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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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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선택이란 완벽한 정답이 아니다. 내가 한 선택이 미래에 ‘실패’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린 선택을 의미한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기준을 따른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그 답은 조금 뻔하고 진부하겠지만, 내가 나를 수없이 들여다보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일수록 좋은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나만의 확고한 취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들어 '취향'이라는 단어가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 언어로 포장되어 여기저기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취향은 단순히 내가 더 선호하는 음악 장르나 커피 원두의 종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취향의 사전적 의미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다. 취향은 좀 더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내 본질이며, 좋은 선택으로 이끌어줄 방향을 제시할 힘을 담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생기는 마음의 방향을 명확히 알고, 그 방향대로 내 삶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에게 취향과 선택의 깊은 인과관계를 알려준 사람은 폴란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이다. 내 마음은 항상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 쪽으로 쏠리는 편이라, 그의 시「선택의 가능성」을 처음 읽었을 땐 마음에 작은 정전기가 일어난 듯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류를 사랑하는 자신보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오래된 줄무늬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사랑과 관련하여 매일매일을 기념하는 것보다는

비정기적인 기념일을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간인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을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지 않는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 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비스카바 쉼보르스카, 「선택의 가능성」

 

 

쉼보르스카는 좋아하는 작가와 색깔에 대한 선호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대해 무엇이 더 좋은지 세세히 나열할 줄 아는 취향을 지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는 어느 울적한 날엔, 그녀의 취향이 잘 정돈된 시를 읽는다. 시를 읽을수록 내 영혼은 점점 더 맑아져 가고, 어느새 스스로를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어쩌면 개인의 선호를 나열한 시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의 가능성’이란 모호한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취향이란 내 앞에 놓인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 마음이 자연스레 기우는 하나의 답안을 고르며 생긴다고 말한다. 내가 거쳐온 수많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차곡차곡 축적되어 온 취향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담고 있는 선택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정성 들여 깎은 연필처럼 날카롭고 뾰족한 취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의지와 욕구가 담긴 좋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인의 삶을 이끄는 애정의 대상이 쭉 나열된 시를 읽고 나면, 마치 그와 끝말잇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내 마음을 풍족하게 채워주는 대상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수집한 고유한 취향을 엮어 나만의 ‘선택의 가능성’ 시를 써봤다. 지면의 한계상 많은 것을 생략해야 했지만, 이 시는 수정의 수정을 거듭해 나가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그에 따른 좋은 선택을 내리고 싶다면 당신만의 ‘선택의 가능성’ 시를 써보는 건 어떨까? 남들 눈에는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내 마음을 독차지 한 소중한 선택지를 가슴 깊이 품고 산다면, 분명 더 자주 그리고 많이 나로 살아가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의 가능성

-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선택의 가능성'을 이어서 쓰다 -


책을 더 좋아한다

낯선 지역의 미술관을 더 좋아한다

김환기의 푸른색 전면점화보다

달항아리, 달, 매화, 산이 간결하게 그려진 그림을 더 좋아한다

각 계절이 갖는 고유한 냄새를 더 좋아한다

식구를 깨우는 엄마의 엉터리 노래를 더 좋아한다

말갛고 밋밋하게 생긴 것들을 더 좋아한다

익숙함에서 오는 안전감과 편안함을 더 좋아한다

상처와 결핍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끌어안고

한 걸음 나아가는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집에서 듣는 깔끔한 음질의 음악보다

노이즈가 있더라도 가수와 관객의 마음이 하나로 겹쳐지는 라이브를 더 좋아한다

내가 툭 던진 말에 팝콘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을 더 좋아한다

푹신한 크림빵보다 바삭한 소보로를 더 좋아한다

죽음을 다루는 작품을 더 좋아한다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보다

깊은 내면과 넓은 세계를 유영하는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과거에 쓰인 편지와 일기에서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을 발굴해 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스며드는 것을 더 좋아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더 좋아한다

손쉬운 비관보다 까다로운 낙관을 더 좋아한다

너그러운 마음과 다정한 태도를 더 좋아한다

내 이야기를 글로 꺼내놓게 만드는 작품을 더 좋아한다

사람의 마음은 깔끔한 단면의 식빵이 아닌

여러 겹의 층을 가진 패스츄리 같다는 걸 아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혼자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내 앞에 놓인 시련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더 좋아한다

지금 여기에 담지 못한 것들보다 

이 문장 뒤에 이어질 것들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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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취향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었는데 저도 일기장 한켠에 에디터님과 같이 시를 이어서 써봐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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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4 17:53:2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