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놀러 가면 꼭 들르는 장소가 있다. 맛 좋은 커피집, 독립 서점, 빈티지 옷집, 시장처럼.
내겐 소품샵과 편집숍이 그렇다. 지브리 엽서나 얼굴이 길쭉한 강아지 인형이 대부분이면 실망하고 나오지만, 잘 다듬어진 도자기나 찻잔을 발견할 때의 기쁨을 잊지 못해 매일 지도에 하트 표시만 늘어간다.
이 글은 소품샵 대여섯 개를 돌아다니면서 떠올린 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토마토가… 왜 이렇게 많지?’
종류는 다양했다. 수저 받침대, 그릇, 폰 케이스, 키링, 발 매트, 조리개 파우치까지. 몇몇 소품샵은 책도 함께 팔았는데, 책 표지에도 토마토가 있었다. 낯선 흐름은 아니었다. SNS에서 토마토 배경 화면이나 메신저 테마를 공유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봤으니까. 작년쯤 소품샵과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악했던 토마토는 잠깐 그 인기가 시드는 듯하더니 동네 소품샵에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왜 우리는 '토마토'에 빠졌을까
궁금했다. 왜 하필 토마토여야 했는지. 사과도, 귤도, 아보카도도 아니고 왜?
그래서 찾기 시작했다. 왜 토마토가 유행하기 시작했는지. 오직 이 질문을 위해 여행을 떠난 사람처럼. 그러나 명쾌한 답을 찾진 못했다. 영어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발견한 게시글 하나가 끝이었다. 7년 전쯤 외국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었는데, 글쓴이는 이렇게 물었다. ‘왜 사람들이 댓글에 토마토 이모티콘 하나만 달랑 달아놓지?’ 상위 댓글은 이랬다. ‘토마토는 재미없는 유머 글 밑에 달려. 코미디언들이 최악의 개그를 선보이면 관객들이 무대로 토마토를 던지곤 했잖아. 비슷한 거지, 뭐.’ 답변은 좋아요 5.1k를 받았다. 질문보다 많은 수였다.
이 게시글처럼 토마토는 원래 으깨지는 과일, 던져지는 과일에 가까웠다. 영화 평가 사이트 ‘로튼 토마토’도 관객이 공연에 실망하면 무대로 썩은 토마토를 던지는 문화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사회 교과서나 영어 문화 교과서에서 종종 언급되던 스페인 토마토 축제도 마찬가지다. ‘던져지는’ 토마토는 반항의 상징이기도 했다. 1968년 독일에선 한 여성이 남성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토론 패널에게 토마토를 던졌다. 일명 토마토 투척 사건이다. 이 사건은 독일 페미니즘 두 번째 물결의 시작이 됐다.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토마토는 던지기에 딱 적절하다. 손에 쥐기에도, 꽉 움켜쥐기에도, 타이밍 맞게 팍 터져서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기에도.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토마토의 반란 시대를 살고 있다. 토마토는 ‘던져지는 무언가’보다 ‘가만히, 으깨지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가 되었으니까. 토마토는 목적어 자리, 피동 동사를 벗어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됐다. 토마토의 이미지 변신. 그 조력자는 명실상부, 여름이다. 아니, “여름이었다.”
토마토는 왜 여름의 과일일까
사람들은 여름을 좋아한다. 찐득찐득한 여름은 싫어할지언정 여름의 이미지만큼은 좋아한다. 청춘, 바다, 수박, 복숭아, 아보카도로 대표되는 싱그러운 이미지 말이다. 여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계속 발굴됐고, 이미지는 열심히 여름 미화에 기여했다. 매미 소리, 모기향 냄새, 선풍기 소리….
생각 해보니, 토마토도 여기에 들어갈 만하잖아? 이건 발견이다, 토마토 발견.
토마토에 주목한 건 우리나라만이 아니었다. 서양에서도 2023년에 ‘토마토걸’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소박한 여름휴가를 즐기는 이탈리아 여성의 미적 취향을 통칭하는 말이다. 자연스러운 웨이브 컬 머리에 라이프스타일은 심플하고, 레드 드레스나 머플러를 주로 착용하는 여성을 뜻한단다. 토마토의 매력에 동서양이 빠진 셈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소박한 토마토에.
생각해보면 우리의 여름엔 늘 토마토가 있었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헉헉거리며 받은 급식 식판 작은 칸에, 방학 때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엄마가 잔소리와 함께 건네준 쟁반에, 운동회에서 줄 서서 받은 과일 컵에. 우리가 여름 하면 떠오르는 과일로 수박, 복숭아, 아보카도 따위를 제시할 때 토마토는 여름 한가운데 조용히 있었다. 토마토가 유행하고 나서야 우리는 토마토에 얽힌 기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토마토는 우리도 몰랐던 일기장이다. 우리가 쓰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일기장. 그래서 우리는 토마토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왜 여름에 토마토를 먹을까? 저렴해서?
질문을 바꿔보자. 토마토는 왜 여름에 먹기에 적절할까? 따스한 봄도 아니고, 추운 겨울도 아니고 왜 하필 뜨거운 여름에? 이유는 단순하다. 토마토가 수분을 보충해 주기 때문이다. 토마토의 수분함량은 무려 95%다. 더워서 땀을 잔뜩 흘렸을 때 딱 먹기 적절한 과일이다. 많이 흘리면, 그만큼 많이 보충해야 하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토마토는 여름철 더위로 우리 몸의 진액이 마르고 열이 생길 때 먹으면 좋은 과일입니다.”
보면서 생각했다. 아, 토마토는 눈물이 날 때 먹기 좋은 과일이구나.
그리고 그때 이해했다. 왜 장례식장에 방울토마토가 많은지.
3일 동안 장례식장에서 흰 쌀밥, 육개장, 코다리 강정, 마른안주, 과일 등을 날랐다. 일회용품 그릇과 접시 수백 개가 흰 비닐 테이블보 위에 올라갔다가 그대로 싸여서 버려졌다. 코다리 강정이 가장 인기가 많았고 퍽퍽한 전이 가장 인기가 없었다. “얘, 방울토마토 좀 더 줄래?”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엄마도 토마토를 그렇게 찾았다. 집에선 토마토를 사 먹는 법이 없었는데. 우리는 코다리 강정만큼이나 방울토마토를 계속 가져다 먹었다. 수분을 채워주니까. 의식하지 않아도 손은 계속 토마토를 찾았다.
이상했다. 한창 여름-청춘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는 토마토가 장례식장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과일이라니. 저렴하고 먹기 편하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해결되지 않은 떫은맛이 가시질 않았다. ‘토마토-여름-청춘’까진 그럴 수 있지만 ‘토마토-여름-눈물-청춘-장례식장’은 설명이 아주 많이 필요하니까. 그때 떠오른 건 아주 의외의 노래였다.
나는야 주스 될 거야
나는야 케첩 될 거야
나는야 춤을 출 거야
멋쟁이 토마토
토마토
과일과 채소 사이 모호한 경계에 있는 토마토를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해 만든 노래가 갑자기 왜? 이왕 떠오른 김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토마토는 멋쟁이란다. 왜? 주스. 케첩, 뭐든지 될 수 있으니까.
여기에 답이 있었다. 복잡한 설명을 일축하는 답이.
토마토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청춘만을 상징하는 과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토마토는 소품샵이나 휴대폰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 때보다 - 흰 일회용품 접시 위에서 우는 사람들을 위할 때, 운동장에서 뛰노느라 모래 범벅이 된 아이의 손에 덥석 잡힐 때, 키링도 됐다가 발 매트도 됐다가 책 표지도 될 때 더 ‘토마토답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인가. 저렴해서 우리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과일이, 울 때 가장 먹기 좋은 과일이라니.
그래서 토마토를 씹으면 청춘의 맛이 나느냐고?
아니, 거기선 청춘의 맛이 아니라 떫은맛이 난다. 그게 원래 토마토의 맛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