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빠르게 지나 거짓말처럼 벌써 4월을 바라보고 있다. 3월, 관념적 봄이 지나고 있지만 며칠 전 내린 눈과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서 아직 2025년 상반기의 초입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지난 4개월간, 에디터로서 매주 분야를 넘나들며 문화예술에 관한 오피니언을 써왔다. 다만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의 칼럼니스트로서 기고하는 첫 에세이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 그렇기에 이번 글에서는 좀 더 나 자신의 생각을 담뿍 담아 보고자 한다.
그간 각종 예술과 문화에 대한 오피니언을 쓰며 현재의 유행(트렌드)과 나의 취향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어떤 영화와 전시가 현재 가장 인기있는가? 요즘 뜨는 음악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뭐지? 나는 어떤 영화와 전시를 좋아하는가?
우리는 유행과 함께 살아간다. 유행을 만들어 가든 따르든 거부하든 우리 모두는 유행의 파도가 영원히 밀려오는 바다에 표류하고 있다. 요즘이 ‘개성의 시대’가 된 지는 꽤 되었다. 하지만 개성도 유행이 된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우직한 취향을 고수하는 것이 유행, 진정한 트렌드라는 아이러니. 이 틈바구니에서 유행을 ‘따르는’ 사람은 애매한 위치를 점해 애매한 시선을 받게 된다. 사실 당사자성 가득한 이야기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아직도 나만의 개성이라는 것을 확언할 만큼의 취향을 확립하지 못했다. 여전히 나의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만 한다. 나는 파도풀의 트렌드 세터와 힙스터들 사이, 그저 유행을 ‘찍먹’하는 애매한 어중이떠중이이다.
문화예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사람이 자기만의 취향, 확고한 호/불호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우스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은 누구보다 개성이 강한 집단이지 않은가. 나는 미술계에 몸담기를 꿈꾸지만, 아직도 “무슨 작품 좋아하세요?”와 같은 질문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그저 ‘고흐와 르누아르… 혹 내가 마그리트를 좋아했던가…?’ 하고 머릿속을 조금 헤집어 볼 뿐. 앞으로도 쉽사리, 혹은 영원히 확답하지 못할 질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이러한 물음을 던졌을 때, 턱턱 자신의 확고한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사람들을 선망하기도 했다. 나에겐 이렇다할 취향이란 게 없었으니. 나는 올해 화제라는 영화들을 보고, 지난 해의 유행 영화를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감탄하고 즐거워한다. 유행이라는 A가수의 노래는 처음 들을 땐 별로 였지만 듣다 보니 아침에 듣기 활기차고 좋다. 이토록 예술적이지 않은, 모호한 삶.
어느 날엔, 무엇 하나 나의 마음에 쏙 드는, 그런 단 하나의 것을 찾아 헤매기에 우주는 너무 넓고 예술은 너무 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이 파도 속에서 유행을 떠나 확고한 취향을 가지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닌가 하는 되물음 이었다. 나는 어째서 유행을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왔는가? 유행을 향유한다는 것, 우리는 이 의미를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었다.
여태 유행을 따르는 사람은 이미 증명된 문화예술을 수동적으로 향유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유행을 따르는 사람은 (사실상 트렌드라는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는) 유행을 만드는 사람과 따르지 않는 사람, 두 집단이 아니기에 트렌드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른 관점으로 보기를 제시하고자 한다.
‘동시대 contemporary’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의미한다. ‘현대 modern’와 유사한 개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특히 미술에서 ‘동시대’는 완전한 현재이다. 미술사에서 현대미술은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미술을 발단으로 20세기 후반 1970년대 이전 까지의 미술을 의미하고, 그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모든 미술은 동시대미술로 분류된다. 나는 유행을 동시대성으로 재정의하고 싶다. 유행을 향유하는 것은 ‘동시대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은 주변 환경과 삶의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동시대에는 어떤 색깔, 어떤 화면이 사랑받을까? 동시대의 어떤 것들이 아름답거나 슬픈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것들에 주목해야 하는가? 동시대의 미디어를 보고 음악을 듣고 미술을 행하며 유행을 향유하는 나는 동시대의 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자연히 흡수하게 된다. 동시대의 흐름에 주목하는 ‘유행 향유자’는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사실 누구보다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닌 주도적인 사람들이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취향에 관한 스스로의 되물음에 답변이 되어 주었다. 나는 취향이 없는 게 아니라, 동시대의 것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불쑥 “무슨 작품 좋아하세요?” 하고 물을 때, 나는 항상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답하곤 했다. “요즘은 수집과 아카이브 작업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은 환경문제에 관해 다루는 작품을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언제나 같은 답변을 내린 적은 없다. 나는 정체되지 않은 것, 살아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동시대의 문화예술을 충실히 향유한다. 살아있는 것이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글은 각자가 트렌드를 만들어 나가길 추구하는 이 시대, 극소수가 아닌 극다수가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시대에 파도를 능수능란하게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 이리로 불어오는 파도를 타야 하는 법, 때로는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재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작은 권유이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동향을 살피는 어중이떠중이가 파도에 앞서 새로운 파도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