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위 사진 속 개구리를 본 적이 있는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용자라면 아마 한 번쯤은 이 개구리 캐릭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우리가 즐겨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 ‘페페’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페페는 만화가 멧 퓨리가 그린 만화 <보이즈 클럽>(Boys Club)의 캐릭터 중 하나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악용된 캐릭터이다. 만화 속 페페의 이미지가 우연히 4chan(포챈)이라는 한 커뮤니티에서 쓰이기 시작하면서 페페는 점차 밈으로 발전해 나갔다.
페페가 혐오 밈으로 전락하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어느 날 4chan의 한 유저가 2014년 미국 샌타바버라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인 엘리엇 로저의 사진과 영상에 총을 든 페페를 합성하며 "찌질한 남자들이여, 부모님의 지하실에서 나와 사람들을 죽이자!"라는 문구를 덧붙여 게시물을 업로드한 것이다. 평소 사회체제에 대한 강한 불만을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풀던 4chan의 유저들은 해당 게시물에 열광했고, 그들은 샌타바버라 총기 난사 사건을 비롯한 온갖 비극적인 사건과 사회 문제를 조롱하는 데 페페를 사용했다. 이러한 페페 밈은 4chan을 넘어 인스타그램, 틱톡처럼 흔히 주류 인터넷 커뮤니티라 불리우는 곳까지 퍼져나갔다.
4chan 커뮤니티 유저들은 주류가 자신들의 소유라 주장하는 문화를 사용하는 것에 크게 반발했다. 그 반발심은 점차 커졌고 이는 결국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탄생 초기에는 별다른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던 페페, 하지만 4chan이라는 비주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의해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고, 페페는 이내 누군가를 혐오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로 이 점이 문제다. 특정 캐릭터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이전과 다른 개념을 부여 받고 밈화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 밈이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방하는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4chan의 유저들은 소수자를 향한 자신의 혐오감을 가시화하는 수단으로 페페를 선택했다. 그들은 페페를 앞세워 여성·유대인·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페페는 자연스레 대중들로부터 소수자를 혐오하는 아이콘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트럼프가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페페 이미지를 SNS에 업로드하였고 페페는 트럼프 지지자, 즉 극우주의자들의 정치적인 아이콘으로 그 존재의 목적성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자신이 그린 만화 캐릭터가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비방하는 일명 ‘혐오 밈’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창작자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와 같은 사건의 대처법을 그 누구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언론은 원작자가 페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식의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냈을 뿐 어느 누구도 원작자 멧 퓨리의 입장을 고려하거나 그의 말을 들어보려 노력하지 않았다. 나의 창작물이 극우 백인우월주의자 상징물이자 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매개체가 된 것만큼 절망적인 상황은 없다. 일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자 멧 퓨리는 결국 스스로 페페의 장례식을 알리는 에피소드를 그려 세상에 공개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나서서 막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다큐멘터리 안에서 멧 퓨리는처음 4chan에서 페페가 등장했을 때 왜 진작 막지 못했는지 여러 번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필자인 나 역시 같은 창작자로서 멧 퓨리가 본인을 자책하는 말을 할 때마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는 페페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직접 긍정적인 페페 그리기 해시태그 챌린지인 #savepepe를 주도했다. 하지만 이미 약 1억 6천 개가 넘는 페페 관련 부정적인 밈이 온라인에 퍼져 있었고 이렇게 공유된 밈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 영혼이 깎여나가는 것 같은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 창작 욕구는 깎여나가죠."
각고의 노력에도 혐오 밈이 된 페페를 지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멧 퓨리는 절망한다. 그저 그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자괴감은 실로 엄청나다. 이후 다큐멘터리에는 페페를 악용한 이를 고소한 멧 퓨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는 소송 이후 매일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페페를 사용하는 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을 사회 속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니트족이라고 칭했고, 이는 현재 우리나라 일부 청년들의 모습과도 닮아있었다. ‘슬픈 개구리’로 일컬어지는 페페를 왜 그들이 사용했는지 살펴보면 사회의 아픈 단면이 드러난다. 총기 난사를 일으킨 사람을 추종하고 이것이 특정 커뮤니티에서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모습을 보며 작년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었던 흉기 난동 사건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는 큰 의미를 내포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게 특징이라 생각했던 인터넷 밈도 결국 젊은 세대의 사회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특정 캐릭터가 누군가를 혐오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것은 해당 캐릭터를 접하는 모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 희망적이게도 페페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는 여지를 보여준 사례가 존재한다. 바로 페페가 홍콩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청년 운동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멧 퓨리는 모든 게 변할 것이며, 누구나 다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여전히 페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믿음은 결국 그가 페페를 악용하는 이들을 상대로 법정 싸움에서 승소를 얻어낸 결과와도 맞닿아 있다.
페페 원작자의 관점에서 풀어나간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의 큰 강점이다. 그동안 페페 현상이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확장됐는지에 대해 분석한 사람은 몇 있어도 페페 원작자의 마음을 헤아려준 이는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페페는 지금껏 자신과 함께했던 친구들과 함께 먼 곳의 노을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직접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노을을 향해 헤엄쳐 나아간다. 인터넷상에서 혐오 밈으로 불리던 페페가 민주주의와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되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자, 이제 당신의 눈에 페페는 어떤 캐릭터로 보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