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IMG_0143.jpg

 

 

 

홍콩, 영혼의 고향

 

왜인지 모르게 홍콩은 나에게 '영혼의 고향'이라 부를 만큼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나는 홍콩과 학연, 지연, 혈연 어느 하나 연고가 없다. 그럼에도 홍콩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지고, 사이버펑크 같은 도시 속에 정글 같은 녹색이 스며든 곳. 홍콩은 다양함이 곧 아름다움으로 치환되는 곳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꿈꿔온 홍콩 여행을 어제 마무리했다. 새벽 비행기로 한국에 도착한 탓에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지만, 이 순간만이 줄 수 있는 그리움과 회한이 있다. 오래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크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홍콩은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장소였다. 화려한 네온사인,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 전광판의 한자까지. 중국 반환 이후 홍콩만의 색을 잃을까 염려했지만, 여전히 전성기 시절 영화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홍콩은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으로서 마주한 홍콩은 확실히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이곳은 관광지이자 주거지

 

홍콩은 주거지가 관광지가 된 경우가 많다. 익청빌딩과 초이홍 아파트가 그 대표적인 예다. 랜드마크가 있는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진입하는 길도 한국인 블로거들이 정리해 놓은 포스팅을 참고해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평범한 동네처럼 보이는 골목을 지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수십 명의 관광객이 모여 있는 포토스팟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인증사진을 찍으며 홍콩의 독특한 주거 환경을 엿본다.

 

 

IMG_0738-copy-0.jpg

 

 

우리나라에도 감천문화마을이나 북촌 한옥마을처럼 주거지가 관광지가 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관광객의 소음으로 인해 거주민들과 마찰이 있었고, 큰 소음을 내지 말라는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홍콩에서는 관광객과 거주민이 적절히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거주민들은 길을 헤매는 관광객을 보면 선뜻 도와주곤 했다. 실제로 초이홍 아파트의 포토스팟은 아파트 단지 주차장 옥상에 있는 농구장이었는데, 길을 찾지 못해 헤매던 내게 한 주민이 손짓으로 주차장 위쪽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는 흉내를 내 보여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output_2342514944 (1).jpg

 

 

그곳에서는 주민들이 일상처럼 농구를 하고 카드 게임을 즐기는 한편, 관광객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거주민들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공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관광지와 거주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여행지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상의 공간이라는 점이 새삼 흥미로웠다.

 

 

 

홍콩과 영국, 한국과 일본

 

프린스 에드워드 역 (Prince Edward Station)

퀀스 로드 (Queen’s Road)

코넛 로드 (Connaught Road)...

 

그런데 홍콩을 직접 누비며 느낀 점은, 영국의 흔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지하철 안내 음성이 광둥어, 보통어, 그리고 영국식 발음의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지하철 안내 방송이 한국어와 일본어로만 나온다면 어떨까? 역이나 도로 이름에 일본 황실 구성원의 이름이 붙어 있다면?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픈 역사가 있다. 한국은 식민지 시절 지어진 일본식 건물을 대부분 철거했으며, 경복궁을 가리던 조선총독부 건물 역시 철거했다. 반면, 홍콩의 관광지 중에는 타이퀀처럼 영국군이 사용했던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마치 ‘식민지 근대화론’의 모델처럼, 홍콩은 영국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자신만의 색을 덧입혔다. 한국과 홍콩이 식민지배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홍콩이 한국만큼 강압적인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동화시키려 했던 것과 달리, 영국은 홍콩의 자율권을 어느 정도 보장했다. 당시 받아들인 영국식 교육 체계와 행정 시스템이 오히려 모국인 중국보다 실용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홍콩에서는 영국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세대 차이가 나기도 한다. 강압적이지 않았던 식민지배와 전 세계 공용어인 영어 교육 덕분에, 홍콩은 동서양이 융합된 독자적인 분위기를 갖게 되었다.

 

같은 식민지배를 경험했더라도, 역사를 어떻게 극복하고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나라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었다.

 

 

 

떠나보지 않은 자의 천진함과 떠나본 자의 추억

 

여행을 좋아하는 회사 상사에게 홍콩에 간다고 말했을 때, 그는 "요즘의 홍콩은 별로"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는 떠나보지 않은 상태의 천진한 환상이 좋다. 세상 어딘가에 내 영혼을 울릴 만한 장소가 있을 것이라 믿는 것, 세상을 다 안다고 단정 짓지 않고 여전히 천진한 기대를 품고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떠나본 자의 추억은 내일을 살아가게 한다. 홍콩 여행을 곱씹으며, 그때의 정취와 감정을 다시 떠올리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