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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취미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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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저 여분의 행복을 찾기 위해 취미활동을 한다. 필수나 의무가 아닌 오직 나 혼자의 온전한 선택으로 즐거움을 손에 넣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런 여가활동마저도 일정량의 노력과 비용, 시간을 요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무언가를 ‘즐긴다’는 경지에 이르려면 그 방법을 충분히 습득해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흔히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걸 봐도, 즐거움은 노력보다 한 단계 나아간 상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수많은 취미생활 중에서도 연습과 훈련의 과정이 당연시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그 필요성이 그다지 절실해 보이지 않는 영역도 있다. 먼저 운동이나 악기 연주처럼 몸으로 익히는 취미생활의 경우라면 즐기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술 감상과도 같은 예술적 취미라면, 그런 노력의 중요성이 비교적 두드러지지 않는 영역 같다.

 

하지만 지각심리학자 오성주 교수의 <감상의 심리학(북하우스, 2025)>는 그 생각을 바로잡으며, 예술 경험을 다루는 학문 분야인 예술심리학의 여러 학설과 이론을 도구 삼아 미학적 내지는 미술사적 접근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미술 감상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감상의 매뉴얼이 없는 작품들 앞에서 갈 곳을 잃었던 이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책으로, 이번 리뷰에서는 내게 인상적이었던 몇 장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하려고 한다.

 

 

 

1장. 눈과 감상



 

“그림 세계에서 색은 형태와 동등한 역할을 하거나 특정한 형태의 구속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네모난 검정색’, ‘바나나 노란색’, ‘사과 빨간색’이 있을 수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이 점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 되어야만 한다.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의 <파란 말 I>을 보자. 이 작품의 전면에 있는 말은 제목처럼 파란색 말이다. 파란색 말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작가는 말의 형태를 빌어 파란색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말 형태의 파란색’을 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p.52


“예를 들어 박수근의 그림을 보면서, 화강암 같은 질감 속에서 형태를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반대로 ‘형태 같은 질감’으로 생각을 바꿔보라. 혹시 박수근은 질감을 표현하려고 형태를 사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서 감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질감이 편안하게 대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pp.55-56

 

 

회화를 감상한다는 전제 하에서 적용할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이지만 놓치기 쉬운 방법이다. 미술 감상의 마인드셋은 우리가 현실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실제 사물을 마주하거나 특정 상황에 몸담을 때는 눈앞의 시각정보를 기준으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예술 감상의 목적은 순전한 유희와 기쁨에 있다. 그렇기에 일상과는 조름 다른 능동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보지 않는 것, 실제 삶에서 사용했던 시감각의 모드를 잠깐 전환하는 것이다.


두 가지 사례들도 그림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 간의 위계를 마음껏 바꾸어 보는 시도다. 두 사례 모두, 우리가 사실 판단에서 주의를 빼앗기기 쉬운 형태라는 요소의 동일선상에 색깔과 질감이라는 요소를 두어 그림을 살펴보고 있다. 그림 속 형상의 형태에 매여 작품의 주제를 섣부르게 판단하기보다는, 구상적 요소 각각이 갖춘 다양한 면모를 두루 관찰하는 열린 태도라고 할 수 있다.

 

 


8장. 인물화와 그로테스크


  

 

“반면, 모딜리아니와 수틴의 여성은 기존의 신체적 매력과는 거리가 멀다. 모딜리아니의 여성은 좁은 어깨와 비정상적으로 긴 목과 얼굴을 지녔으며, 수틴의 여성은 해골 같은 얼굴로 기괴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이들 작품은 예술적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평가될 때, 외형적 매력 이상으로 가치 있는 미학적, 감정적 깊이를 전달한다. 이는 예술적 아름다움이 외모의 매력을 넘어 표현과 해석의 영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p.220

 

“인물을 전통적인 미의 기준에서 해방시키려는 노력은 색을 형태에서 해방시키려는 야수파 화가들의 노력과 비슷하다. 이를 통해 화가들은 더 큰 자유를 얻었고,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감정, 무의식, 역동성, 욕구, 갈등 등 다양한 주제들이 표현될 수 있었다. 그 대신 그림 속의 인물들은 왜곡되고 변형되어 외적인 아름다움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pp.222


“베이컨의 다른 그림 <자화상Self-Portrait>을 보자. 이번에는 남자의 얼굴이 뭉개지고 뒤틀려 있다. 이 그림 역시 즉각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왜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했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르면서 베이컨의 삶을 찾아보게 된다. 그의 삶이 성, 폭력, 마약, 음주, 동성애 탄압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 그림에서 느껴졌던 혐오감이 서서히 연민의 정으로 바뀐다.” pp.245-246

 

 

8장은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인물화의 사례를 통해 이들이 예술적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배경을 살핀다. 발췌한 문단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보기 좋은 아름다움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들에게는 외형적 매력 그 이상의 깊이가 있다는 고찰이다. 화가의 감정이 그저 대중적 선호도에 치우친다면, 그 고민의 깊이에 비례해 어쩔 수 없이 작품의 가치 또한 얄팍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불쾌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각성이나 긴장이 단순한 미적 쾌와는 또 다른 방향의 쾌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 부정적인 그림이 적당한 정도로 표현될 때는 도리어 감상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한 실험과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들어 설명한다.

 

 


11장. 이상한 그림과 기대 오류


  

 

“기대 오류를 일으키는 대상을 마주할 때, 마음속에서 몇 가지 일이 일어난다. 당황, 놀라움, 혼란스러움, 불쾌함, 각성 증가, 호기심 유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감정적 흥분과 인지적 혼란, 그리고 호기심은 대상을 다시 보게 하는 노력을 불러일으키고, 감상자는 운이 좋으면 통찰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는 첫눈에 알아보기 쉬운 그림들이 가지기 어려운 효과들이다.


심리학자들은 현대 미술 작가들이 이러한 효과를 얻으려고 일부러 음모를 꾸민다고 꼬집는다. 그 음모란 감상자들이 작가의 작품을 쉽게 해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실생활에서는 시각 자료가 부족하면 가까이 가서 확인하면 되지만, 미술 작품, 특히 난해한 그림에서는 물리적으로 다가가서 추가적인 정보를 얻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작품을 해석하는 일은 오롯이 감상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p.316

 

 

이번 장에서는 많은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우리가 난해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그에 앞서 설명하는 기대 오류 개념은, 어떠한 예측이 완전히 틀릴 가능성과 완전히 맞을 가능성 사이에서 완전한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뇌는 이 오류가 0이 될 때까지 오류를 수정하려고 하고,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우리가 겪는 혼란 또한 그중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이 너무 쉽게 해석되지 않도록 설계하고, 감상자의 예상을 깨는 요소를 작품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예상을 깨는 작품이 감상자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여러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흔하고 익숙한 대상에는 지루함을 느끼는 반면, 새로운 대상에 호기심을 갖는다. 또한 불확정적이거나 애매한 대상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에 들어 기대를 깨는 작품이 늘어난 것은 작가와 감상자 양쪽의 욕구가 맞물린 결과일 수 있다.” p.313


 

인상적인 것은, 그 혼란을 해결하려는 여정 안에서도 감상자는 긍정적 반응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들의 ‘음모’에 걸려들었음에도, 그 수수께끼에 맞대응하는 감상의 방식이 좋은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고전 미술과는 또 다르게, 현대미술 장르에서는 그 맞대응이야말로 작품의 존재 이유를 완성한다. 더불어 저자는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들은 당대 사회에 전례 없는 충격을 선사했던 이들이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쉼없이 도발과 실험이 거듭되는 동시대 미술계의 현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마주쳤던 작품들 중, 아주 먼 미래에 미술사에 기록될 누군가가 스쳐지나갔는지는 모를 일이다.

 

 

 

미술 감상도 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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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Unsplash, Xavier von Erlach

 

 

마이크 파슨스의 그림 감상 발달의 5단계

 

1단계: 편애 - 미취학 아동들의 특징으로, 그림 감상이 자기중심적임. 그림에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나 특징이 있으면 그 그림을 선호함

 

2단계: 아름다움과 사실성 - 초등학생들에 해당. 그림 내용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는 얼마나 사실적인지를 기준으로 평가함

 

3단계: 표현력 -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해당. 그림이  얼마나 주제를 잘 표현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함

 

4단계: 스타일과 형식 - 그림 스타일과 형식에 관심을 갖고 평가하는 단계로, 회화의 문체적, 역사적 관계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표현하기도 함

 

5단계: 자율적 판단 - 작품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감상자 스스로의 기준을 중심으로 판단할 줄 아는 단계. 미술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내림

 

 

“파슨스는 대체로 1, 2, 3단계의 발달은 나이와 함께 병행하여 발달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머지 두 단계의 발달은 예술 작품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림 감상 발달의 5단계는 단계가 높아질수록 더 훌륭하고 더 좋은 것이 아니다. 어떤 그림이 얼마나 훌륭한 작품인지 판단하는 것은 철저히 감상자의 몫이다. 다만 발달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더 깊은 수준의 노력과 경험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파슨스의 이론을 마치 그림 감상 단계마다 우열이 있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그림 감상 경험이 많아짐에 따라 그림에 휘둘리지 않고 그림을 주체적으로 감상하는 능력이 증가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p. 43


 

다시 1장으로 돌아가보면, 이 책으로 훈련해볼 수 있는 그 일련의 과정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다시금 살펴볼 수 있다. 위 내용은 저자가 1장에서 소개한 미국의 심리학자 마이크 파슨스의 그림 감상 발달의 5단계를 요약하고, 저자가 덧붙인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이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감상의 방식에 우열은 없지만 더 숙달된 상태는 구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진보는 다름아닌 풍부한 경험이 완성한다. 위 구절이 말하는 것, 나아가 이 책이 내게 전하는 바는 이렇다. “미술 감상도 연습할 수 있다. 예술적 활동도 여타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훈련으로 인한 성장이 가능하다.” 바로 예술 감상의 취미란 예술적 성향이나 탁월한 몰입도 등을 타고난 이들만의 특권이 아니라는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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