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어수룩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가 있다


 

텍스트에 익숙한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감상의 방법이 서로 완전히 반대되기 때문이었다. 소설이나 시처럼 글자로 이루어진 것들은 묵직한 분위기가 있어 좋아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거움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바쁜 하루 동안에 잠시 시간을 내어 읽기에는 쏟아야 할 집중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다른 방해 요인을 모두 떨치고 눈을 바짝 떠서 한 줄로 된 글자를 읽어 나가는 과정은 이따금 어렵게 느껴졌고, 얼마간 읽다가 책을 덮은 시점에는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오히려 축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감상 자체에 독자의 참여를 요구하는 방식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서도.

 

한편으로 그림이나 조각은 그렇지 않아 좋았다. 그림 감상은 내게 인식되는 만큼만 이해해도 그만이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나 페이지를 뒤적거리거나, 앞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결말에 이르러 낭패를 볼 일도 없었다. 이해를 하지 못해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도,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만 느끼고도 감상은 충분했다. 어려운 그림은 그냥 지나쳐버리면 안녕이었고. 그림 앞에서 더욱 활달해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아무런 규칙이나 사전 지식도 없이 전시회를 통과할 수 있을 때, “멋지다”와 같은 감탄사만 주구장창 뱉어도 그림 보는 데 문제가 없을 때면, ‘예술 문외한’으로서 아무런 규칙이나 지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 영원한 예술 세계로부터의 배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무도회 날 멋진 드레스를 차려입고 근사한 연회장을 쏘다니는 것만으로 황홀해 있다가, 별안간 모든 조명과 관심이 모이는 사교계 무리를 바라보게 된 순간처럼 말이다. 짧은 순간에도 복잡한 언어적 장치와 온갖 사교계 규칙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그들 무리를 보면서,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것이다.

 

이런 기분을 예술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고 있었다. ‘저 작품으로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고, 저기에는 어떤 규칙이 숨어있는 거지? 그림에 대해 대체 나는 어디서부터 모르는 것이고, 무엇을 알고 있는 거지? 왜 늘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보고, 무언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찝찝한 기분을 느끼는 거지?’ 사교계의 규칙을 몰라 구석에 멍하니 서 있는 누군가처럼, 나도 내게 허락된 작은 공간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기분이었다.

 

   

책표지.jpg

   

 

예술 문외한을 위해 만들어진 안경 하나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자격지심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표지에 적힌 문구 하나가 내게 직격타로 날아왔던 것이다.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저 책을 읽기만 하면, 작품을 볼 때 무슨 생각을 ‘해야 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어, ‘전문적인’ 예술의 세계로 입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무척이나 설레었다. <감상의 심리학>, 제목마저도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기운이 가득했다.

 

잠시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앞서, 책에 대한 개괄이 필요할 것 같다. <감상의 심리학>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예술에 관한 교양서로, 무엇보다 예술심리학을 주제로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술심리학은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예술 경험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학문’을 말한다. 이때 그들의 관심사는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경험하는 마음과 그 과정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측정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심리학의 분야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에 눈과 뇌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작품 앞에서 감상하는 시간은 어떠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지, 심지어는 감상 시간의 장단長短이 작품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까지 말이다! 예술심리학은 이러한 의문을 파헤치기 위해 실험법, 관찰법, 뇌 활동 측정 등 다양한 수단을 거쳐 예술 경험에 대한 객관적인 해설을 내어놓는다.

 

그러던 중 책은 별안간 나의 기대와 전혀 상반되는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예술은 인간의 삶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관점과 이론이 필요하듯, 어느 한 가지 관점만으로 예술을 이해할 수는 없다. 오히려 풍성한 관점들이 예술에 대한 이해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책 속의 감상 방법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므로 나의 방법을 벗어던질 필요는 없다고 책은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책을 대하려는 자세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다. 마치 원래 쓰던 안경을 대신해 기분 전환 겸 새로운 안경을 써보는 것처럼, 나의 감상 방식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방식을 하나 더 배우려는 마음이어야 했다. ‘정답을 찾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고, 드디어 책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두 안경의 충돌


 

책은 그 두께만큼이나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감상 시 눈이 하는 기능을 시작으로, 왜곡된 그림에 숨겨진 비밀과 화가들의 단서까지. 보통의 전시회나 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었다. 그렇게 느낀 것들을 메모지에 적어 귀퉁이에 적어두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메모가 있었다.  

 

*    *    *

 

수많은 그림 중 가장 난해한 그림을 고르라면 현실과 다른 모양새를 한 그림이었다. 예컨대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이라던가, 투박한 표현이 드러나는 앙리 마티스의 그림말이다. 원근법을 어기거나 예상을 벗어난 색감의 그림도 그러하였다. 이에 반대로 내가 탄성을 질렀던 그림들은 원근법과 색깔 규칙을 철저히 지킨 것이었다. 그리고 때때로 이렇게 생각하고는 했다. “화가라면 그림을 ‘잘’ 그리는 게 당연한데. 왜 못나고 투박한 그림을 그리는 거지?”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관련한 주제가 다루어진다. 화가들의 그림 앞에서 내가 겪는 혼란은 ‘회화적 태도’와 ‘감상적 태도’라는 두 개념으로 설명되었다. 나의 기대와 달리, 화가들은 ‘아름답고 멋진’ 작품을 만들려는 의도로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자신의 의도를 잘 표현하고, 그것을 감상자가 잘 인지하게끔 하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현실 세계의 모습은 거침없이 왜곡을 거치게 된다. 심지어 기꺼이 물리적 규칙과 시각적 규칙이 해체되기도 한다! 화가들이 지닌 이러한 태도를 ‘회화적 태도’라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감상자에게는 ‘감상적 태도’가 요구된다. 이는 화가들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음을 고려하여, 실세계의 시각적 관점이 아닌 특별한 관점으로 그림을 감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현실 세계에 당연히 존재하는 원근법이나 색깔 규칙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규칙이 완벽히 적용된 그림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그림을 훑었을 때 거슬리고 불편한 지점에 집중해야 작품의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불편하게 여겼던 지점이 오히려 화가가 의도적으로 삽입한 신호였다니! 눈에 거슬리고 이해할 수 없다며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이 오히려 예술과의 거리를 넓히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예술은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의 마음을 담기 위해 기꺼이 불편하고 성가신 것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현실 세계의 규칙을 거부하는 것도 너그러이 허용되는 세계인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합법적 일탈’이 정당화되는 예술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이처럼 <감상의 심리학>은 자연스레 갖추고 있던 ‘현실 세계의 시각적 관점’을 지적하고, 화가들의 일탈에 숨겨진 비밀을 보여주었다. 수십 개의 점이 찍혀있을 뿐인, 김환기 화가의 <봄의 소리>에서 들리는 리듬감을, 조각하다 만 것 같은 미켈란젤로의 ‘노예 연작’이 갇혀있는 세계를. 책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갔고, 그제야 나와 예술 사이의 거리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안경을 쓰고, 예술을 보러 가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저자는 이런 이야기로 문을 닫는다. '감상에 대한 특별한 학습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의 각 장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실증적인 방법들을 제안했다. ...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시대이지만 결코 감상의 즐거움을 대신할 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감상 공부를 시작할 것을 권한다.'

 

그렇다. 감상에는 얼마간의 공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필요한 사전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는 실습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글의 도입 부분에서 이야기했듯, 이 책은 예술심리학을 내용으로 담고 있으나 반드시 그 방법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존의 감상 방법에 새로운 방식을 더할 것을 권했다. 다음 실습 때, 나는 기존의 방식과 새로운 것을 모두 지니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잔잔한 설렘을 느꼈다. ‘더욱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그림은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라는 기대가 차올랐다. 기존의 문외한이던 시점보다는 한 단계 성장한 나는, 다음 전시회의 마지막에 이르러 또 어떤 마음을 배우게 될까.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