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대 뒤에 사는 사람⟫ - 공연기획자 이성모 에세이집
어린 시절, 내게 가장 신나는 순간은 비디오테이프와 동화책 속 캐릭터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일이었다. 부모님은 동네 아트홀에서 공연이 열릴 때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여주려 애쓰셨고, 덕분에 연극, 마술쇼, 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연을 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연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초등학생 때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도 했고, 한때는 연출가나 무대 음악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무대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공연장과 페스티벌을 누비며 살고 있다.
공연, 무대예술을 사랑한다고 당당히 말하며 다니지만, 사실 한 공연 보러 가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고 해도, 우선 그게 열려야 한다. OTT나 유튜브처럼 검색해서 언제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만 펼쳐지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공연이 열린다고 해서 무조건 볼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티켓이 필요하다. 공연을 함께 기다린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동시에 버튼을 눌러야 하고, 더 빠르게 클릭한 사람만이 원하는 자리를 얻는다. 이 치열한 트래픽 경쟁을 뚫고 내 자리를 확보하면, 이제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기기 위해 앞뒤 스케줄을 조정하고 이동 수단을 예매하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온 감각을 세워 공연을 즐길 순간이 찾아온다.
이처럼 공연을 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나는 관객이 되는 것이 좋다. 대학교 수업과 공연을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아 일주일에 서울과 부산을 세 번 왕복했을 때,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공연을 보러 가는 거야?"
다시 반복되지 않을 단 한 번의 순간에 직접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해져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관객이 있으려면 먼저 공연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동안, 더 좋은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무대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공연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직접 기획하고 현실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공연기획자 이성모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보게 된 룰라의 콘서트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가수와 관객이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만들어내는 순간들 속에서 그는 꿈꾸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퍼지는 환호성과 에너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경험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렇게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그는 대학 졸업 후 공연 기획사에서 일하다가 창작 공연에 대한 열망으로 독립했다. 19년간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며 공연을 만들어 온 그는, 이제 『무대 뒤에 사는 사람』을 통해 공연을 기획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연기획자는 단순히 공연을 기획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극장의 대관 일정 조율부터 예산 관리, 마케팅 전략 수립, 배우 및 스태프 섭외까지,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전반을 책임진다. 그렇기에 무대를 직접 이끌어가는 배우, 연출가, 음악감독들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공연을 완성하는 데 집중한다. 이처럼 공연기획자는 무대를 직접 만들진 않지만, 공연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즐기는 이들을 정면에 두고 라이브로 이루어지는, 무척이나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안정과 감동을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공연이다. 거친 파도를 맞아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는 동시에 목적지까지 나아가고자 노 젓기를 멈추지 않는 용기가 바로 공연이다.
- 240쪽 발췌
이성모는 기획자로서 관객이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공연을 바라보며, 무대를 빛내기 위해 쏟아낸 수많은 노력과 잊지 못할 감정의 순간들을 경험했다. 공연 한 편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선택이 필요한지,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하며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는 생생하게 전한다. 공연기획자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사람과도 같다. 모든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공연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무대 뒤에서 작은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어,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우리가 바라보는 화려한 무대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스며 있으며, 기획자는 그 중심에서 공연이 무사히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보이지 않는 손길로 모든 요소를 조율하며, 공연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책을 읽으며 내가 이제껏 봐왔던 모든 공연의 기획자들이 무대에 쏟아온 노력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공연 한 편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시간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노력이 결국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저자인 이성모가 공연 기획이라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가 무대 뒤에서 쏟아온 공연예술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되었다.
공연을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무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공연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무대 뒤에 사는 사람』은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공연을 기획하는 과정이 궁금한 사람,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무대 뒤에서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