에 물들어 버린 ‘어른’과 순수한 시선을 가진 ‘아이’의 대비를 통해 물질 문명의 이기에 빠져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 <어린왕자>에서 ‘어른’의 모습은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확장된다. 1막 후반부에서 라이카는 자신이 타고 있던 우주선에 귀환 장치가 없었고, 자신은 죽을 예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훈련시키며 애착을 쌓은 연구원 캐롤라인 역시 같이 도망갈 고민까지 했지만 결국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라이카를 더욱 괴롭게 만든다. 지구에 다시 갔을 때 ‘아저씨’, 즉 생텍쥐페리의 죽음을 본 후 환멸에 빠진 어린 왕자는 소행성의 궤도를 약간 바꿔 지구를 멸망시킬 계획을 짜고 있었고, 왕자는 충격을 받은 라이카를 설득해 같이 지구를 소멸시키려고 한다.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지구 위 다른 존재들의 삶을 두고 고민하던 라이카는 장미와, 캐롤라인을 닮은 로봇 로케보트와 대화한 뒤 소행성 충돌이 예정된 당일 날 왕자를 설득해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2008년도의 지구로 돌아간 라이카는 자신의 동상 앞에서 노년이 된 캐롤라인의 모습을 보고 왕자와 함께 다시 행성으로 돌아온다. 그 이후, 라이카는 자신 이후로 우주에 보내지는 다른 동물들을 왕자, 장미, 바오밥으로 이루어진 B612 행성의 구성원들과 함께 받아주며 이 이야기는 끝난다.
<라이카>는 전반적인 서사 속에서 근대 이후로 세계를 잠식해 온 ‘도구적 합리성’ 혹은 무비판적인 ‘이성’의 추구가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고, 이러한 무분별한 합리성의 추구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라이카 같은 비인간 동물들과 생태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당시 소련의 체제 선전을 위해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 전쟁 당시 자신의 우상이 그 속에 있었음에도 알지 못하고 적국의 비행기를 격추시킨 리페르트의 이야기는 국가 체제와 지배 권력이 어떻게 ‘개인’을 말살하는지에 대한 고전적인 비판이론의 주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 비판’은 결과적으로 인간성에 대한 낙관 대 인간성에 대한 비관이라는 틀을 반복하면서 ‘라이카’라는 현대의 인간들에게서 결여된 성찰성과 선의, 관용이라는 휴머니즘의 정신을 체화한 비인간 존재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가치를 예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근대적 인본주의를 답습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는 같은 창작진인 <여신님이 보고계셔>에서 전쟁과 이념 갈등을 비판하기 위해 폭력적인 전쟁과 ‘문명’에 대한 대안적 공간으로 ‘순수하고’, ‘폭력이 없을 것’으로 상상되는 ‘무인도’, 즉 자연을 부각하고, 남한군과 북한군이 화합하는 과정에서 군인들의 어머니도, 애인도, 누나로도 상상될 수 있는 ‘여신’의 몸을 경유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문명 대 자연, 남성 대 여성이라는 근대적 이항대립을 전형적으로 반복하며 결국 여성에 대한 ‘숭배로서의 대상화’가 주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와 유사하다*.
현재 문학계에서의 SF 담론이나 새로운 비판이론의 과제들은 도나 헤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처럼 근대적 폭력성의 아이러니한 결과와 분열되는 정체성을 논할 정도로 복잡해졌고, 전복의 방법론은 단순히 ‘주체’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발전된 장르에 대한 담론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업예술 작품의 장르 및 소재 재현에 대한 전형적인 시차가 그대로 느껴진다. 또한 라이카가 극 연출 상 배우가 이족보행을 하고, 다른 캐릭터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극적 허용’이라는 장치를 통해 충분히 가능한데, 비인간 형상인 ‘동물’에서 왜 ‘존재’라는 새로운 ‘변신’의 과정이 요구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존재’가 인간과 유사하다는 언급이 왜 등장했는지 의문스럽다. 이러한 ‘변신’ 모티프는 잘 활용하면 카프카의 <변신>처럼 좋은 소재이지만, 이미 극적 허용과 의인화라는 장치들이 존재하는 극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동물에서 ‘존재’로의 변화가 굳이 필요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라이카>의 이러한 한계는 SF 작가 김초엽이 『책과 우연들』에 쓴 「’결국은 인간 이야기’라는 말」(열림원, 2022)에서 SF 장르에서 비인간 존재들의 등장에 대해 성찰한 지점들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가 만나게 된 세계대전과 스푸트니크 호가 발사된 미소 냉전 시기는 군사력을 위한 과학 기술 개발이나 도구적 이성의 과잉 상태로 인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러한 두 시기에 벌어진 사건을 ‘인간의 폭력성’이라는 키워드로 단순히 묶어버리면 결과적으로 전세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위계적인 체제의 문제와, 전쟁 전후의 역사성을 누락하게 된다.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같은 ‘연합국’이었던 소련은 같이 이탈리아, 독일 등 추축국에 있던 파시즘 정부와 싸웠지만 종전 후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념 대립으로 인해 미국을 필두로 한 자본주의 국가와 갈라섰다. 스푸트니크 호의 발사는 양국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제국의 영토 확장 욕망과 식민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세계 대전 시기와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 물론 냉전 시기의 군비경쟁은 2차 세계대전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근대 초기에 형성된 질서에 영향을 받고 있고 소련이 해체된 포스트식민주의 시대에 자신의 특성마저 바꾸며 후기 근대를 버텨낸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를 논하지 않는다면 인간(성) 비판은 피상적인 것으로 남게 된다.
* 물론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여신’을 맡은 여성 배우가 자신의 폭 넓은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에 마니아층의 인기를 얻는 것이 배우에게 중요한 중소극장 뮤지컬계에서 ‘여신’이라는 배역은 큰 기회가 될 수 있고, <여신님이 보고계셔>라는 작품의 젠더/섹슈얼리티 차원에서의 한계는 ‘글 쓰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같은 창작진의 작품 <레드북>에서 극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극의 완성도를 보완하는 외적인 요소와 형식
뮤지컬 <라이카>는 전반적으로 최근 한국 공연계에서 창작 뮤지컬이 완성도의 차원에서 약세를 보여주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넘버와 무대 연출 같은 외적인 형식성과 일관성있는 이야기, 이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삼박자가 맞아 중소극장 창작 뮤지컬에 비해 굉장히 이례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뮤지컬 <라이카>는 서정적인 넘버와 빠르고 신나는 템포의 넘버가 교차하며 중독성 있는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고, 무대 장치와 우주를 표현하는 영상 화면 연출 역시 화려하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활용하여 중소극장에서의 무대 연출과 대극장에서의 무대 연출의 이점만을 차용해 아름다운 무대를 구현해냈다. 이는 투명한 천과 인형 고래 같은 인상적인 소품과 바다와 사막을 표현하는 무대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주는 장점으로 극의 서사적 결핍을 덮어버린 같은 제작사의 작품 <부치하난>이 보여주었던 무대 기술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들 역시 주인공 ‘라이카’ 역을 맡은 김환희는 훌륭한 노래 실력과 귀여운 모습에서 절망하고 고민하는 모습까지 다사다난한 라이카의 성장을 표현하는 연기력으로 공연을 이끌었고, 같은 창작진의 작품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번째 대역 배우>의 주연 네불라 역으로 남자 주연상을 수상한 윤나무 역시 왕자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는 연기력으로 극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드라큘라>, <이프덴>, <위키드> 같은 대극장 작품부터 <사의찬미>, <호프> 같은 중소극장 작품까지 넓은 폭의 작품에서 연기해 온 진태화는 안정적인 노래 실력을 보여주었고, <하데스타운>의 ‘운명의 세 여신’ 중 하나, <레드북>의 도로시 역으로 활약한 한보라는 캐롤라인과 캐롤라인을 닮은 로케보트를 연기하는 1인 2역으로 극에서 감초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앙상블 역시 여러 작품을 경험한 베테랑들로 구성되어 있어, 넘버부터 연기까지 작품 전체적인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