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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공연(구체적으로는 뮤지컬) 기획과 공연 연출 사이에서 무엇을 나의 직업으로 삼으며 살아갈지를 계속 고민하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두 업종에 몸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직은 감상자로서 위치하고 있지만, 나는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을 다니면서 올해 여름부터 뮤지컬 프로듀싱 아카데미를 병행할 생각이고, 이후 공연 업계로 이직하는 것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비전공자로서 관련이 적은 업계에 일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 책은 나에게 더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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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공연기획자란 결국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 혹은 바람을 실현하는 직업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즉,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나의 이상을 '내 마음대로'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선망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어느덧 2년이 다되어갈수록, 공연 업계를 비롯한 사람의 모든 일이라는 게 말 그대로 내 마음대로 그리 쉽게 독단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일이란 없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도 안되고 또한 그럴 수도 없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직업 중에서도 아마 공연기획자는, 저자의 말마따나 공연 창작에 관련된 모든 직종의 사람들과 공연의 다양하면서도 모든 부분에 대해 입체적으로 토론하면서 함께 결론을 내려야 하는 직업일 것이다.

 

내가 공연기획자와 공연연출가 중 어느 방향으로 진로를 결정하여 나의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 고민하던 도중, 두 직업에 대한 저자의 비유가 참으로 적확하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공연기획자와 공연연출가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나는 종종 레스토랑 사장과 셰프의 관계를 예로 들곤 한다." (54쪽)

 

"즉, 레스토랑의 사장은 당연히 셰프의 음식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고 이야기했고, 셰프 역시 사장이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57쪽)

 

 

이 부분을 읽고 난 후, 아직 본격적으로 공연 업계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이라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막연한 바람으로는 나는 공연 기획과 연출 두 가지 모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레스토랑 사장(공연기획자)은 당연히 셰프(공연연출가)의 음식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라고 말하는, 아는 형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 두 직업 사이의 관계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연 기획자인 저자는 공연 기획자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가 쓴 글과 작곡가가 쓴 음악을 작품으로 제작하여 관객과 만나게 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또는 뒤에서 어시스트 해야 하는 공연기획자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형님처럼 작품에, 글에, 음악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 그리고 의견을 나누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작가와 작곡가, 연출자의 요청과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서로 설득해야 하고, 함께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분들이 쓰신 대본에, 작곡가분들이 쓰신 곡에 애정과 노력이 얼마만큼 담겼을지 충분히 알기에 그들의 노고와 예술성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렇게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58-59쪽)

 

 

내가 공연 기획을 해보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모 대학교에서 연구비 사업의 연구 행정 업무를 거의 2년 가까이 하게 되면서, 특정 규모의 재원이 주어졌을 때 예산에 맞게 사업의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세목별로 예산을 배정하는 것, 그리고 연구비 세부 집행과 연차가 끝날 때 작성하는 예산보고서에 대한 업무가 조금은 익숙해진 상태이다. 더군다나 배정한 예산이 세목별로 어느 정도 집행되었는지, 그리고 계획대로 잘 쓰이고 있는지를 상시 확인해야 한다. 2년 가까이 연구 행정 업무를 맡으면서 알게 된 점은 책의 저자가 한 말과 같기도 한데, 연구 행정 업무 역시 해당 연구의 목적과 구체적인 사업 계획에 대해서 이해하고 잘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그 사업의 운영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산을 집행할 때 집행이 원칙적으로는 어렵다고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연구소의 입장에서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집행이 필요한 사안이라면, 예산을 배정해준 사업단의 담당자에게 해당 집행의 필요성을 설명, 아니 설득해야 할 때가 종종(사실은 자주) 있다. 원칙적으로는, 혹은 이전에 그렇게 집행한 사례가 없으면 그렇게 집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할 땐, 사업단 담당자에게 '설득'을 해야 한다. 공을 들여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승인이 나지 못해 좌절한 적도 있었지만, 긴 시간을 들여 결국 승인이 되었을 때는 마치 내가 사업을 따낸 것 같은 일종의 착각이 들기도 하면서 동시에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연구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그러나 해당 사업의 '참여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업과 '무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예산 관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연구와 유관한' 분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를 공연 기획의 경우로 바꾸어 생각해본다면, 공연기획자가 예술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을 비리면) 공연기획자는 기획자의 시각으로 작품을 잘 분석, 정립하고 작품 속 캐릭터에 대해서도 잘 연구해야 하며, 이후 공연작가와도 같은 눈높이에서 제작비의 타당성, 개런티, 배우의 외모와 표정, 연기 톤 등 다양한 부분을 입체적으로 토론하면서 함께 결론을 내려야 하는, 공연과 필연적으로 연관된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공연기획은 공연이 가상의 것이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해내는 측면에서 그리고 보유한 재원 내에서 현실적으로 공연을 운영하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일종의 가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공연 연출을 해보고 싶은 이유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그것을 구현해내는 작업이 나에게는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흥미로만 접근해서 관련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흥미가 엇다면 그것 역시 그 일을 착수하는데 진척을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아파트 근처엔 큰 동네 서점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하교하고 나서 친구들과 놀 때도 있었지만, 같이 놀지 않는 날엔 매일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 주로 만화책을 읽었는데, 나에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만화책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부모님께선 아직 일하고 계신 시각이지만 나는 집에 도착해서 혼자 있을 때, 그때마다 무언가 혼자라는 느낌(반드시 부정적이기만 한 느낌인 것은 아니다)이 들었었다. 당시에 톨스토이의 책을 읽고 나서 정말 말 그대로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자기 딴에는 몰두했던 것 같다.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적응을 잘 하지 못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자기주도학습을 하게 만들었던 과목이 바로 '윤리와 사상'(철학 관련 과목)이었다. 이 과목의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어렸을 적 내가 했었던 고민들에 대해 답을 해주는 무언가가 드디어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강렬한 흥미와 동기가 동력이 되어 지금까지의 나를 이끌고 일구어내게 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결국 공연은, 적어도 뮤지컬은 (음악은 당연히 중요하며) 소재와 서사가 중요하다. 요즘에는 '서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것을 지양하는 극도 상연되고 있는 추세지만, 나는 그래도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서사가 있는 것을 선호한다. 10여년 간의 연극과 뮤지컬을 그래도 꽤 감상해 본 결과, 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전부 이해가 될 순 없어도 적어도 그 이야기의 전개 자체를 납득할 수는 있는 종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반(反)-서사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길을 가면 되고, 나는 또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또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나.

 

또한 나는 원작이 있는, 그래서 그것에 기반을 두고 변형을 가한 뮤지컬을 특히나 좋아한다. 왜냐하면 볼때마다 집요하면서도 끝없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뮤지컬 중에 특히나 <프랑켄슈타인>을 좋아한다. 원작 자체가 주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비극적인 분위기와 서사가 끌리기도 하고, 또한 원작에선 없는 혹은 원작의 내용이 연출자의 방식에 따라 특유하게 변형되어 구현되어 있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당 책은 공연기획자인 저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각 챕터마다 무대 뒤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역할을 설명해준다. 그중 연출가의 역할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연출가란, 공연 작품의 예술적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스태프들의 역량이 조화를 이루도록 조율하는 사람이다. 연출가는 공연의 스토리 전개와 흐름, 각 장면의 구성 등을 결정해 관객들이 만나게 되는 공연의 최종 결과물이 완성도 있게 만들어지도록 하는 책임자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공연 기획과 공연 연출이 서로 연관되면서도 각개 다른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하우스 어셔 일은 해본 적이 있음에도) 공연 업계에 본격적으로 아직 발도 디디지 못한 사람에게, 이 책은 저자가 장차 공연 기획 또는 공연 연출을 꿈꾸고 있는 필자에게 마치 따뜻한 응원과 실질적인 조언을 보내주신 책 같다는, 그런 홀로 행복한 생각을 했다. 부디 나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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